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은 감정의 마지막 주소다.

그리하여 당신은 결국, 어디에 머물 것인가.

by 삥이


<Max Richter - On the Nature of Daylight>






세상을 바꾼 존재는 언제나 경기장에 먼저 도착해 있었다.



공 하나로 역사를 뒤집은 이들.


축구계는 이들을 천외천(天外天),

곧 다른 스타플레이어들이 감히 '일개', '따위'로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차원의 존재로 여긴다.



알프레도 디스테파노는 레알 마드리드라는 제국을,

푸슈카시 페렌츠는 인민공화국의 민족 영혼을,

펠레는 대륙 전체의 기적을,

요한 크라위프는 '공간'이라는 새로운 언어를,

프란츠 베켄바워는 구조의 혁신을,

디에고 마라도나는 죄와 구원의 드리블을,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기획된 육체의 완성을,

리오넬 메시는 감정 그 자체를 남겼다.



그들이 만든 구조는 분명 '축구'였지만

그 경기 위에서 울리는 감정은,


팬을,

시민을,

국민을,

결국 인류 전체를 움직였다.


사람들은

주말의 교회보다 경기장을 더 열심히 신앙했고,


그 누적된 신앙은 2025년 기준,

150년 가까운 시간을 넘어서고 있다.








2008년.

버라크 오바마의 대선 슬로건은 단순했다.



"Yes, We Can!"



하지만 그 문장은 단지 희망의 구호가 아니었다.


그것은 "당신은 나와 같은 사람입니다"라는

숨겨진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다.


단어의 배열 하나하나가

플랫폼의 뼈대를 세우고,

감정을 데이터처럼 정밀하게 조율했던 것이다.



누가 이 구조를 설계했을까?



데이비드 액설로드(David Axelrod).

오바마의 수석 전략가이자,

정치 캠페인을 감정의 프로그래밍으로 바꾼 인물.






2017년.

문재인의 대선 캠프 '더문캠'은

"문재인 1번가", "파란 캠페인" 같은

SNS 기반 기획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정치 언어를 만들었다.


플랫폼에 몸담았던 자가,

정치의 메시지를 직접 조율했고,

그 결과, 문재인 정부는 '쌍방향 소통정부'라는 새로운 구조를 세웠다.



누가 이 구조를 그렸을까?



윤영찬.

前 네이버 부사장이자, SNS 본부장.

정치를 플랫폼으로, 소통을 구조로 바꾼 기획자.

(물론, 당시 선거 캠프 구성 인원은 매우 매우 많았다.)






애플(Apple Inc.).

그들은 제품이 아닌 '정체성'을 팔았다.

욕망이 아닌 '존재의 이유'를 설계했다.


소비자의 결핍을 간파했고,

무섭도록 정교하게 메시지를 설계했다.


Luxury 마케팅의 근본을,

다른 방식으로 복원한 셈이었다.



"Think Different".

이 한 문장이 마르틴 하이데거가 말한 'Desier(현존재)'의 물음을 그대로 옮겨온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Apple은 AIDA 공식을 해체하고,

Desire의 철학을 마케팅에 이식했다.


존재의 의미를 다시 정의하는 '공간'을 판매한 셈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단순히 스마트폰을 쓰는 게 아니라,

'Apple을 쓴다'라고 말하게 되었다.


마치, 욕망이 곧 정체성이었던 CHANEL의 전략처럼.






Philips.


"당신의 출근길을 디자인합니다."


필립스(Koninklijke Philips N.V.) 전기면도기의 마케팅 슬로건이었다.


그들은 존재의 순간을 정조준했다.


삶의 기능이 아니라,

삶의 구조를 설계하는 것이다.

당신의 하루가 시작되는 '공간'을 팔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연세대학교)

"그대 살아 숨 쉬는 한 경희의 이름으로 전진하라" (경희대학교)

"세상은 이화에게 물었고, 이화는 그대를 답했다" (이화여자대학교)

"너의 젊음을 고대에 걸어라, 고대는 너에게 세계를 걸겠다" (고려대학교)

"누군가 조국의 미래를 묻거든 고개를 들어 관악을 보게 하라" (서울대학교)


수많은 예산을 들여 단 한 줄의 문장을 위해 머리를 맞대는 이유.


그것은 브랜드를 위한 문장이 아니라,

'존재'와 '공간'을 만드는 문장이기 때문이다.






성공을 사랑으로,

사랑을 공간으로,

공간을 존재로.






