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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Mar 22. 2024

목우씨의 산골일기(165)

제165화 : 개구리 울음소리

        * 개구리 울음소리 *



  낮 기온이 사흘 연속 20° 이상 치솟은 지난주, 마을 한 바퀴 돌다 개울 근처 지나가는데 묘한 소리를 들었다. 그러니까 봄이면 흔히 듣는 소리다. 허나 봄이라도 한창때의 봄이나 늦은 봄이라야 들을 수 있지 이맘때는 아니다.
  처음 들었을 때는 녀석이 우는 소리가 아닌 줄 알았다. 가장 흔히 들리는 그 소리를 착각함은 생각보다 이른 계절에 울기 때문. 그러다 문득 날짜를 새겨보니 3월 5일 즉 경칩 지난 지 2주째다. 경칩 지났으니 개구리가 밖으로 나올 수 있다는 말.

  경칩은 놀랄 ‘경(驚)’자에 개구리 ‘칩(蟄)’이니, 겨울잠 자던 개구리들이 날씨가 따뜻해지면 깜짝 놀라서 깨어난다는 절기다. 우리 선조들이 절기를 만들 땐 주먹구구식으로 만들지 않았다.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온 결과물이다. 다만 요즘은 하도 이상기후라 틀릴 때가 종종이지만.




  경칩 때라 하여 반드시 개구리가 나와야 하는 건 아니다. 추우면 땅속에 더 오래 들어 있지 괜히 일찍 나왔다가 된바람에 목숨 왔다갔다 할 리 있을까. 들어와 아내더러 산책길에 개구리 소리 들었다 했더니 "요즘 날씨가 워낙 따뜻해 그럴 수도..." 한다.
  나만 들은 양 우쭐 기분이 좋아 이웃 어른에게 얘기하니 밭 갈다가 이미 들었다고 하셨다. 역시 부지런한 사람은 다르다. 우리가 감자 심어 보나 할 때 이미 감자 다 심어놓았고, 관리기로 이랑 다 파놓았으니.

  시골에는 이맘때쯤엔 논에 물이 없다. 아직 모심기 하려면 한참 더 있어야 하기에. 해도 논 가운데 패인 곳에 물 고여 있으면 거기에 개구리가 알을 깐다. 밤에도 영하로 떨어지지 않고 물도 제법 차 있으니 녀석들이 나와 놀기 좋은 터전이 되었을 터.
  아직은 한창때랑 비교할 바 아니나 제법 요란하다. "개굴! 개굴! 개굴!" 하며 이어 울지는 않아 어딘가 조금 부족하지만, “개굴!” “개굴!” "개굴" 또박또박 끊어 내는 소리가 마치 어린 아이가 글 배울 때 낭송하는 소리 같다.




  동물은 각 지방마다 부르는 방언이 다르다. 동물 방언의 다양함에서 '개구리'가 으뜸로 안다. 그래서 방언학 공부할 때 가장 먼저 배우는 게 개구리에 관한 방언이다. 혹 몇 개를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대충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깨고리, 깨구리, 깨구락지, 개구락지, 깨구락지, 깨꼬락지, 깨굴딱지, 깨굴태기, 깨우락지, 게염지, 궐개비, 골개비, 고개비, 가개비, 메구리, 머구리, 멱자귀…
  물론 이 가운데 경상도 방언은 ‘깨구리’다. 나도 ‘깨구리’라 발음한다. 책 읽을 때도 깨구리다. 국어 교사라 당연히 책 읽을 기회가 많은데 무심코 ‘깨구리’라 읽을 때가 종종이다. 그럴 때 표준어권에 살다 온 애들이 바로 지적한다. '깨구리'가 아니라 ‘개구리’라고. 아차 하다가 조심하나 이내 깨구리라 또 읽는다.


  개구리는 방언에서만 다양한 게 아니다. 개구리 관련 속담은 또 얼마나 많은가.
  ‘개구리 낯짝에 물 붓기’, ‘ 개구리 주저앉는 뜻은 멀리 뛰자는 뜻이다.’, ‘ 개구리도 옴쳐야 뛴다.’ ‘ 개구리 소리도 들을 탓’, ‘우물 안 개구리’,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 ‘개구리가 얕게 월동하면 겨울이 따뜻하다.’, ‘장마 개구리 호박잎에 뛰어오르듯’, ‘개구리 낯짝에 찬물 붓기(물에 사는 개구리 낯짝에 물을 부어 보았자 아무 반응이 없으니, 아무리 자극을 주어도 그 자극이 조금도 먹혀들지 않을 때 쓰는 표현)’ 등이다.




  늘 절기가 가고 오건만 제대로 살필 줄 모르고 지내다가 이렇게 부딪쳐야 깨닫게 되니 시골 사는 이로선 사실 좀 부끄럽다. 꽃과 나무에 신경 쓰느라 개구리 소리를 못 들었다고 하면 진짜 핑계고, 대충 그냥 지나치는 성격 탓이다.

  이미 매화는 지고 수선화, 산수유, 생강나무꽃에 이어 얼마 뒤면 벚꽃이 터질 때라는 건 아는데, 벌과 나비, 그리고 개미 개구리 같은 작은 동물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겠다. 무심코 넘어가기엔 너무 예쁜 녀석들 아닌가.
  '관심을 보일 때라야 상대는 그에게 자신의 참모습을 보여준다.'
  어느 글에서 읽은지 기억 안 나지만 참으로 명언이다. '관심', 정말 주변의 사물들에게 보다 더 관심 기울여야 하겠다.

  참 어제 새벽엔 영하 3°까지 떨어졌던데 설마 물속에 계속 남아 있다 얼어 죽지는 않았겠지. 잠시 피신했을 텐데 그곳을 알면 아내가 버리려 내놓은 이불 갖다주고 싶은데 어딘지 알 수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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