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나

차근차근 잘근잘근 해부해 보기

by 삥이


우리 생태계에는 아주 당연한 상식,

전제조차 필요 없는 공리(公理, axiom)가 하나 숨어 있다.




자기 자신을 잘 아는 종만이 강하게 진화되어 왔다는 것.




자연 속에서 가장 강한 무기는

약함을 숨기기 위한 껍데기이자,

그 약함을 선언하듯 흔드는 깃발이다.



다가가기조차도 벅찬,

고슴도치의 가시는 사실 등을 돌린 방어의 흔적이고,


독극물이 함유된,

오징어의 먹물은 눈치 보며 도망치는 자기 보호이며,


반경 수 km의 초식동물은 다리조차 떤다는,

사자의 포효는 외로움을 지우려는 자기 최면이기도 하다.



그리고 인간은,

신체의 약점을 감추기 위해

지식의 탈을 쓰고, 관계의 힘을 맺음으로써

정점의 포식자가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사냥을 시작한다.


우리네 사회도 그렇다.

잘 모르는 이들은 언제나

잘 아는 이들에게 휘둘린다.

결국, 세상의 쓴맛을 겪는다.


그리고 탓을 돌린다.


탓이 "본인"에게 가면 우울이요,

탓이 "남"에게 가면 동경이며,

탓이 "세상"에게 가면 같잖은 어른인 척, 시니컬한 태도로 포장된다.







<김윤아 - Going home>






01. 꼬마 아이.

└ 숫자 속에 살던 아이.




나는 숫자로 기억되는 아이였다.

그래도 후회하지 않았다.



동네에선 가장 예쁜 아이라 불렸다.

아주머님들과 누나들이 늘 나를 둘러쌌다.

(엄마피셜: "우리 아들이 최고야.")



초등학교에 들어가선

"성호야, 선생님 말씀 잘 들어야지."

그 말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였던 나는,

선생님이 화장실에 가는 시간까지 궁금해했다.



차곡차곡 쌓여가는 상장들,

높아져만 가는 시험 점수,

"성호는 너무 착해요"라는 말의 빈도.





그러다 어느 순간,

나는 공부와 멀어졌다.


대신, 향락.

쾌락이라는 이름의 장난감에 빠져들었다.



상장의 숫자는,

나를 따라오던 아이들의 숫자로.


시험 점수는,

내 주머니 속 동전의 숫자로.


칭찬의 횟수는,

눈을 피하는 횟수로 바뀌었다.



나는 숫자였다.

그래도 후회는 없다.

그때의 내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테니까.










02. 박성호.

└ 숫자를 증명하던 소년.




어느 날,

무언가에 푹, 빠져버렸다.



"성호야, 허송세월 그만 보내라"

라는 아버지의 말에 충격을 받은 정도가 10%였다면,


내가 마주한 세상이 내게 준 충격은 1000%였다.


ROAS 100%.

완벽하구먼.



재미있었다.

그 세상.



소위 "글쓰기".

고등학생 때 노트는 새카맸고,

군 복무 중에도 노트가 닳도록 글을 썼고,

대학 시절엔 이미 블로그 글 수가 1만 건을 넘었다.


조회수 따위야 뭐,

조회수보다 더 많은 이들이 어느덧 날 따르더군.


수익 따위야 뭐,

돈 가진 이들이 내게 돈다발 들고 오더군.


인플루언서 선정,

언론사 인터뷰,

전국 대회 수상,

대한민국 64번째 슈퍼애드 대상자,

직장 1년 차에 이미 진행한 연구원 강의.


그리고 차츰,

나를 믿어주며 찾아주던,

소중한 대표님들의 "광고 의뢰".


설레었다.

그 나이에,

감히 손댈 수 없던 것들이

주머니 속에 새겨지듯 들어왔다.


남들이 보기에

'20분 글 쓰고 N만원'이면 뭐 꿀처럼 보였을 테지.



