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6편 : 이승하 시인의 '김천 우시장 탁배기 맛'
@. 오늘은 이승하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김천 우시장 탁배기 맛
이승하
이전 맛 같지 않구마
소 팔러 우시장에 나온 아부지를 따라와
승하야 니도 한잔 묵거라
뜨물 같은 탁배기 한두 잔 얻어 마시던
그 술맛은 어데로 가삐릿는지
씹다 더 달싹해졌는데 더 *씹다
어무이 치료비 마련할라꼬
큰맘 묵고 끌고 나온 한우 암소
하이고 나 원 참
200만 원도 안 준대여
또 소값 파동이래여?
쇠고기, 비육우 무데기로 수입한 탓이래여?
이번엔 한미FTA 때문이라네
내도 우루과이라운드 폭락 때 죽은
뒷집 박씨 아저씨처럼
솔랑은 이 우시장에 두고 가까
우시장에 소 내삐리고 와
농약 묵고 탁 죽어삐리까
소야, 니는 죽어 괴기 될 자격이 없고
내는 살아 소 키울 자격이 없다 칸다
소야, 내 손으로 널 잡아먹긴 싫었는데
내가 널 *백지 델꼬 왔다
에라이 속이 씨려 속 달랠라꼬
마시는 술맛이 왜 이 모양이고
움메에 우는 소 눈을 쳐다보며
우시장 한 켠에 앉아서 마시는 탁배기
- [사랑의 탐구](1987년)
*. 씹다 : ‘쓰다’란 뜻의 경상도 사투리.
*. 백지(로) : ‘공연히’란 뜻의 경상도 사투리. ‘맥지로’도 쓰고, 전라도에선 비슷한 뜻으로 ‘무단시’를 사용.
#. 이승하 시인(1960년생) : 경북 의성에서 태어나 김천에서 성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현재 중앙대 문창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인터넷 문학 [뉴스페이퍼]에 '내가 읽은 이 시를'을 연재하고 있음.
<함께 나누기>
시인은 원래 경북 의성 출신이나 곧 김천으로 옮기는 바람에 초중고를 다 김천에서 나왔답니다. 그래서 고향을 노래할 때는 김천을 들먹인답니다. 오늘 시도 어릴 적 '김천 우시장'의 추억을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 그려낸 작품입니다.
시로 들어갑니다.
아버지 따라 소 팔러 김천우시장에 나온 젊은 시절 화자는 시장 한 구석에 있는 선술집에 들어섭니다. 아버지가 부어주던 탁배기(탁주) 한 잔. 그때 그 술맛은 어디로 갔는지 맛이 씁니다. 술맛 자체는 예전보다 더 달착해졌건만 쓰디씁니다.
“이전 맛 같지 않구마”
첫째 시행이 시 전체를 아우릅니다. 맛이 이전 같지 않다는 말. 이상하죠. 물론 술맛이 변했다는 뜻도 됩니다. 허나 시 속에 담긴 뜻은 그게 아닙니다. 실제로는 더 달게 만들었건만 입맛엔 쓰게 느껴집니다. 왜일까요?
저때나 이때나 농촌 삶은 어려워도 지금과는 다릅니다. 저때는 아예 없어서 어려웠다면, 이때는 FTA나 우루과이라운드 같은 농축산물 개방 때문에 더 어려워졌으니까요.
“어무이 치료비 마련할라꼬 / 큰맘 묵고 끌고 나온 한우 암소”
화자의 어머니가 병환 중이라 치료비 마련하려고 한우 암소를 끌고 나왔나 봅니다. 시세 좋은 시절 같으면 제값 받을 수 있는 한우 암소. 헌데 또 소값 파동이라면서 200만 원도 안 준다고 합니다. 한미FTA 때문에 미국산 비육우를 무더기로 수입한 탓이라나요.
여기서 ‘또’란 시어가 할 말 덧붙이게 만듭니다. 이번뿐 아니고 한우 축산 농가를 멍들게 한 일이 또 있었다는 뜻이니까요. 한우가 비싸다는 핑계로 LA갈비, 호주산 소고기 사 먹은 일이 괜한 죄책감으로 다가오는 시행입니다.
“솔랑은 이 우시장에 두고 가까 / 우시장에 소 내삐리고 와 / 농약 묵고 탁 죽어삐리까”
그냥 소 팔지 않고 우시장에 두고 갈까 하고 내뱉다가, 이어지는 저번 우루과이라운드 폭락 때 죽은 뒷집 박씨 아저씨처럼 농약 먹고 죽어버릴까 하시는 아버지. 소 한 마리가 농가 가장 큰 수입원이었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소야, 니는 죽어 괴기 될 자격이 없고 / 내는 살아 소 키울 자격이 없다 칸다”
참 먹먹합니다. 소는 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키운 농민은 그렇게 가치 없게 길렀으니 자격 없다고 내뱉을 때의 심정을. 이번 미국과의 상호관세 협정 맺었지만 세부 조항은 트럼프의 손에 달려 있답니다. 제발 농민들을 괴롭히는 딴 조항이 들어가지 않기를.
“움메에 우는 소 눈을 쳐다보며 / 우시장 한 켠에 앉아서 마시는 탁배기”
쓰린 속을 달래려고 마시는 술이 오히려 더 속을 쓰리게 만듭니다. 허니 마지막 시행, ‘마시는 술맛이 왜 이 모양이고’가 이어졌을 터.
오늘 시에서 탁배기 맛의 변화로 아버지에 대한 추억까지 이끌어내는 표현이 돋보입니다. 거기에 사투리의 절절한 투입. 서정시가 표현할 수 있는 의미 있는 확장이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