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을 찾은 어느 환자의 이야기

이 사람 뭐야, 멀쩡해 보이는 데 왜 온 거지?

by 삥이


어느 날, 한 남자가 진료실에 들어섰다.




말끔한 셔츠, 크게 뛰어나지도 않지만 부족하지도 않은 괜찮은 겉모습, 그리고 모나지 않은 말투까지 장착한 그는 겉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러나 이상했다.


그는 증상을 말하지도 않았고, 고통을 호소하지도 않았다.


다만 스스로를 지나치게 정리하려 애썼고, 웃음과 말끝의 쉼표까지도 너무 정확했다. 마치 대기업에 다니는 화이트컬러 계열의 직종 혹은 공무직에 종사하는 사람 같았다.


나는 그를 앉혀두고 문진표 대신, 그가 던지지 않은 질문들을 상상해 볼 수밖에 없었다.


'이 사람.. 뭐야.. 왜 온 거지..?'


그 순간, 무엇인가 한 질병명이 떠올랐다. 며칠 전에도 비슷한 환자를 본 기억이 문득 뇌리를 스쳤다.


물을 한 잔 마신 뒤 그 남자(환자)에게 말을 건네었다.



"혹시 너무 많이 시도하고 계신 건가요?"


"무언가 이루지 않으면 존재를 부정당할까 두렵진 않으세요?"


"쉬는 게, 죄처럼 느껴지시나요?"



그는 고개를 끄덕이지도 않았지만, 나는 이미 그가 불안과 성과의 옷을 입고 있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건, 수많은 환자를 만나온 의사의 직감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그 환자가 아니라,





내 안에 있는 누군가처럼 느껴졌다.








<nafla(나플라) - 슬픈 노래만 들어 (saturday)>










[정신건강 진단서]


성명: 박00

성별/연령: M / 만 29세(연 30세)

주소: 내면, 불안과 성과의 경계선

작성일자: 2025년 9월 15일



진단명

고기능 불안 증후군(High-Functioning Anxiety Syndrome)

DSM-5, ICD-11에 정식 등재되지 않은 질병명이나, 임상적으로 다수 관찰.



증상

멈추지 못하고, 쉬지 못하고, 증명하지 못하면 존재가 부정될까 두려움.



임상 소견

외관: 정돈된 태도, 말끔한 복장.

정동: 웃음은 있으나 부자연스러움.

언어: 과도한 자기 검열, 정확한 쉼표.

사고: 성취 중심적, 자기비판적 경향.



진단적 판단

환자는 환자가 아니다.
그러나 환자가 아니라고 말할 수 없는,
이 시대 다수의 '숨은 환자' 중 하나다.



진단 및 처방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용인하기.

휴식을 실패가 아닌 과정으로 받아들이기.

자기 서사 재구성을 위한 글쓰기.

타인과의 관계에서 '성과 말고 친밀'을 경험하도록 처방함.



발급일: 2025년 9월 15일

발급인: ㅇㅇ정신과의원, ㅇㅇㅇ의사.





위 진단서는 비록 한 사람의 이름으로 발급되었지만, 사실은 우리 모두의 차트에 이미 기록되어 있는 집단적 병명일지도 모른다.


정신 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DSM)과 국제 질병 분류(ICD)에는 '고기능 불안 증후군'이 정식 질병명으로 등재되어 있지 않다.


공식적으로는 '고기능 우울'만이 진단명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실제 사회에서 관찰되는 현상은 다르다. 고기능 불안 역시 일상 속에서 자주 발견되는,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병이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고대 그리스에서는 'σχολή(scholē)'라는 단어를 두고 '여가'. 즉, 쉬는 것을 의미했었다고 한다.


여기서 오늘날의 'school(학교)'라는 말이 파생되었다는 것에 놀라는 이도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학교'라는 단어가 본디 부정적인 감정을 유발하는 단어가 아니었기에 그렇다.



배움은 쉼에서 시작했으며,

사유는 여백에서 싹튼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 바로 "스콜레/슐레"라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의 우리는 이 단어를 전혀 다르게 받아들이고 있다.



우리는,



멈추는 순간 죄책감을 느끼고,

쉬는 행위를 실패로 받아들이며,

자기 계발이라는 이름으로 스스로를 몰아세운다.




한국계 독일인이며 동시에

철학자이자 작가의 삶을 사는 한병철.


그분의 저서 『피로사회(2012)』에서는 아래와 같은 문장을 말한다.


"피로사회는 자기 착취의 사회다. 피로사회에서 현대인은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이다.", 또한 "규율사회는 부정성의 사회이다." 라고 말하며 이전 사회와는 다르게 현대 사회에서는 다른 형태로서 '착취'가 이루어진다고 말하고 있다.




고대의 인간은 쉼 속에서 배우고,

중세의 인간은 기도 틈에서 성찰했으며,

근대의 인간은 혁명 속에서 권리를 쟁취해 왔다.



