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를 타고 다니는 모든 사람은 버스기사 앞에 평등하다
시골버스의 주요 승객은 학생, 연로한 어르신, 외국인, 운전면허를 취득할 수 없는 사람 등이 대부분이다.
이들 중에서 운전면허가 가장 아쉬운 사람은 음주운전으로 면허가 정지되었거나, 최근에 운전면허를 반납한 어르신 일게다.
둘 중에 더 아쉽고 억울한 사람은 역시 면허를 반납한 어르신이다. 얼마 전까지도 내 편한 시간에, 내가 가고 싶은 장소에,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돌아다녔는데...
면허증을 반납하고는 인생이 달라졌다고 말씀들을 하신다.
잦은 접촉사고를 빌미로 집 식구들의 잔소리를 견디다 못해 운전면허를 반납하시고는 마음 한 구석이 떨어져 나간 것처럼 허전하다고 하신다.
그 후로는 버스를 타고 다니시는데...
버르장머리 없는 기사들이 당신을 뒷방 노인네 취급한다고 열을 내신다. 앞자리도 앉지 마라, 미리 일어나지 말아라, 시끄럽게 떠들지 마라, 마스크 제대로 써라...
왕년에 장관을 했는지, 국회의원을 지냈는지를 시골버스기사는 알고 싶지도, 알 필요도 없다.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움직이다가 다치시지만 않으면 된다.
시골버스는 평생 농사를 짓던 어르신이라고 무시하고, 높은 자리에 있었던 사람이라고 특별히 대접하지 않는다.
승객을 오롯이 무사하게 목적지까지 모셔다 드리는 일이 지상 최대의 과제이기 때문이다.
재산이 많은 사람이라면 전용 기사를 두고 자가용 차로 다니면 된다. 대한민국 노인들 중에 과연 몇 명이나 해당될까?...
버스는 지구 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공간이나 조직보다도 평등하다.
그런 공간에 독보적인 권력을 지닌 자리가 있다. 그의 권한은 거의 절대적이다. 바로 '운전석'에 앉아있는 버스기사다.
'모든 승객은 버스기사의 지시에 따라야 한다. '이 얼마나 매력적이며 달콤한 말인가? 대신에 버스에 타고 내리는 승객들의 안전은 버스기사가 책임져야 한다. 물론 백 퍼센트는 아니지만...
가끔씩 그 절대적인 권력에 반기를 드는 승객이 있다.
면허를 반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승객이라고 여겨지며,
보통 노인이라고 보기에는 젊고, 직접 차 몰고 다니기에는 연세가 드신 분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을 때가 있다.
"내가 좀 늦었는데, 빨리 갑시다."
"늦은 건 선생님이 늦으신 거지 버스가 늦은 건 아닙니다. 버스 문 열어드릴 테니 여기서 택시 타고 가십시오!"
" 이 양반이 지금 승차 거부하는 거요?"
" 네! 승차 거부합니다. 선생님 하시는 행동이 지금 버스에 타고 계신 다른 승객분들의 안전을 저해할 우려가 있습니다. 그리고 노선버스는 시간에 맞추어 운행하여야 하며, 승객 한분만의 편의를 봐 드림으로써 다른 분들에게 피해를 드릴 수 없습니다. 그것이 규정입니다."
이 얼마나 논리적이며 아름다운 문장인가?... 시골버스기사의 입에서 나왔으리라는 상상이 안 가는 말이다. 내가 생각해도 참 말 잘했다.
시골버스기사라고 대충 윽박질러서 편하게 가려고 했던 양반이 찍소리 못하고... 뒤에서 고소한 듯이 킥킥거리는 할머니들의 웃음소리에 얼굴이 벌 걷게 상기되었다
" 목적지까지 조용히 가시던가, 내리시던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십시오!"
시골버스기사의 완승...
콧노래가 슬슬 나오며 오늘따라 버스가 미끄러지게 잘 나간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자신의 활동영역을 가진다.
젖먹이 아이일 때는 엄마의 품 안이 아기의 영역이었지만, 나이가 먹어감에 따라 활동범위가 변한다. 유치원에서 학교로, 학교에서 직장으로, 국내에서 전 세계로... 하는 일과 개인의 성격에 따라서 차이는 존재하지만, 영역의 범위가 변하는 것은 진리이다.
그러나 노인이 되어가면 그 범위가 점점 좁아진다. 회사를 퇴직하면, 안방에서 주방으로, 아니면 이름난 산이나, 강변의 자전거 도로...
그래도 이 경우는 혼자서 대중교통수단을 활용할 수 있는 정력이 남았거나, 자동차 운전면허증이라도 있어서 내차를 몰고 내가 가고 싶은 곳에 갈 경우다.
나는 운전을 하기도,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기도 어려운 나이가 되면 내 활 동역 역을 줄이기로 결심했다. 괜한 과욕으로 버스 타고 나들이 갔다가 나 같은 성질머리 안 좋은 버스기사에게 괄시받기 싫다. 나는 절대로 면허증 반납 같은 어리석은 짓은 안 할 것이다. 직접 운전해서 다닐 수 있는 한계까지 나의 자유를 누리고 싶다.
그리고..
"아들아! 아빠가 죽으면 아빠의 운전면허증도 같이 관속에 넣어줘라! 아빠는 천국에 가서도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