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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Jan 08. 2024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38)

제38편 : 황지우 시인의 '소나무에 대한 예배'

@. 오늘은 황지우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소나무에 대한 예배
                                      황지우

  학교 뒷산 산책하다, 반성하는 자세로,
  눈발 뒤집어쓴 소나무, 그 아래에서
  오늘 나는 한 사람을 용서하고
  내려왔다. 내가 내 품격을 위해서
  너를 포기한 것이 아닌,
  너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이것이
  나를 이렇게 휘어지게 할지라도.
  제 자세를 흩트리지 않고
  이 지표(地表) 위에서 가장 기품 있는
  건목(建木) ; 소나무, 머리의 눈을 털며
  잠시 진저리 친다.
  - [시가 내게로 왔다](2001년, 김용택 편)

  *. 건목 : 건강한(튼튼한) 나무, 또는 우주의 중심에 서서 구름 위로 치솟아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사다리 역할을 하는 나무

  #. 황지우 시인(1952년생) : 전남 해남 출신으로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하여 등단.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기법을 통해 현실을 비판하여 1980년대 한국 시의 전성기를 이끈 시인이라 평가받음. 2006년부터 2009년까지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및 총장을 역임 후 2018년 퇴직




  <함께 나누기>

  지금은 가톨릭 신자지만 대학 다닐 때와 교사 초년생일 때 4년간은 불교 신자였습니다. 부산 불교청년회 산하 '여여회'에 들어 화요일마다 수정동 '연등사(?)'에 올라가 백팔배와 함께 불교 공부를 했습니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 마지막 일요일, 통도사를 찾아 당시 극락암에 계시던 경봉 큰스님을 뵙고 법문 듣는 시간도 가졌지요.

  삼 년째 되던 해 큰스님에게 법명도 얻었는데 ‘삼진(三進)’. ‘예덕(禮德)ㆍ 지덕(智德)ㆍ 서덕(恕德)’ 이 세 가지 덕 쌓으며 살아가라 지어주셨습니다. 처음 두 개야 퍼뜩 와닿았지요. ‘예의 바르게 살며 지혜를 쌓아라'란 뜻까진 이해되었는데, 마지막 하필 왜 ‘서덕’을 쌓으라는 말일까.
  요즘 들어 생각합니다. 제게 가장 힘든 일이 '용서하다'입니다. 제가 남 잘못 용서를 진짜 못하거든요. 그만큼 제 자신에게는 엄격하지 못하고. 그때 한눈에 저를 꿰뚫어 본 큰스님 혜안에 그저 탄복할 뿐.

  시로 들어갑니다.

  “학교 뒷산 산책하다, 반성하는 자세로 / 눈발 뒤집어쓴 소나무”
  그냥 읽으면 그냥 쓱 넘어가는 시행인데 솜솜히 뜯어보면 참 많은 의미를 담은 시행이기도 합니다. 우선 소나무와 눈발을 봅니다. 눈발은 아무 죄 없는 소나무를 괴롭히는 존재입니다. 그러면 소나무로썬 당연히 화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소나무는 오히려 반성하는 자세로 서 있습니다. 지은 잘못이 있으니 이런 눈발을 맞아야 한다는 듯이. 제목에 왜 '예배'란 말을 붙였는지 이해가 가는 대목입니다. 예배란 예수님이나 부처님 같은 초월적 존재를 향한 경배이니까요.

  [성경]에는 ‘원수를 사랑하라’ 했고, 불교 [원각경]에는 '원수를 보거든 부모와 같이 섬겨라'라고 하셨습니다. 원수까지 사랑하고 섬기는 용서는 그 깊이와 폭이 얼마나 될까요? 시인에게 소나무는 예수님이요, 부처님입니다.

  “그 아래에서 / 오늘 나는 한 사람을 용서하고 / 내려왔다”
  소나무가 자기를 해치려는 눈발을 보며 분노하기는커녕 오히려 자신의 잘못으로 여겨 반성하는 자세를 보며 화자는 깨닫습니다. 원수까지도 용서하는데 고작 나를 괴롭힌 그 사람을 용서하지 못할까 하는 마음에 용서해 주고 내려왔다는 뜻으로 읽습니다.

  “내가 내 품격을 위해서 / 너를 포기한 것이 아닌 / 너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화자는 용서가 ‘포기’가 아님을 천명합니다. 진정한 용서는 포기 아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화를 품고 있으면 증오의 감정만 속에 차지만, 있는 그대로의 그를 받아들이면 그도 나를 보듬을 거라는 확신이 드는 걸까요?

  “나를 이렇게 휘어지게 할지라도 / 제 자세를 흩트리지 않고 / 이 지표 위에서 가장 기품 있는 / 건목(建木)”
  폭설이 나(소나무)를 휘어지게 해도 그(눈발)를 용서하는 소나무처럼 우리도 그런 자세를 가지라고 소나무는 기품 있게 말합니다. 어쩌면 그가 나를 힘들게 하지만, 오히려 내가 그를 힘들게 하지는 않았는지 생각해 보라는 뜻도 담았겠지요.

  “소나무, 머리의 눈을 털며 / 잠시 진저리 친다”
  그럼 용서가 그만큼 쉬울까요? 아닙니다. 소나무가 한 번씩 눈을 털 때마다 진저리를 치듯이 그만큼 힘들다는 뜻입니다.

  '눈발이 나를 휘어지게 할지라도 눈발을 원망하지 않아야 한다' 솔직히 저는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아직 완전 속물입니다.


  *. 제 브런치에 자주 들어오신 분들은 아실지 모르지만, 제가 눈이 나빠 휴대폰으로 글을 읽거나 쓰지 않고 컴퓨터 대형스크린으로만 글 읽고 쓰고 있습니다. (그것도 가능한 짧게)

  그래서 다른 분들이 올리는 브런치 스토리에 들어가 읽고 라이킷해주지 못하고 단지 '구독'만 해드릴 뿐입니다.


  혹시라도 품앗이 개념으로 라이킷을 원하시는 분은 제 스토리 읽거나 라이킷하지 않아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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