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에서 정답보다 곁에 남는 것들
<「ブルーバード」(Blue Bird) – Ikimono Gakari>
나루토의 주제가로 유명한 이 곡은 "자유롭게 날던 새가, 이제는 누군가의 곁에 조용히 내려앉는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이건 이래서 그렇습니다."
"그건 선생님께서 아직 경험이 얕으셔서 그렇습니다."
처음 누가 내게 물었을 때,
나는 알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뿌듯했다... 라기 보단 많이 뿌듯했고,
그 명예가 증명 가능한 문서로, URL로, 숫자로 남았을 때 나는 '내가 꽤 괜찮은 사람일지도 몰라'라며 생각했어.
그래서 더 잘 말하고 싶었고, 더 많이 말하고 싶었던 때가 있었어.
그런 감정이 조금씩 쌓이며,
어느덧 교실을 만들었고,
지금은 약 3년의 인테리어 시간을 보낸 채,
약 500명이 넘는 사람들이 그 교실을 왔다가, 떠났고, 또 일부는 남아있기도 해.
그런데 이상하게,
말할수록 사람들이 곁에 머무를 줄 았았으나 아니던 때도 있더라고.
"왜 말할수록 혼자가 되는 걸까?"
"이건 이렇게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저도 잘 모르지만, 예전에 그런 이야기가 있었다죠."
"ㅇㅇ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정답이 아니라,
물음을 건네다 보니 만들어지는 건 권위가 아니라 대화.. 그리고 '관계'더라.
나를 가르침의 자리에 놓는 대신,
같이 앉는 자리에 놓아 보기 위해 한 발 내려와 본 거야.
그리고,
2023년 4월의 어느 날 누군가 처음 내 옆에 앉았고,
지금은 365일 내내 '삥장님'이라고 말을 건네는 사람이 100명이나 생겼어.
어리석은 순간들로 점철된 내 인생을 보내던 와중 어느 날 깨우쳐버린 문장.
그 문장은 바로 '지식은 권위를 만들고, 권위는 벽을 만든다'라는 그 명제(命題).
나중에야 알았어.
내 말은 '정답'이 아니라 '선긋기'가 되어 있었다는 걸.
지식은 사람을 세우지만,
동시에 사람을 가릴 수도 있는 칼날이 되기도 하는 것 같아.
나는 칭찬을 받고, 박수를 받았지만,
사람들과는 조금씩 멀어지고 있었어.
신(神)이라고 불리는 그 자들도 그렇잖아.
사람들이 믿음으로 품는 순간,
탐(貪)이 아닌 경외의 대상이 되는 순간,
누구보다 사랑을 말하는 존재이면서 누구보다 외로운 '신앙'의 대상이 되는 그런 존재들.
내가 되게 좋아하는 말이 있는데,
지금도 따르고 있는 말이야.
사회 초년생 때 어머님이 알려준 말인데,
"삥이야, 지식을 붙들면 단기간에 권위자가 될 수도 있겠지만, 정보는 시간이 지나면 휴지조각이 될 수 있단다. 하지만 그걸 사람들과 나누었을 땐, 너는 더 큰 권위자, 아니 그 사람의 곁에 선 '동반자'가 될 수도 있어."라는 말.
지식을 갖고 있어도,
그걸 무기로 쓰는 사람 말고,
짧은 문장 안에 마음을 담아내는 사람.
그리고 그걸 살포시 접어
당신에게 "종이비행기 날리게뜸니다"라며 장난치는 사람.
정보를 많이 아는 사람보다,
정보를 함께 들여다볼 수 있는 사람.
정답을 말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그 질문을 함께 안고 가줄 사람'.
그게 내가 생각하는 교육이고,
내가 바보처럼 보여도 믿는 이상향(理想鄕)이야.
정말.. 유토피아는 세상에 존재할 수도 있더라니까?
의뢰자의 가면을 쓰고, 혹은 배우고 싶은 자의 가면을 쓰고, 혹은 후임이라는 가면을 쓰고 앞으로도 '여전히' 그리고 '역시나' 많은 사람들이 내게 묻겠지.
"요즘은 어떤 채널이 좋아요?"
"어떻게 하면 수익이 나올까요?"
"어떻게 하면 매출이 점프할까요?"
"뭘 써야 사람들이 좋아할까요?"
"저희 기업은 어떤 전략을 세우는 게 낫죠?"
한 번이라도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준 '그 사람'들의 작은 미소와, 답장 없는 메시지 창을 바라보며 혼자 기다린 밤이 쌓은 경력들은 내 말의 '신뢰'를 얹어주었고,
그래서,
그 신뢰의 무기를 이용해
매 질문의 순간에서 고민을 해봐.
성과표의 숫자 너머에,
증명하기 위해 혼자 남은 사무실에서 몇 번이고 기획서를 고치던 내 새벽,
당신네의 답장이 늦어질 때,
혹시나 하는 기대와 실망 사이에서 조용히 마음을 다독이던 때를 꾹꾹 눌러 담아 고봉밥처럼 생긴 내 겪음을 통해 건네어 보는
<어떻게 하면 조금 더 같이 앉을 수 있을까>
라고 묻는 내 미래 설계 제안서.
나는 그런 사람이고 싶어.
누군가의 위가 아닌,
곁에 함께 앉아 있는 사람.
정말이지, 그런 사람이 되어 가고 싶어.
내가 건네는 이 작은 종이비행기가,
당신 곁에 가볍게 내려앉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