그런데 현대의 인간은,



멈추지 못하는 불안을 안고,

스스로를 끝없이 평가하는 존재로 살아간다.






소개팅에서 내가 그 이에게 숫자로서 평가당하기 이전에,


이미 내가 나를 끝없이, 분 단위로 평가하며 살아가고 있었던 것처럼.




대한민국 헌법 제10조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그러나 현실 속 우리는 자유로운 주체로 태어났음에도,


신자유주의 사회의 시민으로 살아가며,


자신을 하나의 스타트업처럼 끊임없이 갱신해야 하는 삶을 강요받는다.




불안은 개인적 증상이 아니라,

어쩌면 구조가 낳은 집단적 합병증이 아닐까.



어느 날은,

나는 결국 스스로를 진단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땅히 할 것도 없네 찾아온 주말인데

이제는 버릇이 됐지 난 작업만 하는 게


요새는 신나는 노래들이 울려 퍼지네

내 방안에서는 아직도 추운 겨울인데


난 멀리서 지켜봐 사람들의 표정들과

서로 바라보는 눈빛이 행복해 보여 다


내 직업은 똑같아 매일이 난 토요일 밤

멍한 맘으로 신난척하며 난 공연을 가



오늘은 날이 많이 덥데


이럴 때일수록 기분이 좀 업될


곡들이 잘되니 만들어야 될 때


그럼 이건 나 혼자만 들을래 I am okay



혼자 행복한 너는 비겁해


난 갇혀있지만 자꾸 아닌 척해


아무도 듣지 않아도 상관없기에


그럼 이건 나 혼자만 들을래 I am okay






위 노래 가사 중 "I am okay"라는 말을 반복하는 그의 목소리를 우리는 고백이라 부를 수 있을까.



아니면,

그저 자기 자신에게 허락을 구하는 방식일까.



"나는 괜찮아(I am okay)."

이 문장은 누군가에겐 마침표처럼 들리지만,

어쩌면 침묵을 허락받기 위한 통과의례일지도 모른다.



마치 병동 입구의 자동문처럼,

우리가 들어설 수 있는 감정은 미리 정해져 있는 듯하다.



슬픔도, 고통도, 피로도,

이 안에서는 "그래도 괜찮아"라는 말로

포장되어야만 한다.



누군가는 이 말을 되뇌며

스스로를 달래고, 치료하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은,

자신의 고통을 스스로 무효화하는 기술을

매일같이 연습하는 걸지도 모른다.








작업실이라는 공간은

겉으로 보기엔 자유롭고, 젊고, 창의적인 감각으로 가득 차 있지만,



들여다보면,

그 안엔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은 내면의 감옥이 자리 잡고 있다.



토요일 밤마다 공연장을 찾아야 하는 삶,

무대 위에서 '신난 척'을 해야만 하는 직업.



누구도 그렇게 하라고 시킨 건 아니지만,

스스로를 채근하듯 조이고, 괴롭히고, 다시 그려내야 하는 삶.




사람들이 행복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순간에도,

우리는 멀리서 조용히 말한다.


"나는 괜찮아."

"I am okay."


하지만 그건 진짜 안부가 아니라,

혼자 살아남기 위해 익혀야만 했던 생존 문장일지도 모른다.



삶의 언어가 점점 축소되고 있는 이 시대에,

우리는 감정조차도 미리 허가된 문장 안에서만 말할 수 있다.



"나는 괜찮아."

그 말속에 숨어 있는

"사실은, 너무 안 괜찮아."라는 고백을

우리는 끝내 꺼내지 못한 채,


또 하루의 작업을 시작한다.






챙피하잖어.












그날도 그랬다.


나는 어딘가의 진료실을 나섰고,
누군가의 상담을 했고,
누구의 안부를 들은 것 같았다.


그리고 익숙한 문장을 되뇌었다.




I am okay.
나는 괜찮아.





말끝을 붙잡고 있던 그때,


문득 거울 속에 앉아 있는


나 자신을 바라보게 됐다.








2.png









내 모습은,






의사도 아니었고,





환자도 아니었으며,






그냥 '괜찮은 나'에 중독된 채






'혼자 중얼거리던 사람.'이었다.








진료실도, 작업실도,

어쩌면 처음부터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건 그냥



누군가 되어보려는 나의 상상이었고,

사람처럼 살아보려는 내 방식이었고,

오늘 하루를 무사히 끝내기 위한,

내 마지막 생존극이었는지도.


그럴지도 모르지.






"I am okay."




다시 말을 꺼내어본다.

아무도 듣지 않겠지만 허공에 대고.





그러는 채로,

나는 컴퓨터를 껐다.







그래도,

그 말이 없었다면 오늘은 미소를 머금은 채로 못 넘겼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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