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화 : '파이네 공원'에서 잠시 나를 내려놓다


남미 대륙 끄트머리 남위 40도 부근을 흐르는 콜로라도강 이남 지역을 파타고니아(Patagonia)라 한다. '파타(pata)'는 '큰'이고 '곤(gon)'은 '발'이니 파타고니아는 '큰 발을 지닌 사람(거인)들이 사는 곳'이란 뜻이다.

이곳에 칠레의 자랑이며, 남미의 자부심이라 할 ‘토레스 델 파이네(Torres del Paine)’ 국립공원이 자리하는데, 남미 대륙을 쭉 아래로 뻗어온 절경이 여기 와 그 정점을 찍는다.



어릴 때 우리 집 기둥에 괘종시계가 걸려 있었다. 아시다시피 태엽을 감아줘야 돌아가는 시계다. 감아주는 담당은 나였다. 처음에는 제대로 감았고 제대로 돌아갔다. 허나 세월이 흐르고 태엽이 느슨해지면서 시계가 10분씩 20분씩 늦어졌다.

파이네 공원에 오면 시곗바늘이 정상적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여기도 우리 집 괘종시계처럼 태엽이 느슨한지 다 느리게 흘러간다. 우리 집처럼 태엽을 감아주는 사람이 없어서 더욱 그러리라.

하늘을 나는 ‘콘도르(독수리에 비견되는 새)’도, 풀밭을 서성이는 ‘난도(타조의 축소판)’도, 무리 지어 풀 뜯는 ‘구아나코(낙타의 축소판)’도 아주 느리게 움직인다. 느림의 걸작은 산을 두른 구름의 띠다. 들어올 때 본모습 그대로 반 시간이나 흘렀건만 움직임이 거의 없다.


(돌탑과 느리게 흐르는 물결을 찍으려 했는데, 햇살이 뻗어내려 걸작(?)이 됨)


파이네에선 시계를 보는 일은 아주 어리석은 짓에 속한다. 그냥 하염없이 설산에, 구름에, 호수에, 구아나코에, 빠알간 꽃에 눈을 주고 가만있으면 된다. 외국 청년 하나는 호수를 바라보며 그 자신 하나의 정물(靜物)이 되어 있다. 느림과 비움과 버림과 내려놓음의 의미를 제대로 아는 청년인지...

그렇다. 파이네 공원은 그런 곳이다. 만년설로 둘러싸인 뾰족뾰족한 산봉우리, 군데군데 자리한 옥빛 호수, 이름 모를 꽃, 타서 말라버린 고사목... 둘러보면 하나하나 잠시도 눈 떼지 못할 절경이지만 파이네 공원은 우리를 잠시 내려놓게 하는 그런 곳이다.


(파이네 공원의 명물 '구아나코')


두 시간 트래킹 시간이 주어졌다. 나는 일행과 떨어져 혼자 걸었다. 나를 잠시 내려놓고 싶었다. 비움과 버림이란 말을 선택하려다, 그 단어가 얼마나 건방진 표현인지... 마음의 찌꺼기를 비우고 버린다는 게 세속에 물든 사람에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래 잠시, 아주 잠시만 내려놓기로 했다.


"혼자 걸었습니다. 여럿이 걸어가고 있건만 혼자 걸었습니다. 말 거는 이, 걸고 싶은 이 없이 혼자 걸었습니다. 입을 닫고 귀를 닫고, 아주 작게 가자미 눈만 떠 걸었습니다. 그렇게 걸었습니다. 산을 잊고 싶었습니다. 바람을 잊고 싶었습니다. 나를 잊고 싶었습니다.

성현들이 얘기한 무념무상(無念無想), 무장무애(無障無礙), 물아일체(物我一體), 물심일여(物心一如), 주객일체(主客一體)의 경지에 들러 한 건 아니나 잠깐 폼 잡았습니다. 그러나 본디 속물인지라 얼마 안 가 눈이 뜨였고, 귀가 뚫렸고, 생각의 문이 열렸습니다.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앞에도 뒤에도 사람입니다. 아, 나는 사람을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생존에 매달려야 하는 하찮은 존재였습니다. 홀로 있으면 홀로 있음으로 더욱 외로워지는 필부(匹夫)였습니다."



그때 아주 예전 휴대폰 초창기 때 어느 텔레콤 광고 한 장면이 떠오른다.


세속에 때 묻은 젊은이가 한적한 산사를 찾아와 스님과 숲 속 길을 걸어간다. 때마침 젊은이의 호주머니에서 휴대폰이 울린다. 잠시 멋쩍은 듯 스님의 눈치를 살피나 스님에게선 염화시중(拈華示衆)의 미소만 흐르는데 화면에 다음 자막이 뜬다.


"또 다른 세상을 만날 땐 잠시 꺼두는 게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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