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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J Jul 10. 2024

웨딩드레스에 검은 줄을 긋다

D-Day


7월 첫째 주 서울 날씨 예측, 신기하게도 생각했던 준비기간 및 결혼식 당일날, 신혼여행 출발일(목금토일)만 딱 비가 안 왔다


7월 장마기간과 딱 겹쳐버린 우리 결혼식. 제발 비만 오지 마라, 제발 비만 오지 마라 했던 기도가 통했던 걸

까. 전시장 설치에 들어간 목-금요일, 결혼전시 당일 토요일, 그리고 신혼여행을 떠나는 일요일까지 기적적으로 비가 오지 않았다. 이틀 간의 전시장 준비와 오프닝 행사 식순 준비로 우리는 눈코 뜰 새가 없었고, 당일은 거의 3시간도 자지 못한 채 정신없이 집을 나서 메이크업샵으로 향했다. 


새벽부터 메이크업 시작


메이크업이 끝나고 예복으로 갈아입으려던 찰나, 신랑 정장을 꺼내보고는 아차, 큰일 났다 싶었다. 사실 적어도 하루 이틀 전에는 정장을 꺼내서 확인해봤어야 했는데, 입은 적이 없으니 괜찮겠거니 했던 옷은 구김이 많이 져있었다. 부랴부랴 이른 아침부터 주변 세탁소를 검색했다. 아무도 없이 둘이서 모든 것을 챙기다 보니 순간순간 발생하는 당황스러운 일들도 모두 우리의 몫. 다행히 열려있던 세탁소를 하나 발견해(이 세탁소는 오픈전이었는데, 사장님께서 다행히 문을 열어두고 오픈 준비를 하고 계셨다. 거의 오전 6시~7시쯤) 죄송스럽다는 말을 연신하면서 겨우 옷 다림질을 맡기고 10분~20분 만에 찾아 전시장으로 향할 수 있었다. 사실 전시도 마무리할 부분이 남아있었고, 남자 정장 벨트도 깜빡했었다. 사실 우리가 이렇게 칠칠맞지 못했던 것은 전시장 대관을 길게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충분한 준비를 못했던 탓이 있다. 여유가 없었다..!


그렇지만 이보다 더 당황스러운 사태는 곧이어 발생했다. 이번엔 신부의 웨딩드레스에 문제가 발생했다. 1부 오프닝 행사에 있을 축가에서 신랑 몰래 축가 한 파트를 준비하던 신부는 손에 들고 있던 유성 매직마커로 드레스에 그림을 그려버렸던 것이다. 그것도 콕 점을 찍은 것도 아니고 꽤나 길게. 머리가 하얗게 되면서 아, 어떡하지 망했다. 머리에는 온통 이 생각밖에 나지가 않았다. 아직 식은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급하게 불을 꺼보겠다고 조금 일찍 도착한 친척들에게 부탁해 마커를 지울 수 있다는 아세톤, 치약, 세제를 구해와 지워보려 노력했다. 하지만 결론은 그것도 무용지물. 어쩔 수 없이 드레스 어깨에 달려있던 리본 장식을 떼어내 오염된 곳에 달아 어떻게든 숨겨보았다. 드레스도 대여로 빌려 왔던 것이라 대여한 곳에 바로 카톡으로 연락을 하고 아무래도 옷을 사야 할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임기응변으로 어깨에 달았던 리본 장식을 허리에 달았다


그렇게 눈을 떠보니 어느새 다가온 1부 오프닝 행사 시간. 토크쇼 같은 이미지를 떠올리며 준비했는데, 현장에서 제대로 된 전체 리허설 한 번 없이 진행하다 보니 순서를 맡아주시는 분들의 능력을 온전히 믿으며 진행해 나갈 수밖에 없었다. 


