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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Feb 08. 2024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62)

제62편 : 이면우 시인의 '봄밤'

@. 오늘은 이면우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봄밤
                             이면우

  늦은 밤 아이가 현관 자물통을 거듭 확인한다
  가져갈 게 없으니 우리 집엔 도둑이 오지 않는다고 말해주자
  아이 눈 동그래지며, 엄마가 계시잖아요 한다
  그래 그렇구나, 하는 데까지 삼 초쯤 뒤 아이 엄마를 보니
  얼굴에 붉은 꽃, 소리 없이 지나가는 중이다
  - [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2001년)

  #. 이면우 시인(1951년생) : 대전 출신으로 중학 졸업이 최종 학력인 시 창작 교육을 전혀 받지 않음. 현재 직업은 보일러 수리공인데, 정상적인 등단 과정을 거치지 않고 시집을 먼저 펴내면서 시인이 됨.




  <함께 나누기>
  
  아는 이에게서 들은 얘깁니다.

  그가 젊은 시절 아이와 아내를 태우고 차를 몰고 가는데 갑자기 앞차가 끼어드는 바람에 화들짝 놀라 급브레이크를 밟고 난 뒤, 창문 열고 침을 뱉으며 지나간 차를 보고 욕을 합니다.
  "개새끼!" 하고.

  한참 가다가 이번엔 그가 차선을 바꾸려고 옆차선으로 끼어들자, 아들이 창문을 열고 침을 뱉으며, "개새끼!" 하더랍니다. 그 모습을 보고 다시는 운전 중에 욕을 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아들이 일부러 그렇게 하지 않나 하고 의심했다고.

  또 다른 사람에게서 들은 얘깁니다.

  한 사내가 아들과 손잡고 길 가다 횡단보도에 서 있는데, 차는 오지 않고 파란불로 바뀌려면 시간이 남았고... 잠시 망설이다 빨간불인데도 건너려 하자 아이가 그의 손을 당기며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아빠 아직 빨간불이잖아!"

  '아이들은 언제나 맑다', '아이들은 언제나 천사다', '아이들은 어른의 스승이다'란 말을 참 좋아합니다. 그래서 영국의 계관시인 윌리엄 워즈워스는 [하늘의 무지개를 바라보면 내 가슴 뛰놀아]란 시에서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 했겠죠.

  시로 들어갑니다.

  이 시에서 '봄밤'은 반드시 계절적인 의미로만 한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가족 사이에 따뜻한 정이 흐르는 날 밤이면 모두 다 봄밤이 됩니다.

  "늦은 밤 아이가 현관 자물통을 거듭 확인한다"
  넉넉지 않은 집엔 훔쳐갈 게 없으니 굳이 문단속하지 않아도 됩니다. 도둑은 재물 있는가 없는가 파악하는 능력이 남다르다고 하니까요. 해서 아이 아빠가 우리 집엔 가져갈 게 없으니 도둑이 오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어른이면 누구나 하는 그냥 입에서 자연스레 흘러나온 말입니다.
  
  "아이 눈 동그래지며, 엄마가 계시잖아요 한다"
  아마 시 읽다가 다들 이 부분에서 잠시 호흡을 멈추게 될 겁니다. 참 멋진 표현입니다. 돈을 주고 사고 싶은. 아이에게 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합니다. 그러니 엄마에게 조금도 위험한 일이 일어나선 안 됩니다.
  한편 엄마를 내가 지켜줘야겠다는 마음도 담았습니다. 아빠 혼자 엄마 보호하기엔 미흡하다고 여겼을지도. 참으로 야무진 선언입니다. 저 사랑스럽고 순수한 마음을 담은 아이의 진정성 어린 말을 우리 어른은 그냥 지나쳐버릴 수 없습니다.

  "그래 그렇구나, 하는 데까지 삼 초쯤 뒤 아이 엄마를 보니 / 얼굴에 붉은 꽃, 소리 없이 지나가는 중이다"
  아이의 한 마디에 빠알간 봄꽃처럼 화사하게 피어나는 엄마의 미소. 그 상상만으로도 우리 얼굴에도 봄날 같은 미소가 번집니다. 그렇지요. 봄밤이 달리 있겠습니까. 가족 간의 사랑이 발그레 익어간다면 된바람 몰아치는 한겨울도 봄꽃 향기 그윽한 밤이 됩니다.

  이면우 시인은 한 인터뷰에서
  "가난도 생의 일부로 무너지지 않도록 껴안아 줘 용기를 준 사람이 아내입니다”라고 말한 적 있습니다.
  그리고 시인이 ‘IMF 실직자’가 됐을 때 아내는 남편의 등을 토닥이며,
  “괜찮아 여보. 팔다리 멀쩡한데 꿀릴 게 뭐 있어?”라고 위로해 주었다고 합니다.

  시인은 생활이 어려워 고등학교에 가지 못하고 중학교 졸업한 16살에 생활전선에 뛰어듭니다. 가장 먼저 배운 일이 보일러 수리업. 그 일이 평생직업이 되었고, 현재도 작은 공장에서 보일러에 불 붙이며 살고 있답니다.
  이분이 시인이 된 과정을 보면 참 극적입니다.
  아들이 초등학교에서 아빠의 직업을 조사해 오라고 한 설문지에, 시인의 아내가 무심코 실제 직업인 '보일러 수리공' 대신 시인이라고 적었습니다. 아들은 학교에 가 ‘아빠 자랑 시간’에 "우리 아빠는 시인이다"라고 했는데, 그 말을 귀에 담은 담임이 가정방문해 원고를 읽습니다. 그리고 담임의 아는 이가 근무하는 [창작과비평사]에 의뢰한 결과, 시집이 세상에 나오면서 시인이 되었답니다.



  *. 위 사진은 '오늘의 슈닝’ 블로그에서, 아래는 박수근 화백의 딸 박인숙 화백의 그림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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