20대 초반에는,

친구들과 가득하게 놀아야만 재밌는 줄 알았는데


조금 더 지나니까,

혼자 공부하는 게 '놀이'처럼 소중해질 줄은 몰랐네.



잠잔 날보다

잠 안 잔 날이 더 많은데,


그걸 감히 '노력'이라고 하기엔 너무 허세 같고..

그저 놀 듯 빠져들었던 나날이었어.



사랑했어.

돈 이전에 너를,

숫자 말고 진리를 말이야.

너 때문에 하루를 가득 채웠다는 말이야.










03. 삥이.

└ 숫자에 실망한 청년.




2023년 4월,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을 열었다.


강의 팔이를 하려던 건 아니고,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물어왔던 걸,

하나의 공간에서 체계적으로 알려주고 싶었다.


사실,

더 큰 목적은

도와주고 싶었다.


제발 좀 다른 곳에서 휘둘린 채

지갑을 텅텅 비우지 말고,

다른 사람들의 무시와 잘난 척 속에서 상처받지 말라고.



처음엔 자동차 튜닝 업체 사장,

두 번째에는 독서를 좋아하던 어떤 여대생,

세 번째는 유튜버를 꿈꾸던 어떤 직장인,

그리고 그다음 일반인, 주부, 교사, 은행원, 공무원, 작가, 개발자, 어떤 회사 대표, 창업을 꿈꾼 이, 개발자, 대행사&실행사 출신 직원들..


수많은 사람들이 들어왔다가 나갔다.


말을 아끼는 사람,

질문 대신 손짓으로 울던 사람,

그냥 '알아서 해주세요'라는 말을 기대는 사람.



놀라웠다.

나는 그들보다 더 순수했고,

그들보다 더 감정에 진심이었다.


어떻게든 해주고 싶었다.

한 마디라도 건네면,

그들의 어깨가 조금은 가벼워지길 바랐다.


수많은 밤을 새웠다.

그들의 질문,

겨우 하나에 나는 밤을 새웠다.


만들어 낸 교육자료는 1,000여 장을 웃돈다.

전부 내가 만든 연구 결과물이다.

업계에서 방귀 좀 뀐다던 이들조차

내 앞에선 위계를 세우지 못했다.


당신들도 그걸 알기에,

나를 신뢰했겠지.


내 이름은

NAVER에도, Instagram에도, 언론에도,

나무위키에도 박혀 있다.


무엇보다도

내 채널 리스트와 살아온 이력.

그게 당신들에겐

가장 강력한 포트폴리오였을 테니까.



나를 신뢰했겠지.



그런데 어떤 이는

그걸 "개꿀"이라고 표현했다.


어떤 이는

"어려우니 패스요~"라며 웃어넘겼다.


그리고 또 대다수는

'정답'이라는 도파민이 아닌

'철학'이라는 가치에 침묵하거나,

마치 처음 들어본 양 내일 똑같이 '정답이라는 도파민'을 여쭈어댔다.


그때마다,

울었다.


어느 날은 처음으로,

사람들에게 힘들다고 말했었다.

가족에게도 힘들다고 말해본 적 없었는데,



그들의 반짝임은 금세 식었고,

진심은 마치 지나가는 계절 같았다.


그것이 수업인지, 코칭인지, 위로인지

이름을 붙이지 못한 관계들이

수천 개의 눈빛으로 나를 찌르고 있었다.


하지만 또,

그때마다 사랑했다.


내 말 한마디에

작게라도 바뀌는 그 눈빛,

조금 더 다가오는 그 사람들,

한 마디라도 "감사해요"라고 말하던 그 손끝을 어루만지면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겠어?


아니,

어떻게든 사랑하지 않을 수밖에 없었겠지.



"그들의 눈빛에서 나는 수천 번 실망했다. 그러나, 또 수천 번 사랑했다. 당신들은 아닐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들 중 단 한 사람이라도 정말로 사랑할 수 있었다면"



어느 날,

내가 그런 글을 쓴 적이 있다


《나를 반(半)했다지.》


감정을 품어내어 이를 사는 사내,

대답을 얻어내어 품어내는 사내.


