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재학 시인(1955년생) : 경북 영천 출신으로 1986년 [세계의 문학]을 통해 등단. 경북대 치대를 졸업하고, 현재 대구에서 ‘송재학의미치과의원’을 경영하고 있는 시인으로 제25회 [소월시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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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하나가 역사를 흔든 적은 아주 드물지요. 그러기에 ‘역사를 뒤흔든’ 하는 순간 한 꽃을 떠올렸을 터. 아시다시피 튤립은 네덜란드 뿐 아니라 전 유럽에 ‘튤립 광풍’을 몰아치게 한 주인공이니까요.
튤립의 꽃말을 보면 재미있습니다. 붉은 튤립은 ‘명성, 매혹, 사랑의 고백’인데, 노란 튤립은 '헛된 사랑'이란 의미를 지녔습니다. 그리고 튤립의 원산지는 터키인데 터키에선 폭발적인 시선을 끌지 못했으나 1630년 무렵 네덜란드로 건너가면서 관심과 사랑을 듬뿍 받게 됩니다.
오늘 시는 해설 보지 않고 읽는 게 더 낫습니다. 읽고 또 읽으면 어렴풋이 떠오르는 시상을 즐기시길. 아래 해설은 군더더기일 뿐.
“지금도 모차르트 때문에 / 튤립을 사는 사람이 있다”
“튤립이 악보를 가진다면 모차르트이다”
이 시에서 모차르트와 튤립의 관계 모르면 읽기 힘듭니다. 간단히 말하면 튤립을 모차르트에 비유했으니까요. 어떤 의미로? 일부러 인터넷을 뒤져봤는데 모차르트가 튤립을 유난히 좋아했다든지, 튤립을 소재로 작곡했다든지 하는 내용은 보이지 않습니다.
다만 네덜란드에서 튤립축제가 열릴 때면 온 나라가 튤립으로 뒤덮이는데 마침 이때가 모차르트 음악 축제 기간이다는 내용은 있지만. 이 정도로선 시 이해에 도움 되지 않을 겁니다. 주변 이야기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할 때는 시적으로 해석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화자는 어릴 때 미술 시간에 튤립을 처음 보고 무척 들떴습니다.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 지금도 튤립을 볼 때마다 심장이 두근두근합니다. 튤립과 함께 화자에게 심장을 두근두근하게 만든 게 바로 모차르트 음악입니다. 그러니까 화자에겐 튤립과 모차르트는 동격입니다.
“리아스식 해안 같은 / 내 사춘기는 그 꽃을 받았다”
‘리아스식 해안 같은 사춘기’, 참 멋진 비유입니다. ‘리아스식 해안’은 특이한 해안 지형으로 해안선이 복잡하며, ‘곶’과 ‘만’이 많습니다.
(‘곶’은 바다 쪽으로 툭 튀어나온 육지이며, ‘만’은 육지 쪽으로 쏙 들어간 해안을 말함)
그러니까 사춘기란 아주 복잡한 심리 상태를 지닌 시기란 뜻입니다. 어떤 때 툭 튀어나왔다가 어떤 땐 쑥 들어갔다가 갈피를 못 잡게 만든다는 뜻으로 읽습니다.
“튤립은 등대처럼 직진하는 불을 켠다”
화자가 튤립을 만났던 시절은 사춘기입니다. 사춘기 시절은 후퇴를 모르고 앞으로 직진하는 삶이지요. 그래서 등대의 ‘둥근 불빛이 입을 지나 내 안에 들어왔다’고 했겠지요. 직진의 불빛이 내 안에 들어왔으니까 직진밖엔 모르는 사람이 되었고.
“내가 걷던 휘어진 길이 / 모차르트 더불어 구석구석 죄다 환했던 기억”
비록 직진의 불을 켜고 앞으로 치달았지만 내게 놓인 건 휘어진 길뿐입니다. 휘어진 길은 그만큼 힘들고 고비가 많은 삶으로 새깁니다. 그렇지만 그 시절을 어렵지 않게 이겨냄은 바로 모차르트 때문입니다. 모차르트로 하여 희망을 찾았기에.
“……튤립에 물어보라.”
내가 어떻게 사춘기를 지내왔는지 튤립에 물어보라고 합니다. 튤립은 나를 잘 압니다. 내가 힘들어할 때 모차르트 음악을 듣고 이겨냈고, 직진 본능을 늦추어 곡선의 삶이 있음을 알게 해 주었다고.
어떤 시는 해석 없이 그냥 읽는 게 더 맛납니다. 얼마나 맛있는 표현이 많습니까. 좀 어려워도 그 시행들만 읽고 또 읽어도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