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유서에도 거짓말을 한다.
지금까지 썼던 글들 중,
어쩌면 가장 작고, 사적인 말의 번역일 수 있겠습니다만.. 아닙니다!! (ㅋㅋ)
오히려 1~21편을 <품어보기> 하려는 시도이기도 합니다.
'거짓말'은 사랑이 남긴 마지막 기술일 수 있으며,
'기교'는 사랑을 위장하지만,
위장은 곧 '사랑'일 수도 있음을 알아보시면 어떨는지요.
첫사랑은 사랑이 무엇인지 몰라서 뜨겁고, 마지막 사랑은 사랑을 알아버려서 조용하다.
(Le premier amour est ardent car on ignore ce qu'est l'amour, tandis que le dernier amour est silencieux parce qu'on a enfin compris.)
└ 롤랑 바르트 (Roland Barthes, 프랑스), 『사랑의 단상』 중에서
"인간은 유서에도 거짓말을 한다."라는 구절을 접한 기억이 있다.
이는 필자가 과거부터 품었던 생각과 상당히 유사한 문장이었다. 「사람은 일기 속에서도, 스스로를 위장하는구나」라는 생각.
이는 꽤나 '진짜'다.
사람들에게 "쓰기"와 "기획"을 교육하고, 어릴 때부터 글을 써왔다는 필자 역시 대부분의 일기에서는 대부분 '거짓'을 품은 기억이 많다.
이는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라며 에둘러 표현할 수 있겠으나 외려 나를 사랑했기에 더욱 그럴 수 있다.
엄마, 나 괜찮아, 나 밥 잘 먹고 있어.
삼각김밥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으나 위와 같은 하얀 거짓말로 사랑하는 존재를 안심시키려는 전략들도 세상엔 존재치 않은가.
이 말,
그게 단지 죽음 앞의 허세가 아니라는 걸.
그건 사랑이고, 미련이고,
남겨진 자를 위한 마지막 배려이자
결국 자기 자신을 위한 가장 슬픈 위장이기도 하다.
"미안했어."
라는 말 뒤에 억울함은 숨어 있고,
"사랑했어."
라는 말 뒤에 정말 사랑했던 절규는 생략되며,
"잘 살아."
라는 말은 사실 "나 없이 네가 살아도 돼?"라는 원망과 슬픔조차 섞여 있더라지.
있는 그대로 말하면, 더 고통스러운 때때로의 감정들은 우리 인간에게 하여금 '위장'이란 기술을 요한다.
왜, 있지 않은가.
우리 인간이 가장 잘하는 것,
기술이 감정을 흉내 내는 이 시대에서조차 결코 따라 하지 못하는 것,
감정도 숨기고, 표정도 지운 채 말하는 '가면 쓰기'야말로 인간만의 기교다.
"기교는 첫사랑을, 기교의 완성은 거짓말로."
기교는 감정을 진심처럼 들리게 하는 기술이다.
하지만 첫사랑 앞의 기교는 서툴다. 때문에 진심이 더 느껴지기도 한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때는 거짓을 몰라서 진심이 담겼고,
하여 진심을 몰라서 거짓 같기도 했었더라지.
기교는 익숙하지 않았고,
그래서 첫사랑은 가장 낯설기에 가장 오래 남는다.
어느 정도 크고 나면,
기교는 세련되어지고, 사람은 멋들어진다.
하지만 첫사랑이 기교를 잃은 채 진심을 품었다면,
후에 사랑은 기교를 품은 채 무너지고, 감정은 환율로 계산되는 때가 있다.
첫사랑은 '기교 없는 서툼'이었지만
마지막 사랑은 '기교 가득한 안정감'을 품는다.
영화 <노트북(2004)>을 보면 여 주인공 앨리슨 "앨리" 해밀턴(레이첼 매캐덤스)은 남 주인공 노아 칼훈(라이언 고슬링)과의 첫사랑을 뒤로하고, 대도시 속 부잣집 도련님과 약혼을 맺는다.
영화 속 노아는 '기교'의 예술인이요,
영화 속 도련님은 '환율'의 안정감.
노아는 "괜찮아"라며 평생을 집을 지으며 기다리나, 영화를 보는 청중들은 모두 한 감정을 품고 있다.
"괜찮지 않잖아, 지금 '그쪽도 날 봐줘'라고 절규하고 있잖아!"
사랑의 가장 깊은 말은 "나는 괜찮아"이다.
하지만 이는 진심일 수 없다.
그건 항상 '끝에서 하는 배려의 기교'이다.
아,
첫사랑이라는 녀석도 깊어지니 '배려'라는 '기교의 달인'이 되었더라지.
사람들은 모두 다 "괜찮아요"라는 말을 마치 사회적 관습인 양 내뱉으며, 좋은 감정을 품은 채 마무리 짓길 원한다.
허나,
유서에도, 편지에도, 일기에도, 하물며 마지막 톡에도 "괜찮아요"라는 말의 의미는 '의미 없음' 혹은 '의미 가득'이라는 두 가지 중 하나의 속뜻을 담고 있다.
사랑은,
그런 거짓말을 '진심보다 따뜻하게'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
"신은 존재하지 않지만, 그는 좋은 위안이었다. 비록 거짓이었을지라도 인간의 내면을 채워주었다."
(Gott existiert nicht, doch er war ein guter Trost. Er füllte das Innere des Menschen aus, auch wenn er eine Lüge war.)
└ 프리드리히 니체 (Friedrich Wilhelm Nietzsche, 독일 연방)
왜, 결국 니체 역시 "우리는 진실이 아니라, 거짓말로 위로받는다."라고 하고 있지 않은가!
기교는 위로의 형식일 수 있으나,
처음에는 서툰 진심을 담고, 후에는 세련된 거짓이 되지만, 둘 다 결국 사랑의 원형에 근접한 '기술'임을.
그러니,
"괜찮아, 잘 살아"
라는 말은 결국 빈 말이기보다는 어쩌면 가장 깊숙한 말일 확률을 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그 말을 하고 싶었다.
"저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