그게 나였고,

그게 내 사명이었고,

그래서 지금도 여전히.










04. 리더 삥이.

└ 증명하지 못하면 죽을 존재.




항상 기대되는 아이였다.


나는 '이력서 제출' -> '면접' -> '채용'의 절차를 거쳐본 적이 없었다.


대학생 때부터,

어디 강의 제안을 받을 때에도,

아니면 회사에 들어갈 때에 마저

'일로 오시죠'의 연속이었다지.


많은 이들이 나를 기대했고,

나 역시 스스로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그땐, 내가 정말 멋있는 줄 알았어.



잘해야 했다.

맞아야 했다.

넘어서는 게 아니라, 찍어 눌러야만 했다.

어중간한 1등이 아니라, 설령 실패해도 우리가 흘린 땀에 찬사를 보내길 바랐다.


때문에,

보상이 오지 않아도

나 스스로를 '증명'해야만 했고,

그 증명이 타인의 삶에 스며들지 않으면

존재 이유조차 휘청거리는 것만 같았더라지.



어쩌면,

나는 늘 누군가를 살려야 살아지는 사람이었는지도 몰라.


언제부터였을까?

건물 몇 채를 들고 있던 웨딩업체 이사님이 죽고 싶다며 쓰린 눈물을 흘리던 순간을 보았던 27살의 청년이었을 때?



대한민국 광고계 거장,

그 많은 이들의 머리 위에 있다던 정점 포식자.


박웅현 님도 말씀하셨지.

"광고인은 기업을 진단하는 의사예요. 살려야 합니다."

(원문: 저는 광고인을 글 쓰는 사람이 아니라 의사라고 정의했어요. 기업의 문제를 진단하고 처방하는 사람이라는 뜻이에요.)


돈보다도,

성과보다도,

진리 같은 걸 좇았다.


그러나

현실은 술이었고,

현실은 숫자였고,

현실은 서로의 마음이 비어버리는 속도로 서로를 거래하는 곳이었다.


그래도 나는,

그 와중에도 지키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이 나를 원하든 말든,

죽어서도 내 품에서 지켜내고 싶은 감정.


어쩌면,

멍청해 보이겠지.


괜찮아,

나는 그래도 멍청이 할래.



잠잔 날보다

잠 안 잔 날이 더 많다.

나와 함께하고 싶다는 사람들,

"삥이님 저 이거, 삥이님한테 접대하는 거예요"

라며 서울 가기 전인 나를 맞이해 주던 여러 타회사 선배들의 웃음 섞인 농담까지.




여전히 당신들은 묻지.


"어떻게 그렇게 만들었냐"라며,


미천한 내 기술 따위를 궁금해하실 수도 있겠지만,

나는 사실 '내 감정의 방식'을 말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내가 사람을 쓰다듬는 방식,

내가 사람을 쳐다보는 방식,

내가 사람을 지켜내는 방식.


그게 기획이 되고,

그게 디자인이 되고,

그게 마케팅이 되고,

그게 브랜드가 되었을 뿐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런 걸 '가치'라고 부르지 않는다.

세상은 '성과'만을 기억한다.


Baron과 Hershey(1988)가 검증한

『Outcome bias in decision evaluation.』 연구 결과지.

사람들은 의사결정의 품질보다 결과의 좋고, 나쁨으로 판단한다는 것.

일명, 성과 편향(Outcome Bias).



우리는 스스로를 속이는 데 전문가다.

즉, 가증스러운 인간이라는 말이다.


가증스러운 나는,

늘 그 '성과'의 얼굴을 하고 있어야만 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그 성과조차 내 감정의 가면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탄생했지,

내 브런치 첫 글.


《나는 내 인생의 배우다》










05. 가면 삥이.

└ 책임의 무게.




증명하지 못하면,

누군가는 다친다.


그리고 결국,

그 눈빛에 내가 다친다.


그들의 눈물을 내가 감당해야 한다.

당신이 진짜 광고인이라면, 그것은 감당해야 할 사랑의 무게이다.


