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1화 : 까치집을 어떡하나
* 까치집을 어떡하나 *
시골에 살아본 경험이 없더라도 며칠 머물러 본 사람이라면 도시보다 일찍 일어나게 된다. 그 이유는 보통 세 가지다. 첫째 새가 지저귀는 소리, 둘째 닭 우는 소리, 셋째 새벽부터 들려오는 경운기 내달리는 소리 때문이다.
이 중에서 새 소리를 들으며 눈을 뜬다면 보통 행운이 아닐 게다. 다만 달내마을 같은 산골에 살고 있으면 그냥 자연스러운 일인데. "후두둑 후두둑", "호로롱 호로롱", "쑤꾹 쑤꾹", "삐쭈 삐쭈", "삐요 삐요", "삐비 삐비", "찌이 찌이 찌이", "찌리 찌리 찌"
쉴 새 없이 들려오는 새소리 속에 살고 있음은 얼마나 행복한가.
솔직히 난 소리만 듣고 어떤 새인지 구별 못한다. 아니 새 소리 듣고 구별 못할 뿐만 아니라 새를 보고도 무슨 새인지 이름 아는 경우보다 모르는 경우가 더 많다. 가끔 다른 이의 글 속에 나오는 '이름 모를 새'니, '이름 모를 꽃'이니, '이름 모를 나무'니 하는 표현을 좋지 않게 여기면서도 종종 그리 쓴다.
백과사전을 뒤져 보면 봄에 우는 새로 제비, 참새, 까치, 꿩, 멧비둘기, 소쩍새, 쏙독새, 파랑새, 밀화부리, 꾀꼬리, 물까치, 호랑지빠귀, 찌르르기, 후투티, 뻐꾸기, 휘파람새, 청호반새...
이리 많이 나오지만 아는 새보다 모르는 새가 훨씬 더 많다. 내가 확실히 알고 있는 새 울음소리는 대여섯 마리 정도뿐.
'재잘 재잘 재잘' 하며 분답스럽게 울어대는 참새야 다 들어 알 테고, '호르르르' 하며 마치 호루라기 부는 소리를 내는 휘파람새. 그리고 까치, 까마귀, 꾀꼬리, 딱따구리 등. 이 녀석들 모두가 나의 아침잠을 방해하는 건 아니다. 이 가운데서 다만 '까악!' '까악!' 하고 요란하게 울어대는 까치 소리에 잠을 깬다.
녀석의 울음소리는 다른 새들에 비해 훨씬 선이 굵다. 그래서 들으면 이부자리에 계속 누워 있을 수 없게 만든다.
가끔 찾아오는 이들에게 우리 집 뽕나무 한 그루가 자랑거리다. 오디가 엄청나게 달리니까 입꼬리가 절로 올라간다. 작년 가을 잎이 떨어질 때쯤 까치가 집을 지을 모양인지 나뭇가지를 주섬주섬 갖다 놓는 게 보였다.
일단 집 짓고 나면 부술 수 없으니 몇 번 돌을 던져 짓지 못하게 했다. 겁을 먹어선가 녀석들의 진도가 더 나가지 않아 괜찮겠지 하고 놔두었다. 그리고 까맣게 잊었다. 그 까맣게 잊고 지낸 결과가 첫째 사진에서 보는 까치집 두 채다. 한 채는 반쯤, 다른 한 채는 이미 준공 완료 상태다.
사람 집으로 말하면 등기가 완전히 끝난. 아마 까치집 건축물대장 있다면 주인이 누군지 쓰여 있을 터. 십 년 전에도 감나무에 큰 까치집을 지었는데 감나무가 넘어질 위험에 반 이상 잘라내다 보니 절로 까치집도 사라졌다.
솔직히 전의 감나무 까치집에 대해 할 말이 없다. 아니 미안하다. 우리가 이사 오기 전부터 살고 있었으니까. 나가라고 할 수 없어 두고 보다가 감나무 때문에 할 수 없이 잘랐다. 뿌리 쪽이 완전 썩어 그냥 놔두면 넘어지기 십상이다.
쓰러지면 도로를 덮치거나 아니면 아랫집을 박살 낸다. 혹 넘어질 때 차라도 지나가면 큰 사고로 이어지고, 남의 집을 부숴도 문제다. 이리저리 고민하다 결국 감나무 둥치에서 반쯤 잘랐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낸다고 세 든 우리가 주인(까치)이 만든 둥지를 부순 셈이다.
허나 이번 뽕나무 까치집은 다르다. 우리가 먼저 집을 짓고 난 뒤에 놈이 만들었으니까. 적어도 주인의 허락을 받지 않고 지은 무허가 건물 아닌가.
인간 사회라면 고소를 하고 철거를 명할 수 있지만 까치집은 그럴 수 없다. 아니 있긴 하다. 한전에 연락하기.
한전에선 까치집 때문에 골치 아파한다. 전신주에 만들어놓은 까치집은 정전사고를 일으켜 공장 가동 중단 등의 경제적 손실은 물론 화재의 위험까지 낳으니까. 연락하면 전신주가 아닌데도 와 줄까. 아마 어려우리라.
뽕나무 위에 까치집이 있으면 꽤나 피해가 온다. 오디 익을 때 깔아놓은 망사 위에 똥 갈기면 다 버려야 하고, 가만히 집에 앉아 톡톡 오디를 보이는 족족 따먹을 터.
뿐이랴, 시도 때도 없이 요란히 울어대는 ‘까악!’ ‘까악!’ 소리에는. 짝 찾는다고 울고, 짝짓는다고 울고, 새끼 낳으면 울고, 배고프다고 울고...
이 정도 일로 까치집을 부숴야 하나. 늘 야생동물 보호론자인 양 글을 써왔는데, "그냥 콱 마 부숴버려!"
사실 부수기도 어렵다. 대략 이십여 미터 넘는 둥지까지 닿을 대나무가 없다. 뽕나무에 올라가면? 그건 더더욱 어렵다. 떨어지면 사망이니까.
얼마 전 경운기 몰고 지나가시던 건국댁 어른께서 보시고 한 말씀 하셨다.
“고놈들, 완전히 고래등 같은 집을 두 채나 지어나삤네.”
한숨을 내쉬자 “마 뿌사버리소!” 하시다가 까치집을 올려다보시고는 “아이고 그것도 쉽잖네.” 하시다가 가셨다.
마지막 남은 방법은 사정하는 길. 그런단들 까치가 들어줄까?
“까치야 제발 내 사정 좀 들어다오. 너희들 집을 다른 곳으로 옮겨가면 안 되겠니? 내가 그래도 눈 덮인 날 먹이 못 구해 안절부절못할 때 베니어판 위에 사료 놓아주기도 했잖니. 제발!”
녀석들이 들어줄 것 같지 않다. 이제 곧 알을 까면 더욱 철거할 수 없는데.. 알 까기 전에 결정해야 하는데.
어떡하나, 참말로 우짜노...
*. 첫 사진 말고 세 사진은 출처를 밝히지 않아도 되는 '픽사베이'에서 퍼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