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369)

제369편 : 박철 시인의 '굴욕에 대해 묻다'


@. 오늘은 박철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굴욕에 대해 묻다
박철

밥을 먹다가 아내가 물었다
굴욕에 대해 아느냐고
나는
이러저러하게 대답하였다
아직 냉전 중이라서
조금 굴욕적이었다
밥을 먹다가 아내가 말했다
굴욕은 밥을 깨작깨작 먹는 것이라고
- [불을 지펴야겠다](2009년)

#. 박철 시인(1960년생) : 서울 출신으로 1987년 [창비]를 통하여 시인으로, 1997년 [현대문학]에선 소설가로 등단. 일상에서 얻은 경험을 녹여 쓴 시가 많아, '생활밀착형' 시를 쓴다는 평을 들음.




<함께 나누기>

굴욕은 ‘남에게 억눌려 업신여김을 받는 상황에서 느끼는 수치심이나 모욕감, 또는 그런 상황 자체’를 뜻합니다.
7월 31일 미국과의 상호관세가 극적으로 타결되었습니다만 그 일주일 전인 7월 24일 ‘한미 2+2 협상’을 앞두고 우리나라 기재부 장관 출국을 1시간 25분 앞두고 미국에서 일방적으로 취소했습니다. 그건 분명히 외교 관례에 어긋나는 아주 굴욕적인 일이라 합니다만 우린 아무 말도 못했습니다. 따지고 대들었다간 더 심한 보복관세 받을까 봐서.


오늘 시에서 두 사람 다 굴욕을 느낍니다. 화자인 ‘나’와 화자의 ‘아내’. 이 두 사람이 느끼는 굴욕은 다릅니다.

“밥을 먹다가 아내가 물었다 / 굴욕에 대해 아느냐고”

뜬금없이 던지는 아내의 말입니다. 허나 뒤 시행을 읽어보면 뜬금없이가 아니라 이미 두 사람이 다 느끼는 어떤 상황에서 이어진 표현입니다. 우선 먼저 굴욕의 뜻을 아느냐고 묻는 아내의 의도를 알아차려야 합니다. 단순히 그 단어의 뜻만을 물었음이 아니니까요.

“나는 / 이러저러하게 대답하였다 / 아직 냉전 중이라서 / 조금 굴욕적이었다”

이제 두 사람이 처한 상황이 확연히 드러납니다. 부부싸움 끝에 아직 화해가 덜 된 상황. 그러니까 조금 화가 나 있는 상태. 화가 남았으니까 굴욕의 뜻을 묻는 아내의 질문에 굴욕감을 느낍니다. 왜냐면 적어도 시인인데 그런 말의 뜻을 묻느냐고.

그러나 화자는 남자, 여자의 속을 헤아리기엔 좀 모자란 사람이지요. 허니 곧이곧대로 굴욕의 뜻을 설명합니다. 이때까지도 화자는 아내가 굴욕의 뜻을 묻는 의도를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그러니 자기만 굴욕감을 느꼈다고 생각했을 터.

“밥을 먹다가 아내가 말했다 / 굴욕은 밥을 깨작깨작 먹는 것이라고”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한 적 있다면 - 아마 부부라면 대부분 했을 테지만 - 어떤 사내도 이 시구를 대하는 순간 '아차' 했을 겁니다. 아무리 부부싸움을 했고 아직 화가 덜 풀렸더라도 밥을 차려줬다면 당연히 맛있게 먹어줘야 한다고.
아내가 미운(?) 남편에게 밥상을 차림은 굶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화해를 청하는 메시지도 담았습니다. 그런 의도를 무시한 채 아내가 정성 들여 올린 밥상에서 밥을 깨작깨작 씹어먹으니 속에 열불 날 수밖에요.

시인인 화자는 그제사 비로소 깨닫습니다. 자신의 굴욕도 굴욕이지만 그보다 아내의 굴욕이 더 크다고. 아내는 남편이란 사내에게 밥상 차려주고 싶지 않았을 겁니다. 그럼에도 의무인 양 밥상을 차려야 하는 굴욕. 그렇게 차린 밥상에서 ‘밥을 깨작깨작 먹는다?’ 단순히 정성을 떠나 자존심까지 뭉갰으니 대굴욕이 되고 말았습니다.


삶의 길에서, 또 직장인으로 살려면 한 번쯤 굴욕을 당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요? 어떤 사람은 거의 날마다 아니면 일주일에 두어 번 당한답니다. 다만 가족 생계를 생각하여 굴욕을 참으며 살아갈 뿐.
앞에서 예로 든 국가와 국가 사이의 교류에서도 굴욕이 존재합니다. 힘이 강한 나라에게 약한 나라가 당할 수밖에 없는. 사회와 국가 사이에 굴욕만 있는 줄 알았는데 남편과 아내 사이에도 굴욕 있음을 이 시를 통해 배웁니다.
그리고 미안합니다, 아내에게.

한 편 더 배달합니다.

- 사랑 -

나 죽도록
너를 사랑했건만,
죽지 않았네

내 사랑 고만큼
모자랐던 것이다
- [작은 산](20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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