말 한마디는 어떤 이의 밥줄이고,

PPT 한 장이 어떤 이의 생계였다.


무너질 수 없었다.

힘들다고 말하지 못했다.

피곤하다고 내색하지 않았다.


그러면 사람들은 안심하니까.

그게 내 이름에 붙은 무게였을 줄은 나는 감히 몰랐어.



나를 아는 사람은

늘 무언가에 흔들리고,

늘 그날그날의 감정에 파도처럼 젖어 있단 걸 안다.


하지만 책임은 사명이다.


내가 무너지면,

내 말을 믿고 따라오는 이들이 넘어질 때 손잡아줄 수 없잖아.




"증명하지 못하면, 누군가는 다친다."


그 말을 되뇌던 밤,

사람들의 눈빛이 떠올랐다.


어떤 어머님의 한숨,

어떤 아버님의 기대 섞인 눈망울,

딸을 시집보내려던 어떤 교육인의 얼굴을 봐버렸기에,


나는 그 얼굴들이

나를 찌른다는 걸 알면서도

그 안으로 들어갔다.


사랑처럼.

헌신처럼.

늘 처음처럼.

(처음처럼 드실 분? ㅈㅅ ㅋㅋ)






내가 왜

산문도, 시도, 정보의 나열도,

일기도, 뭣도 아닌 걸 써대냐고?


궁금하거든,

내가 나 자신이 궁금해서


고백하고,

반성하고,

자백하고,



내가 당신이 궁금해서


해체하고,

분석하고,

안아주고.


그렇게 두 달간 탄생한 내 브런치 글은 이제 49개째야.



난,

진리가 궁금해.


왜 모든 학문의 가장 깊숙한 곳에는 늘 사랑이 있는지 너무 궁금하단 말이야.









06. 다시 꼬마 삥이.

└ 나 기싱꿍꼬도.. 힝..




나 이제,

책임지러 간다.

또 다른 도시로.


수많은 조언들,

수많은 제안들.


어깨 위에 새겨진 말들과,

기억으로 남은 눈빛들과 함께.


그들은 안다.

내가 약하다는 걸.


그리고 그들은 또 안다.

내가 강하다는 걸.


말장난처럼 들릴지 몰라도

그 말은 사실이다.



내가 브런치를 쓰는 이유?


정보의 '나열'이 아니라

감정의 '해체'를 하고 싶어서였다.


지식이 아니라, 진심을 쓰고 싶었고,

수치가 아니라, 서사를 남기고 싶었다.


여긴 내 학문이 머무는 곳이 아니라,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방식이 드러나는 곳이니까.






세상이 내 어깨에 올라탄 적은 없다.


나 따위가 뭐라고.





내가 먼저 등을 내줬다.

누구도 기대지 않더라도

나는 먼저 팔을 벌리고 있었거든.


기댈 데 없는 사람들에게,

울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차마 혼자라는 말을 못 하는 사람들에게.
















그래도

가끔은

어느 품속에서

아무 생각 없이 잠들었으면.


그런 밤이 있었으면.


똑똑하지 않아도 되었으면.


그냥 삥이여도 되었으면.










//

그래도, 기대된다.

앞으로 내가 설 나날들이

한참은 더 남았으니.


나는 여전히,

나이 30을 바라보기 이전의 아이.


사랑해야 할 날들이

내게 너무 많이도 남았거늘.


이 모든 것이

내게 허락된 축복이라면,

이건 분명, 신이 내게 준 선물이라 믿겠노라.




하여,

내 당신께 감사의 기도를 바치리다.





사랑합니다,

생의 첫날부터 이름을 불러준 부모님.


사랑합니다,

이토록 서러운 감정을 배우게 해 준 나를 스쳐간 당신들.


사랑합니다,

오늘도 내 마음속에 살아 있는 당신.


사랑합니다,

눈물의 밤에도 내 등을 감싸주신 신이시어.


사랑합니다,

내 가장 오래된 친구. 나.





ㄹㅇ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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