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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Aug 10. 2024

목우씨의 두줄시(3) : 씨감자가 썩지 않으면

제3편 : 씨감자가 썩지 않으면

@. 토요일엔 '두줄시'를 배달합니다.



    <씨감자가 썩지 않으면>


 

  “씨감자 묻어 썩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이나, 썩으면 많은 감자가 달리느니라.

  나는 썩어 주렁주렁 달리는 대신 썩지 않는 씨감자 되겠소.”




  <함께 나누기>

 

  성경(요한복음 12장 24절)에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이 구절은 워낙 유명하여 반드시 크리스천이 아니더라도 다들 한 번쯤 들어 알고 있으리라 여깁니다.

 

  자연의 원리가 그렇습니다. 밀알을 심어 썩어야 그곳에서 싹이 나고 자라 열매(밀)를 맺습니다.

  그러고 보면 밀알이 썩는 일은 자신의 생명을 죽이는 일과 같습니다. 그런 희생을 한 알의 밀알이 하고 있다는 말씀이지요.

 

  그래서 거룩한 희생정신을 예로 들 때 적절한 구절이라 먹물 가득 든 이들이 인용하여 강의를 하고 글로 남겼습니다.

  산골에서 배움이 적은 저도 이런 구절 때때로 인용하니 좋은 말임은 물어볼 필요 없겠지요.

 

 

  올봄에 감자를 수확하다가 묘한 걸 보았습니다. 분명히 같은 모양으로 감자눈이 나온 부분을 잘라 씨감자 만들어 심었습니다.

  헌데 어떤 씨감자는 썩어서 감자가 주렁주렁 매달려 나왔고, 또 다른 씨감자는 그대로 쌩쌩하게 저 혼자만 살아남았습니다.

 

  살아 있는 씨감자는 절대 감자를 달지 못합니다. 농사짓는 사람 입장에선 참 기분 나쁜 녀석입니다.

  자연의 순리를 따른다 해도 자기 종족 퍼뜨림이 본능이요, 마땅한 도리이건만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행위를 하다니요.

 

  감자 수확하는 날 녀석을 보며 제가 중얼거렸습니다. ‘참, 이기적인 놈!’ 하고. 만약 감자의 신이 있다면 그 神에게 말해 혼내주라고 할 정도로.

  그래선 절대 안 됩니다. 씨감자는 반드시 썩어 후손을 퍼뜨리게 해야 합니다. 만약 제 혼자 욕심으로 산다면 종족이 멸족할지 모르니까요.

 

  그러다가... 그러다가 문득 감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봤습니다. 씨감자가 썩지 않아 괘씸한 마음은 우리 인간의 마음일 터.

  감자의 속마음도 죽고 싶었을까? 혼자라도 오래 살고 싶지 않았을까? 후손 번식보다는 나부터 살아야 한다고 생각지는 않았을까? 하고.

 

 

  썩지 않는 씨감자를 보면서 문득 겹쳐지는 결혼하지 않는 젊은이들이 떠오릅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비혼을 선언했지요.

  결혼하지 않는 사람들은 나름의 주장을 합니다. 우리나라는 결혼할 분위기 조성이 전혀 안 돼 있다고.

 

  예를 들어 결혼하면 아이를 낳게 되고, 아이를 키우려면 우선 제대로 된 집부터 마련해야 하는데 그게 월급으론 불가능하다고.

  헌데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음에도 혼자 살겠다고 선언한 젊은이도 꽤 있다 하니 꼭 그런 문제만은 아닌 듯합니다.

 

  앞으로 우리나라 연금이 고갈될 것이라고 염려하는 기사가 자주자주 뜹니다. 아이가 태어나지 않아 일할 사람은 적고 늙은이만 늘어나니 결국 시간 흐르면 난리난다고.

  그럼 비혼 선언한 젊은이를 보고 나라의 연금 고갈 방지를 위해 결혼해야 한다면 대뜸 '우리더러 희생하라는 말이냐'고 반문하겠지요.

 

  가끔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해야 한다는 말을 듣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 희생 대열에 앞장선 분도 여럿 계셨습니다.

  허지만 나 아닌 누가 희생하기를 바라지만 내가 희생해야 한다는데 잘 나서지는 않습니다.

 

  한 알의 밀알이, 아니 한 알의 씨감자가 썩지 않는 모습 보면서 생각거리가 참 많아집니다.

  '저 녀석들도 비혼을 선언했나' 하고.


  *. 첫째 사진은 감자눈이 나온 상태에서 두쪽 잘라 만든 씨감자,

  둘째는 감자 수확날 썩지 않은 씨감자만 모아 찍은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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