1부는 토크쇼 형태로 진행했다


사실 1부 오프닝 행사는 기존 방식의 결혼식을 기대하시는 오직 가족, 친지분들을 위해 준비한 시간이었다. 돌아보니 결혼전시에 빠질 수 없었던 너무나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꿈이 현실이 될 거라 믿는다는 아빠의 말씀, 어떤 상황에서도 항상 감사하며 살아가겠다는 우리의 약속, 우리 가정을 축복해 주신 성찬 시간, 한 집에서 4년을 동고동락한 친구들의 축가까지. 아무리 우리에게 난감한 상황들이 펼쳐졌다 한들 감사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1부 식순 등의 정보는 리플렛으로 출력해 출입구에서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우리가 일련의 전시 결혼을 준비하면서 어른들의 오직 걱정은 어떻게 하객들을 대접하느냐였다. 오프닝이지만 작은 식을 진행했기 때문에, 식으로서의 결혼식에 익숙하신 분들이라면 분명 식사를 기대할 터였다. 물론 갤러리 안에서 출장 뷔페 등으로 식사도 가능하다고는 생각했지만, 사실 우리가 생각한 전시장의 그림은 아니라 생각했고, 더불어 조리 관리 인력도 추가로 배치할 수가 없는 데다 식중독 등 음식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에 갤러리 안에서 식사는 힘들거라 판단했다.(견적을 받아 보긴 했지만)


사실 나는 이때까지 식장 외부에서 식사를 하는 결혼식을 가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외부 식당을 섭외하자고 했을 때, 내심 조금 갸우뚱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주변인들이 그렇게도 많이 한다고 용기를 주기도 했고, 또 사실 더 이상 다른 대안이 없기도 했다. 문제는 주변에 딱히 괜찮은 식당이 없는 점이었다. 여기저기 방문해서 여쭤보았지만, 예상되는 인원이 약 100명 정도로 꽤 많았던 데다가 어느 정도 결혼식 분위기에 맞는 정갈한 식당을 찾기가 어려웠다.


그러다 아이디어가 떠올랐던 게 백화점이었다. 백화점이 갤러리 근처에 있었다. 그렇다면 내부에 꽤나 괜찮은 식당이 있을 것 같았다. 마침 상견례장으로 자주 이용하는 한정식 집이 있었고 그곳을 예약할 수 있었다(예약과 결제에 관한 어려움도 있었다). 좌우지간 모든 게 문제 투성이들이었지만 결과적으로 가족 친지 분들도 만족한 1부 식사는 그렇게 다행히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2부는 친구와 외부인(외부인들도 입장이 가능하도록 했다)들을 위한 전시였다. 간단히 말하면 2부는 신랑 신부가 만든 전시를 한 바퀴 둘러보고, 웰컴존에서 신랑 신부와 다과를 먹으며 그간의 얘기를 하고, 답례품을 받아서 나가면 되는 구조였다. 다만 우리는 사람들이 조금 더 전시장에 머물러 있기를 바랐다.


준비했던 다과와 와인


신은 디테일에 있다고 하는 말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다과도 우리만의 스타일로 준비했다. 일반적인 케이터링을 맡기는 방법도 찾아보았지만, 가격이 저렴하지도 않았고 크게 의미가 있거나 딱히 맛이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약간 발품을 팔긴 했지만 우리는 직접 디저트를 공수하는 방법을 택했다. 디저트는 우리가 데이트했을 때 먹었던 맛있는 것들을 택했다. 우리가 먹었던 바로 그 디저트를 친구들이 체험해 봤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다행히 한국은 배송 서비스가 너무 신속하고 정확했다. 예약한 디저트들을 당일에 약속된 시간에 빠르게 배달을 받을 수 있었다.


