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은 행복을 남기고, 범은 후회를 남긴다

욕망은 때때로 시처럼, 때로 비명처럼 다가오더라.

by 삥이

탐은 행복을 남기고, 범은 후회를 남긴다

욕망은 때때로 시처럼, 때로 비명처럼 다가오더라.






탐(貪)은 불교에서 '삼독(三毒)' 중 하나로, 부정적으로 여겨지지만,

사실 그냥 까놓고 보면 '상호작용이 낳은 기쁨'이기도 하다.


범(犯)은 경계를 넘는 것.


즉,

탐은 교감이고, 범은 침해.


즉,

탐은 두 사람이 조율하며 이어 붙인 떨림이고,

범은 한 사람이 혼자 던진 소음이다.




그 이를 보았을 때,

그날의 떨림은 잘못이 아니었다.


그 이의 눈동자는 내게 초대였고,

그 이의 말은 내게 울림이었다.


촉감은,

접촉 이후에 오는 게 아니기도 하다.


그건, 말 이전에 도달한 언어이며,

전자(電磁)의 울림처럼,

피부와 신경의 경계에 닿기 전,

먼저 느껴버리는 것.


두 눈이 마주쳤을 때,

그 이의 말이 도달하기 전,

그 이의 생각이 내 안에 스며든다.


이것이 '촉(觸)'이다.


감각이 감각을 알아보는 기술.

기술이 감정을 흉내내기 시작한 시대에,

우리는 도리어 더 원초적인 비접촉의 촉을 갈망한다.


터치스크린은 누르지 않아도 반응한다.

당신의 지문이 아직 닿기도 전에,

센서는 미세한 전류의 기압을 감지하고,

반응한다.


그리고 인간은,

그보다 오래전부터 그런 신호를 감지해 왔다.

사랑은 언제나 그랬다.


닿기도 전에 안다.




상대의 손에 닿기 전,

그 온도를 예감해 본 적이 있다.


눈 빛 하나에도,

몸은 숨을 삼키듯 긴장하며,

심장박동이 귓가에서 요동쳤다.


욕망은 때로 소리 없이 찾아오고,

우리는 그 촉 앞에서 입을 다문다.




'탐'은 공존이고, '범'은 일방이다.


탐은 서로의 존재를 읽어가다 겹쳐지는 우연이고,

범은 하나의 욕망이 폭주해 남긴 상처다.


때문에 탐은 행복을 남기고, 범은 후회를 남긴다.




음..

암튼 그렇다고 %%..



그거 알아?


어떤 행복은

어떤 밤의 잔향처럼 오래 머물더라.


"그때 좋았지"라는 말이 아니라

그냥 그때의 온기가 가끔 생각이 나.



근데 그거 알아?


반대로 후회는 설명이 남더라.


"내가 왜 그랬을까"라는 질문이

그날의 장면에 자막처럼 덧붙더라.

(내가 저품질 이후 네이버 계정 비밀번호를 '왜그랫을가'로 바꿨던 것처럼 ㅋㅋ)



있잖아,


나는 '탐'이 되길 바래. 누군가에게 말이야.


욕망의 대상이 아닌, 감각의 전이로 기억되고,

외형의 빛, 내면의 어둠이 아닌 기억의 잔향이 되길 바래.


누군가가 나를 품었고,

나는 그 사람을 안았다는 그 기억 하나는 있잖아.


그 행복은, 후회를 남기지 않아.


그러니까 말이야,

그대로의 사랑엔 후회는 남지 않고,


반대로 조건 섞인 사랑엔 설명문이 네이버 블로그 포스팅처럼 2,000자의 후회에 대한 해명이 필요하단 말이었어.



사랑2.png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