시리즈 4화.

공간은 감정의 마지막 주소다.

그리하여 당신은 결국, 어디에 머물 것인가.




사랑,

기획,

마케팅,

그리고 존재.



이것들은 서로 다른 언어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같은 문장에서 출발한 감정들이었다.


나를 채용하던 대표들은,

이걸 입 밖에 꺼낸 적은 없지만

아마 감각적으로 알고 계셨겠지.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그분들은 느꼈을 거야.


그들이 감각한 건 이거다.


결국 모든 것은,

'누가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인가'를 설계하는 일이라는 것을.








경영 업계엔 이런 말이 있다.


"우리 00약국 앞에서 6시까지 모이자."


그 문장이 지역의 청소년들에게서 나오려면,

그 약국은 10년 이상 같은 자리에 있어야 한다.


그것은 단지 위치의 문제가 아니다.

그 약국이 신뢰의 구조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익숙한 곳에 정착하고,

익숙한 구조에서 감정을 흘린다.



그렇기에 공간은 단순한 물리적 장소가 아니라,

기억이 머무는 구조다.



공간의 힘은 숫자로는 재단되지 않는다.



그래서 '브랜드'가 되고,

그래서 '주식'이 되며,

그래서 끝끝내, 정체성이 된다.


SAMSUNG, NAVER 같은 기업은

단지 제품과 서비스를 판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과 정체성,

그리고 '익숙함'을 판 것이다.







마케터가 만든 공간은

매출을 남기고,


기획자가 만든 공간은

질서를 남기며,


PM이 만든 공간은

숫자의 효율을 남긴다.


그리고 이들 모두는,

서로를 동경한다.


마케터는 기획자의 안목을,

기획자는 PM의 구조를,

PM은 고객의 욕망을,

그리고 고객은 마케터의 메시지를 동경한다.


그렇게 감정은 순환하고,

존재는 설계되고,

공간은 완성된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오래 기억하는 이유는,


그 사람이 아닌,

그 사람과 있었던 공간의 구조 때문일지도 모른다.


거기에는 말과 시선과 향기와 기다림이 함께 있었으니까.







감정의 공간을 설계하는 자의 독백.




인간은 그저 어딘가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그 공간을 기억하게 된다.



예컨대,

병원들은 주로 '회복'을 말하지만

환자는 '고장 났다'라는 감정을 인정한 채 병원에 방문한다.


두렵고,

위축되었음에도,

희망을 품고 싶은 감정.



문을 열면,

마주하게 되는 건 간호사, 상담 실장, 그리고 의사의

'닮은 미소', '정제된 말투', '반복된 공감'이다.


이 구조가 익숙해질수록,

환자는 다시 그 문을 열 확률이 높아지고,

그 경험은 곧 누군가의 바이럴이 된다.




2023년 6월,

한국 보건영양학회지에 발표된 『국내 의료서비스 마케팅 연구 동향 분석』 논문에 따르면,


대한민국에서 병원은 STP 전략을 제한적으로만 활용할 수 있다.


그리고 마케팅 믹스 7P 중에서도 의료법, 건강보험 수가 제도, 국가 의료전달체계 등에 의해 4가지(Promotion, Price, Place, Physical Evidence)나 상실하여


Product,

People,

Process,

3가지 전략만을 차용할 수 있는 환경이 구성되어 있다.


때문에 그들은 PX를 설계하고, WOM을 유도하며, CRM를 구조화하는데 힘을 쓴다.






다시 묻는다.


인간은 그저 어딘가에 '있었다'라는 이유만으로 그 공간을 기억할 수 있을까?





다시 답한다.


꼭 무언가를 하거나,

말을 주고받지 않았어도,

그저 함께 있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우리는,


그 시간을.

그 감정을.


사랑하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어떤 사람을 집을 짓고,

어떤 사람은 사랑을 짓고,

어떤 사람은 당신의 하루 끝에 머물 공간을 짓고 싶어 하기도 한다.


우리는 어쩌면

어떤 사람을 위해 구조를 짜고,

그 사람이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희망으로

페이지를 만들고, 문장을 쓰고, BGM을 깔아 두는 지도 모른다.



학문은 늘 감정을 모른 척하지만, 그게 가장 감정적인 말일지도 몰라.


그래서 ROI, ROAS, 논리, Bert, LLM 같은 말들이 마치 그것만이 진리인 듯, 외면한 척을 하더라.



