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의 연속은 비워냄으로 완성된다
물을 채웠다.
목마름보다
넘침이 먼저 찾아왔다.
사랑을 건넸다.
채움보다
비워냄이 먼저 자라났다.
나는 나를 덜어
누군가의 하루를 채우고,
당신의 말 한 줄에 다시 나를 채운다.
진흙탕이라 믿었던 곳에
바다가 흘러들었다.
당신이 나를 불렀다.
"기쁜가요?"
나는 웃으며 되물었다
"이 기쁨, 제가 평생 안아도 되겠습니까"
<Billie Eilish - come out and play (Official Audio)>
영어로는 fill(필),
일본어로는 満たす(미타스),
독일어로는 füllen(푈른),
프랑스어로는 remplir(렁플리르).
우리 인간은 그러한 '채워짐'을 겪을 때 '기쁘다' 혹은 '행복하다' 혹은 그에 준한 감정을 지닌다.
배가 고파서, 배를 채울 때,
돈이 필요해, 지갑을 채울 때,
지식이 필요해, 뇌를 채울 때,
사랑이 필요해, 마음을 채울 때.
'채운다'라는 것은
내 결핍이 사라지고 있음을 뜻하며,
결국은 가득해져서 온전히 불행치 않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반대로
가장 기쁜 날들이 연속되는 때라고
우리 인간이 '얕은 사유'로서 취급해 버리는 그때에는
사실은 채워짐의 연속이었음에도
외려 '힘들다', '불행하다'라는 역(逆)의 감정이 채워지기도 한다.
그: 삥이님.
나: 녱!!
그: 넘치도록 부으면 물이 넘쳐서 적당히 부어야 된다라는 내용인데 그걸로 제가 글을 쓰려고 했는데 그걸로 뭐하려 했더라.
나: 뭐래
우리 사회에서는 자기계발 에세이나 SNS 등에서 "물을 가득 부으면 넘치고, 적당히 부으면 잔잔하다" 그리고 "흙탕물로 채워졌을 땐 더 많은 맑은 물을 부어서 깨끗이 만들 수 있다" 등의 콘텐츠로 접할 수 있는 '채움'의 이야기가 있다.
아마,
어떤 강사나 창작자가 말하건 울림이 있는 말이어서 늘 많은 숫자(좋아요, 공감, 댓글 등)를 발생시키는 단골 콘텐츠였기에 이미 알고 계신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물을 가득 부으면 넘치고,
적당히 부으면 잔잔하다.
우리는
배가 고프다고 음식을 위 용량에 맞지 않게 채우다가 탈이 나기도 하고,
돈이 필요하다고 지갑을 분수에 맞지 않게 채우다가 터지는 것을 겪기도 하고,
지식이 필요하다고 의자에 오래 앉아있다가 외려 집중력을 잃기도 하고,
사랑이 필요하다고 소유하려다 집착을 품고 광기로 그 이를 터뜨리기도 한다.
그리고 말한다.
사실,
유명한 말인데
행운은 불운이 있어야 존재하는 개념이고,
불운 역시 행운이었어야 존재하는 개념이며,
이는 노자(老子, 기원전 571~471 추정)의 도가사상에서 엿볼 수 있는 개념일진데 노자의 대표저서 《도덕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지.
"재앙은 복이 기대는 것이고, 복은 재앙이 숨어 있는 곳이다. 누가 그 끝을 알겠는가?"
(禍兮福之所倚, 福兮禍之所伏)
즉,
행운과 불운은 서로 기대고 숨겨져 있어 분리할 수 없으며, 그러니 오늘의 복은 내일의 근심을 품을 수 있고, 지금의 근심은 내일의 기쁨을 예비할 수도 있는 것이라는 말씀일 테지.
기억해 보면,
이 사상은 우리 할아버지들이 자주 말씀하셨던 "삥이야 인생사 새옹지마란다."라는 말씀으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말이었다.
인생의 행복과 불행은 미리 예단하기 어렵고, 좋고 나쁜 일이 서로 뒤바뀔 수 있다는 말이다.
나는,
최근 며칠이 계속해서 채워짐의 연속으로 머물러있다.
짝사랑하던 남자로 취급받는 기분,
능력 있는 오른팔로 취급받는 기분,
기대되는 사람으로 취급받는 기분,
믿을 만한 사람으로 취급받는 기분,
보내기 싫은 사람으로 취급받는 기분,
조금만 더 머물면 안 되냐고 아쉬움 받는 기분.
무엇인가 외부의 말과 행동들이
내 안에 채워지고 있는 filling의 feeling.
그럼,
내가 세운 논리에 의거
내게 채워짐이 찼으니
불행은 필연(必然)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 기간이 꽤나 오래 지났는데 내겐 그런 현상이 없더라지.
알고 보니 나는 비우고, 채움을 이미 반복 중이더라지.
나는 항상 날 비웠다. 누군가를 위해.
말을,
단어를,
문장을,
목소리를,
돈을,
교육을,
기획안을,
제안서를,
사랑을,
서운을,
투정을,
마음을.
당신을 익사시켜 버릴 정도로 아주 오랜 기간 동안 아주 깊은 곳까지 비워내며,
누군가에게 "삥장님", 누군가에게 "선생님", 누군가에게 "대표님", 누군가에게 "창작자님", 또 누군가에게 "아들"이라는 호명으로 어제와 오늘과 내일을 살아간다.
많이 비워져 있기에 때로는
스스로 진흙탕 속에서 허우적거릴 때가 있으나,
애초에 내 세상인 것을 빠질 일은 없고,
비우며 건넸던 것을 받아낸 이들이
나를 채우러 오니 어느 순간 바다가 되어
진흙탕은 바닷속 갯벌이 되어 다시 생명이 가득한 터전으로 순환한다.
1%의 채움은 내게
99%의 건넴으로 환산되고,
그 환율은
1%의 불행과
99%의 행복의 공존으로 바뀌어
결국 노자의 말처럼 공존으로,
결국 그의 말처럼 적당히로 머무른다지.
아,
그럼 혹시 이때가
가장 기쁜 날들이 연속되는 때입니까?
정녕,
당신네들이 말씀하시던 그때가
제가 느끼는 지금과 준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겁니까?
그렇다면,
항상 저를 비워보겠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을 향해 묻겠나이다.
기쁨과 슬픔,
가득함과 비워짐,
사랑과 두려움을 제가 동시에 품는 삶을 지속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 감정에 대한 이야기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