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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강부약(抑强扶弱)

by 한지원

시골 버스에는 고정 승객들이 있다.

또, 특정 노선에는 VIP 승객이 있다.

그러나, 이 고객은 요주의(要注意) 승객과 동일인일 확률이 많다.

시골버스에서 매출을 많이 올려주는 고객은 당연히 버스를 많이 애용하는 승객이다. 시골에서 버스를 가장 많이 타고 다니시는 분은 할 일이 별로 없으신, 그러나 혈기가 왕성한 노인일 경우가 많다. 방구석 노인으로 치부되기 싫은 노인들이 버스를 타시고,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괴산 유람을 다니신다.

하루 종일 버스를 타고 다니시면서 버스회사에 큰 매출을 올려주신다.

새벽 첫차부터 마지막 저녁 막차까지...

마음먹고 다니시면, 한 열 번 타고 내리실 수 있다. 그래서 열 번을 타고 내리시면 거금 14,000원어치 매출을 버스회사에 지불해 주시는 거다.

그러나, 이 VIP 고객들을 하루 종일 모시고 다니는 시골버스 기사들은, 시한폭탄을 싣고 다니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삼선 슬리퍼를 신고, 달리는 버스에서 뛰어다녀도 넘어지지 않는 학생들이 있는가 하면, 정차해 있는 버스의 미소한 울컥거림에도 넘어져 골절상을 입는 노인들이 있다. 그것도 복합 골절로...

그러하니, 이 어르신들은 나 같이 버르장머리 없는 버스기사에게서 큰 고객으로 대접받지 못한다. 대접은커녕 면박받지 않으시면 다행이다.

아마, 엄청 억울하실 거다.

'나 같은 큰 고객에게 접대를 못 할 망정, 소리나 지르고... 에잇, 막 돼 먹은 기사들 같으니...'

이것이 그분들의 속 마음 일 수 있다.


도시에서는...

회사에 큰 매출을 올려주는 고객은 왕으로 모신다. 성격이 개차반이던, 인간성이 오수(汚水)가 모이는 맨홀과 동급이어도 상관하지 않는다. 명절 선물 리스트 중 가장 비싸고 좋은 선물 목록 뒤에 그 인간 이름이 제일 먼저 올라간다.

점심시간에 설렁탕이나, 추어탕 한 그릇으로 모든 접대가 끝나는 거래처가 있는가 하면, 다음날 새벽까지 여성이 시중 들어주는 술집에서 추잡한 짓거리까지 끝나야 되는 인간도 있다.


그러나 시골 버스에서는 모든 승객이 평등하다.

오히려 연로(年老)하시거나 몸이 불편한 승객은 상대적으로 긴 승. 하차 시간을 보장해드린다.

무거운 개사료포대나 깻자루등을 지니고 승차하시는 승객에게는 시골 버스기사의 아주 특별한 '개사료 상. 하차 서비스' 도 제공되며, 다리가 많이 불편하시거나 짐이 많은 어르신들에게는 승강장 위치와 관계없이 원하는 곳에 하차를 하실 수 있도록 배려도 해드린다. 물론, 교통법규 규정에 위배되지만...

군수, 면장 출신이라고 퍼스트 클래스 대우...

우리는 이런 거 없다.

버스비 따블로 내고, 하루에 버스 여러 번 타고 다닌다고 특별한 서비스는 기대 안 하시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다. 괜히 버스기사에게 버스 오래 타고 다니신다고 면박이나 당한다.


앞서간 몇몇의 사람들은,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게 인간다운 대접은 받는 사회를 꿈꾸어 왔다.


그러나 인간이 만들어 놓은 세상에서,

시골 버스 같이...

지불된 재화(財貨)의 다과(多寡)에 따라 차등 제공되는 서비스가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나 약자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평등하게 배려하는 공간은 없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건 오롯이 시골버스 기사 맘이다. 버스 안의 최고 권력자 맘이다.

버스회사 오너에게 결제를 득할 필요나 동승한 승객에게 양해를 구하지 않아도 된다.


자신보다 약한 자를 도와야 된다는 명령을 ,

버스에 타고 있던 모든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들의 DNA에 우리의 신(GOD)이 새겨 놓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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