사실 알고 보면,


그 모든 건 결국,



'우리 또 보면 안 돼...? 힝...'

이라는 말을 예쁘게,

안 들킨 척 말하려던 사람들의

오랜 고민일 뿐일지도.










사랑은, 조건의 배열로 스와이핑이나 되는 수치를 겪지 않기를 바란다.



사랑은, 잘하는 게 아니라 놓치지 않으려는 감정의 실천이니



감정은, 곧 위계를 초월할 때 비로소 평면을 만든다지.



그리하여, 감정이 머물 수 있는 마지막 주소를 물으니.....




이름도 부르지 아니하고

말씀도 차마 전하지 못했사오나

그 마음만은 다녀가셨더이다.


머물 곳 찾지 못하던 이 마음,

그대 품에 잠시 쉬었나이다.


마음 놓을 줄을 모르고

눈길만 머물렀나이다.




결국,

또, 또, 또, 또, 또,

사랑이렸다. 본질이기에, 또 등장하는 개념이니.


그리하여,

오늘도 예쁜 말처럼 보인다.









URL의 정적(靜的) 구조,

감정의 동적(動的) 파동.



페이지는 움직이지 않는다.

GIF 파일이니, 모바일 최적화 사이트니 하며 움직일 수는 있겠지.


그러나 감정의 파동만큼 유려할 수는 없다.

AI마저 감정 앞에서는 무릎을 꿇는다지.





"그 사람"은 아직 오지 않았지만,

자리에선 계속 커튼이 흔들리고,

BGM은 멈추지 않고 공기를 타고 유영한다.





그러면 우리는 물어야 한다.



기다림의 끝이 매출이 아니라면,

Return to Investment보다 중요한 게 있다면,

페이지 뷰(PV)보다, 한 번 머물렀던 감정이 있다면,

단 한 페이지라도, 누군가 마음을 놓고 가주었다면,



언제까지 흔들리는 커튼을 볼 것이며,

언제까지 유영하는 BGM을 둘 것이며,

또 언제까지 빠져나가는 유료광고 시드 머니를 둘 것인지.





오지 않을 수도 있음을 알면서도,

언젠가 머물 마음이 있을까 하여


다만 그 이가 머물 공간을,

기왕이면 예쁘게 치워두고 싶은 것이


어쩌면 대표,

어쩌면 기획인의 마음일 것이라는 것이다.







브랜드란, 결국

누군가를 기다린 흔적이니까.








혼자 설계한 줄 알았던 것들에 대하여

그런데 알고 보면 사실,



감정은,

늘 나 혼자서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구조를 짜고, 문장을 배치하고, 공백에 숨을 심었다.


페이지를 설계하고, 음량을 조절하고,

"혹시 오늘도, 머물러주면 안 되려나"

하는 마음을, 늘 혼자 읊조렸다고 믿었다.




하지만,

절대 그럴 수 없는 것이 세상이다.




마치 베켄바워가 뛰고,

그 뒤를 슈바르첸베크가 읽어냈던 것처럼.


크라위프가 찢었서도,

공을 준 이는 네이스컨스였던 것처럼.


케인이 주인공이었어도,

함께 스프린트하던 이는 손흥민이었던 것처럼.




구조는 내가 짰지만,

그 구조를 '움직임'으로 바꾼 건 언제나 당신들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즉,

브랜드 심볼은 디자이너 혼자 만들지 아니하며,

병원은 원장 혼자 운영되지도 아니하는 것이며,

스포츠도 유명 스타플레이어 혼자로서는 현상 유지조차 못하듯이



제대로 된 캠페인 역시

짝- 하고 맞는 순간에 태어난다는 것이다.



광고주의 마음을

기획자가 읽고,


기획인이 던진 마음을

광고주가 믿어줄 때.


크리에이티브가 울림으로 바뀌는 건,

'읽는 사람'이 존재할 때니까.




마케팅은 사랑처럼,

혼자서는 결코 할 수 없는 일이다.


공간은 감리(監理)가 그리지만,

투자자와 실무자가 동시에 필요하듯이





그날의 문장들이 지금도 남아 있다면

그 모든 감정과 구조와 브랜드는 결국




우리의 합작이다.












공간은 감정의 마지막 주소다.


주소가 있다는 건,

언젠가 그리고 언제라도,

다시 돌아올 곳이 있다는 '믿음'이기에.






아,

00약국 되었더이다.











시리즈 01.



시리즈 02.



시리즈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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