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사내가 쓰는 숫자라는 감정

수컷, 숫자, 시간, 사람, 설렘 이 모든 것을 품는 한 단어 '사랑'

by 삥이

제목: 어느 사내가 쓰는 숫자라는 감정

부제: 수컷, 숫자, 시간, 사람, 설렘 이 모든 것을 품는 한 단어 '사랑'




조회수는 "날 봤다"는 증거,

팔로워는 "날 따른다"는 보증,

연봉은 "무능하지 않다"는 증명,

순위는 "내가 어디쯤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은 GPS.


우리는 매일 이런 숫자들로 구성된 자아를

인스타그램 프로필에 걸어두고,

스스로를 납득한다.



나는 마케팅 업계에 10년 넘게 몸담아왔다.


그곳에서 숫자는 전부였다.


클라이언트의 불안을 숫자로 달래고,

대중의 욕망을 숫자로 요약하며,

정치인의 뒷면에 앉아 국민을 향해 숫자를 쏟아낸다.


기만은 통계의 고요한 얼굴을 하고 찾아오며,

진실은 늘 오차범위 바깥에 서 있다.




공리(公理)라는 말이 있다.

설명 없이도 자명한, 증명조차 필요 없는 전제.


하지만 그 공리의 반대편에는 늘 살아 있는 '이유 없음'이 앉아 있다.


나는 그 반대편에서, 종종 서사를 읊는다.


도무지 설명되지 않는 삶을.

사람을.

너를.

심지어 나를;;




"숫자에서 눈 떼 보세요. 성장의 방해물이 된답니다."


나는 종종 내 교실에서 수강생들을 상대로 그렇게 교육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다음 날,

그들은 다시 그래프를 들여다본다.


차트 속 곡선이 그날의 기분을 정한다.


기쁘면 상승,

우울하면 하락.


이상하지?



감정이 숫자처럼 움직여.


마치 코인 그래프를 밤새 보고 동태눈이 된 내 친구처럼.


하룻밤새 차를 바꿀 돈이,

하룻밤새 라면 먹을 돈으로 바뀌는 순간처럼.


숫자는 인간이 만든 가장 강력한 언어다.


수학, 경제, 정치, 심지어 사랑까지.

요즘엔 사랑도 '소모되는 자원'처럼 이야기된다.


감정은 재고가 되고,

고독은 시장성이 된다.


외로운 이들에게

감정을 거래하라고 말하는 콘텐츠가

달콤하게 다가오는 2025년 5월의 어느 날.


부처가 말했더라지.


모든 것은 무상하다. 생겨나고 사라지는 법이며, 생멸이 멸하면 고요함이 진정한 기쁨이다.

(諸行無常 是生滅法 生滅滅已 寂滅爲樂)

「금강경」 中


그러나 자본주의는 코웃음 치며 반박했더라지.


"아니, 무상한 것은 단가로 환산할 수 있다니까요?ㅋㅋ"




숫자는 정확하고,

명확하며,

공정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말하지 못한 사람들이 지워져 있다.


통계란

‘침묵한 이들을 수치화한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사랑은 "책임질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되다가도

결혼은 "내가 나도 감당 못하는데"라는 말에서 멈춘다.


여러분은

사랑이

이해를 넘어

계산의 영역에 진입한 순간을 살고 계신다.


감정을 '소모'로 정의하니,

언젠가는 닳고,

또 힘듦을 겪으실 테지.


빨래하지 않는 남편,

가계에 도움 되지 않는 와이프.


가장 가까운 존재의 가슴에 꽂는 심장을 관통하는 바늘 수백 송이.

사랑이라는 단어 속 가시는 '송이'로 표현하기에 참 적절해 보인다.





필자가 쓴 18개의 브런치 작품 중 절반 이상에서 찾아댔다던 학자이며 작가인 에마뉘엘 레비나스(Emmanuel Levinas, 프랑스, 1906~95년)가 그랬더라지.


"타인은 나의 자유를 침범하지 않고도 나를 책임지게 만든다."

(The Other, in his very face, summons me, calls for me, claims me, without thereby suppressing my freedom.)


숫자가 묻지 않는 것,

"왜 그 얼굴 앞에서 우리는 설명도 없이 떨리는가?"

그 질문만이 아직 현세에 살아있는 듯싶다.



살다 보면 이상하게도,

가장 뛰어난 경영자는 숫자만을 말하지 않더라지.

그들은 기업의 서사를 말한다.


중소기업 광고 대행사와

NIKE나 Adidas가

보인 마케팅 서사의 차이처럼

<성공 사례>의 연속에서 공리에 갇힌 대표의 한계는 명확하더라지.


스토리 없이 남은 수치는

금세 폐기되는 리포트에 불과하니까.


학자들도 결국 서사를 만든다.

그래프는 설명을 필요로 하고,

설명은 언어를 필요로 하며,

언어는 감정을 품게 된다.





나는 이제 숫자를 사랑한다.

그토록 정확하게

인간의 무너짐을 보여주는 도구니까.


그리고 나는 숫자를 미워한다.

그토록 무심하게

누군가의 삶을 삭제하는 방식이니까.


기쁘다, 그래서 외롭다.

슬프다, 그래서 숨 쉴 수 있다.


나라는 인간은

오늘도 숫자 사이를 걸어가며,

숫자가 말하지 못한 문장을 쓴다.


NAVER, Kakao, Instagram, Substack, Wordpress 속에서 어떤 곳에서는 '숫자'를 이야기하고, 어떤 곳에서는 '서사'를 이야기하는 데 울림 있는 반응은 보통 후자였고, 나 삥이는 그렇게 나무위키에 들어갔다지.


필자가 늘 단어를 해체하기도 하며, 어느 때는 원형 그대로를 바라보기도 하고, 일면식 없는 철학자를 들먹이고, 부처와 신(神)을 호출하는 모든 근원에는 오만이 아닌 말하고자 하는 감정의 명확함이 숨어있었다.


나는 외롭고,

나는 슬프고,

하여 가득하고,

하여 기쁘다는 감정의 이분법적 '공리'가 아닌 '원형'을 품어보라는 제안.


이 말을 네게 전하고 싶어서이다.


단 1명의 독자는 내 혼을 달래기에 충분하다.


알아주면 땡큐, 모르면 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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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있잖아요 그런거,


세속, 분양가, 대출 금리, 이율, 신용등급, 비혼과 기혼 사이의 계산서, 셀프 체크인, 프리미엄 옵션, 멤버십 등급, 돈이 깔끔한 진실이 되는 사회, 누군가의 '조건'으로 살아가는 자기소개서.


그리고 그 뒤에 나오는 말은,


삶의 가치, 삶과 죽음 사이의 수많은 낙인들, 미혼, 무직, 무자녀, 무소유, 무대책, 있으나 없는 사람처럼 살아가는 고요한 전쟁, 가치가 '측정 가능성'으로 환산되는 현실,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 묻기도 전에, 벌써 뒤쳐진 채 살아간다는 그 개같은 그런 거요.


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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