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자, 기획자도 좋은데 조금 더 곁에 있는 사람
<Joe Hisaishi - One Summer's Day>
"삥이야, 너는 기술자가 되고 싶니? 아니면 기획자가 되고 싶니?"
내게 세 번 찾아올 테니 그 안에 "채용 수락"을 해달라던 前 회사 대표님의 물음,
그 물음은 내 29년 인생에 수많은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현상은 바꾸진 못했어도 내 생각은 바꾸었고,
물리적인 환경이 바뀌지는 않았어도 추상적인 클라우드들은 기존의 새하얀 순백에서 가끔은 파스텔톤의 빛들도 일렁이는 그러데이션으로 바뀌었다.
그러데이션이라는 건,
어떤 상황이든 능동적으로 반응하는 '카멜레온의 재주'를 닮아 있다.
보통,
기술자는 한계를 맞이할 때 연구를 하고,
기획자는 한계를 맞이할 때 사례를 본다.
나는,
기술도 아니고 사례도 아닌,
"그 사람이 왜 이걸 하려 하는가"를 보고 있는 편이다.
기술자는 연구에서 끝나 해결법을 찾으면 되고,
기획자는 사례 포착을 마쳐 의뢰자를 달래면 되지만,
그 둘을 품으려는 사람은 위와 아래, 그리고 옆을 동시에 품어줘야 한다. 그것이 바로 그러데이션의 미학.
(사람을 품고, 흐름을 품고, 말도 안 되는 클라이언트의 온도까지 품어야 한다.)
23세에
지인들은 내게 블로그 대행을 의뢰했으며,
그때의 나는 열정으로 붉었다.
25세에
클라이언트들은 내게 마케팅의 위로를 받길 원했고,
나는 열린 마음으로 푸르렀다.
27세에
교육생들은 내게 조회수를 물었으며,
나는 품으려는 마음으로 노란 모습이었다.
28세에
사람들은 내게 숫자 뒤 이야기를 듣고 싶어 했고,
이상하게 그때의 나는 색이 뚜렷해지지 않기 시작했다.
그때부터는 내 색이 아니라, 사람들의 색을 대신 담기 시작했다.
29세가 된 현재,
크리에이터에서 마케팅 전문가로 시작된 내 업(業)의 방향은 기획자로 변화하려는 격동의 시기에 놓여 있다.
알고 보니 내 색은 뚜렷지 않은 것이 아닌 그러데이션의 연속이기에 '하나'로서 재단할 수 없었다지.
신의 삶과 신적인 인식은 하나의 원무(圓舞)처럼 묘사될 수 있다.
(Das Leben Gottes und das göttliche Erkennen kann wohl als ein Reigen beschrieben werden.)
└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프로이센 왕국, 1770~'831년)
"모든 역사는 반복되지만,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
그래, 그 헤겔 아저씨의 말처럼 내 색은 그때그때 바뀌고, 멈추는 것이 아닌 사실 다음 단계로 이어가려는 순간의 연속이었고, 그것을 조금 멀리서 보니 그러데이션이었을 뿐이었다지.
인생 자체는 그렇게 카멜레온 처럼 그때그때 바뀌는 것이 아닌 내 기억 속 파편들의 변주 속 한 장면이었다지.
나 자신도 그렇게 돌고 돌아, 결국 다음 단계를 바라보고 있었나 보다.
누구보다 숫자에 대해 말하는 것을 싫어했으면서도,
누구보다 숫자를 잘 알아야 하는 직업을 가진 내게,
누구보다 숫자를 좇던 사람들이 바라는 숫자 뒤의 이야기들.
일명 "판짜기".
고급진말로 '기획' 혹은 '전략'.
이제껏 그랬고,
앞으로도 사람들은 여전히 물을 것이다.
"요즘은 어떤 채널이 좋아요?"
"어떻게 하면 수익이 나올까요?"
"어떻게 하면 매출이 점프할까요?"
"뭘 써야 사람들이 좋아할까요?"
나는 앞으로도 그 질문 앞에
조용한 대답으로 기획안을 건네고 있겠지.
"그런 걸 말해주는 사람이 정말 당신에게 필요한 사람일까요?"
좋은 기술자,
좋은 기획자가 어떤 사람인지 알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나이이지만,
바보처럼 바라보는
이상향(理想鄕)이 있다면
기술자도 아니고, 기획자도 아니고
그 둘을 묻는 질문의 '너머'에 앉아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무엇을 해야 할지' 말하는 사람도 좋지만,
'왜 이걸 해야 하는지'를 끝까지 잊지 않는 사람.
이 사유만이
오늘도 내게 사람들을 향해 "이렇게 합시다"라고 말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며,
그 "왜"를 매일같이 잊지 않기 위해
숫자 뒤를 바라보고,
사람 뒤를 기다리고 있다.
성과표의 숫자 너머에는,
혼자 남은 사무실에서 몇 번이고 기획서를 고치던 내 새벽이 있었고,
클라이언트의 답장이 늦어질 때면,
혹시나 하는 기대와 실망 사이에서 조용히 마음을 다독이던 때가 있었다.
그래,
'그 숫자 뒤'에는,
그저 한 번이라도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준 '그 사람'들의 작은 미소와, 답장 없는 메시지 창을 바라보며 혼자 기다린 밤이 있었다는 말이야. 수도없이 많은 밤.
나는 기술자, 기획자도 좋은데
조금 더 가까운 사람.
'함께 걷는 자'.
같이 웃고, 같이 슬퍼하고, 그런 서사에 함께 앉아있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하룻밤의 달콤한 꿈이 아닌,
영원한 잔향으로 남고 싶다.
누군가의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가장 말없이 곁에 앉아줄 수 있는 사람으로.
내 삶의 색은 오늘도 조금씩 번지고, 내일은 또 어떤 색이 더해질지 모르겠다.
머묾의 오타는 '머룸'.
머물고 있는 내 인생도, 결국은 '모름'으로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