준비했던 디저트들

- 생일에 같이 먹은 앙버터

- 일산 대표 케이크 맛집

- 남녀노소 가족 모두가 좋아하는 떡집의 떡

- '명준'이 좋아하는 누네띠네, 비건빵

- '솔'이 좋아하는 크루아상, 쿠키

- 다양한 종류로 구성된 과일컵

- 샴페인 및 다양한 음료 등


혹시 하객들이 심심하진 않을까에 대한 걱정도 있었다. 자기 결혼도 아닌데, 우리 사진과 이야기만 보면 지루하지 않을까. 전시 자체가 정말로 익숙하지 않은 분들도 있을 수 있고, 우리는 모두가 즐길 수 있는 활발하고 재밌는 전시 체험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추가로 우리가 좋아하는 음악 12곡을 추려서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 갤러리에 틀어놓았고(물론 QR코드로 직접 플레이리스트를 들어볼 수도 있었다), 우리의 캐릭터 '소롱이'와 함께하는 일종의 포토 부스를 설치하기도 했다. 우리가 함께 한 순간들을 적어도 그 하루만큼은 하객들도 같이 경험해 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Like a Dream 플레이리스트, QR코드로 들을 수 있었고, 갤러리에도 틀어놓았다


언제 어디서나 한국인이라면 찍을 수밖에 없는 포토 부스, 흥행 보장


3컷사진 프레임 디자인(왼쪽) 및 '소롱이'와 함께하는 우리 모습 :)


이건 다른 얘기지만 이때 포토 부스를 렌탈했었는데,  업체에서 너무 감사하게도 포토용지를 무한으로 쓸 수 있게 해 주셨다. 계약할 때는 한 2롤 - 3롤 정도였나 아마 그렇게 정해져 있었던 것 같은데, 생각보다 구비된 포토 용지가 빨리 떨어졌었다. 사용법이 익숙하지 않아서 마구 사진을 찍었던 것도 있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감사하게도 이용해 주셨기 때문도 있겠다.


처음 전시 결혼을 계획했을 때는 친구들에게는 따로 축의를 받지 말자는 생각이 있었다. 식사를 주는 것도 아니고, 멀리서 고생해서 오는 친구들이 있으며, 일반적인 결혼식도 아니고, 축의 공간을 따로 마련하기도 어려웠다. 여하튼 받기가 조금 애매하다는 생각이었다. 또 한편으로 드는 생각은 분명 또 축의를 하는 친구들이 있을 것이고, 그럼 그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걱정도 있었고, 또 주변에서도 받는 편이 나을 것 같다는 의견도 많았다. 그렇다면 오시는 분들을 위해서 답례품이라도 드리는 게 맞겠다는 생각을 했다.


답례품은 와인, 탁주, 조명, 핸드&바디워시를 준비했다. 나름대로 적당한 가격대에 의미, 맛, 심미적인 요소들을 고려해서 골랐는데, 하객들이 마음에 들었을지는 모르겠다. 사실 위치가 좀 애매했었는지 안 가져가신 분들도 많았다. 왜 미술관들이 그렇게 관람 동선과 공간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알 것만 같았다.


답례품 4종 / 개인적으로 뭔가 취지에 어울리는 '사랑과 용기'를 친구들에게 추천했었다


그야말로 천방지축 우당탕탕의 연속이었던 하루였다. 온종일 뭔가를 먹을 정신도 없이 사람들을 맞이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사진을 찍고. 더 오래 천천히 지인들과 이야기 나누며 그 시간을 즐기고자 기획했던 전시 컨셉이였으나, 실제로는 느긋한 여유는커녕, 한 분 한 분 시간을 더 가지지 못한 게 되려 죄송하기도 했다. 우리보다 더 전시를 자세히 읽어봐 주시고, 천천히 먹고 마시며 즐기고 돌아가주신 분들을 보며 감사했고, 덕분에 평생 가져본 적 없는 높은 텐션으로 하루를 넘치도록 행복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네이버 전시 정보에서도 찾을 수 있는 우리 결혼전시




아래는 Like a Dream의 Playlist다. 한 번쯤 들어보면 좋을 상큼한 노래들과 우리가 좋아한 음악들이 담겨있다.


https://youtube.com/playlist?list=PL7rZpUiLyAWpjjC-_5-9eLXrnp0qFJzuA&si=WLhr1mzvyjUIKnv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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