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371)

제371편 : 김진완 시인의 '삼립 소보루빵'

@. 오늘은 김진완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삼립 소보루빵
김진완

집었다.
뛰어!

빨리! 더 더 빨리, 나는 다리가 짧아 흙먼지가 소보루루소보루루루 따라오지 콧속 먼지 냄새. 화끈 달은 내 몸내, 땀내, 단내. 뻐드렁니 종화녀석 한입 물기 전, 썩은 이빨내. 개천물 시궁창내. 황사 덮인 하늘 뾰죽뾰죽 간지럼 먹이는 강아지풀내.

밥 먹어
안 먹어
뭣 먹었니?

등을 쳐내려 엄지에다 모아
바늘끝 할매 머릿기름 냄새, *담바꼬 냄새
툭,
검은 피비린내
꽉, 체했구나 고모 로션 냄새. 다이알비누 냄새. 펌프물 녹냄새
두 발을 마룻장에 걸치고 혀가 발고락에 닿을락말락 비 맞은 워리
'저리 가', 개 냄새

사춘기 형 여드름보다 더 우둘투둘한 삼립 *소보루빵
오만가지 냄새 부풀다 오돌토돌 소보루소보루 엉긴
소보루빵.
내가 훔친, 삼립 하고도 소보루빵.
- [기찬 딸](2006년)

*. 소보루빵 : 일본식 외래어로 우리말로 하면 ‘곰보빵’
*. 담바꼬 : '담바고'라 했는데, 담배를 가리킴

#. 김진완 시인(1967년 ~ 2023년) : 경남 진주 출신으로 1993년 [창작과비평]을 통해 등단. 시인은 풍자적인 시를 많이 썼으며 사회 전반을 살짝 비틀어놓은 표현이 씁쓸함과 동시에 재미도 줌. 한창 좋은 시를 많이 쓸 나이인 재작년에 5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남.




<함께 나누기>

‘SPC 빵 공장에 일하던 노동자가 올해 또 아까운 목숨 잃었다’라는 기사에 도대체 무슨 빵 만드는 곳인가 하여 찾아보았더니 세상에, 삼립빵! 어릴 때 하도 맛있게 먹었던 빵이라 잊혀지지 않는 빵을 만드는 공장인데, 빵 가운데서도 소보루빵, 참 맛있었는데...
최근 3년 사이에 8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여 대통령님도 특별히 들른 산업재해로 악명 높은 공장이 되었습니다. 오늘 시는 그런 내용과 관계없이 우리 입맛을 돋우던 소보루빵을 글감으로 하여 썼습니다. 시인의 나이는 저랑 띠동갑인데 같은 경험을 공유했군요.

“집었다. / 뛰어!”

짧은 두 시행에서 주인공 행동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떠오릅니다. 화자와 또래들이 빵 가게 터는 나쁜 짓 하고 있음이. 시행이 짧은 까닭은 속도감과 긴장감을 높이기 위한 장치입니다. 이 표현 대신 좀 길게 썼더라면 긴장감이 훨씬 줄어들었겠지요.

“빨리! 더 더 빨리, 나는 다리가 짧아 흙먼지가 소보루루소보루루루 따라오지 콧속 먼지 냄새.”

가쁘게 달아나는 화자에게 몸내가 콧속을 파고듭니다. 빵 내음에 더하여 땀내와 단내와 썩은 이빨내와 개천 시궁창내까지도. 거기에 ‘황사 덮인 하늘 뾰죽뾰죽 간지럼 먹이는 강아지풀내’마저 더하니 절도범이 어린이임을 보여줍니다.

“밥 먹어 / 안 먹어 / 뭣 먹었니?”

엄마(아니면 할매?)인가, 아들인 화자에게 밥 먹으라 하나 입맛 없다는 핑계로 먹지 않습니다. 아마도 도둑질 같은 심리적 요인이 작용했겠지요. 그걸 모르고 엄마는 화자가 체한 줄 알고 바늘로 따려고 합니다. 어릴 때 엄지손가락을 실로 묶은 뒤 바늘로 콕 찌르면 흘러나오던 검은 피.

“등을 쳐내려 엄지에다 모아 / 바늘끝 할매 머릿기름 냄새, 담바꼬 냄새 / 툭, / 검은 피비린내 / 꽉, 체했구나”

체했을 때 했던 민간요법이 생생히 떠오릅니다. 우선 등을 두들긴 다음 바늘 끝을 머리카락에 살짝 문지른 뒤 찌르지요. 바늘 끝에 할매 머릿기름 냄새가 나는 까닭입니다. 담바꼬 냄새 역시 평소 담배 피우던 엄마(아니면 할머니)가 몸을 가까이 하니 물씬 풍겼을 터.

“사춘기 형 여드름보다 더 우둘투둘한 삼립 소보루빵”

소보루빵을 사전에서 찾으면 일본식 외래어라 곰보빵으로 해야 한다고 돼 있습니다. 그런데 '곰보'란 어감 역시 그리 좋지 않습니다. 옛날 천연두 앓고 난 뒤 심하게 얼굴이 얽은 사람을 낮춰 일컫던 호칭인데.

“오만가지 냄새 부풀다 오돌토돌 소보루소보루 엉긴 / 소보루빵”

이제 화자에게 삼립 소보루빵은 추억의 빵입니다. 그걸 먹을 때마다 추억과 동시에 여러 내음이 한꺼번에 풍깁니다. 어쩌면 훔쳐먹어서 더 기억날지도. 그래서 마지막 시행을 “훔친, 삼립 하고도 소보루빵.”이라 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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