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할 당시는 양복에 어울리는 정장구두를 신고 다녔고, 시골에 귀농하여서는 평상시 신발이 장화(長靴)이어서 캐주얼화를 신을 일이 거의 없었다.
왼쪽이 운전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에게 필수템인 로마병정 슬리퍼이고 오른쪽은 새벽에 터미널로 출근할 때 신고 온 15년 된 랜드로바 캐주얼화다.
4륜 구동 자동차 제조사 중에 고가의 자동차를 만드는 Landrover라는 회사가 있다.
경제적으로 윤택한 사람은 랜드로버를 끌고 다니지만, 나는 랜드로바를 신고 다닌다. 이 신발은 비포장 도로로 막신고 다녀도 발이 편안한 대신, 오래된 모델이어서 그런지, 통풍이 잘 안되어서 냉각 효과가 떨어진다. 그래서 오래 신고 있으면 발에서 열이 난다.
괴산에 읍내 시장통에 '만년신발'라는 신발가게가 있다. 이 신발가게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아주 오래된 '오래가게(老鋪)' 이다. 지금은 상호가 '만년신발' 이지만 예전에는 '만년고무' 였었다.
과거 부정하게 선거를 치르던 시절...
선거철이면 이 가게의 고무신으로 표값을 치렀고, 산골마을의 상(喪)을 치르는 집에 조문 온 문상객에 대한 답례품은 의례히 '만년고무' 고무신이었다.
아내가 이 집에서 로마병정 슬리퍼를 구입해서 나에게 무좀방지 및 발 냉각용으로 선물해 주었다. 나도 예전에 직장 사무실에서도 슬리퍼를 싣고 있었지만 저렇게 생긴 것은 아니었다.
양말 위에 로마병정 슬리퍼 패션을 경멸한 적도 있지만, 솔직히 너무 시원하다. 나도 운전할 때에는 이 슬리퍼를 싣고 운전한다.
사람이 잠을 잘 때 두한족열(頭寒足熱)을 유지해야 건강한 수면을 취할 수 있다고 하는데, 나는 두한족한(頭寒足寒)이 되어야 잠을 잘 잔다. 한 겨울에도 이불이 발을 덮으면 잠을 잘 못 이룬다.
내가 세상에 태어난 지 며칠 안되어서부터 매일 감기를 달고 살았다고 한다. 그래서 나의 어머니는 당신이 직접 서울 경동시장에서 녹용(鹿茸)을 사서 달여 먹였다고 하신다. 어려서 녹용을 먹어서 그런지 나는 몸의 말단 부분(손, 발, 머리 등...)이 유난히 열이 많이 난다.
예전에 아내와의 연애시절 내가 잡은 손의 溫氣 때문에 나에게 호감을 가졌다는 얘기를 아내에게 들었다. 그래서 나랑 손 한번 잡아본 사람은 절대로 나를 못 벗어난다.
새벽에 일어나는 직업을 택한 후부터 오후 10시 전에는 꼭 취침을 한다. 그날도 일찍 잠자리에 들어 발을 이불 바깥으로 내놓고 코를 드르렁거리며 자고 있는데...
꿈인지 생시(生時)인지... 누가 나의 발을 만지작 거리는 것이 아닌가? 더구나 뭘 바르기까지 한다. 잠에 취해 일어나지도 못하고 버둥거리다가 다시 잠든 것 같았는데
눈을 뜨니, 새벽 4시 50분이다. 일어나서 대충 씻고 출근을 준비하는데...
" 내가 전문가용 신발 샀어! 이거 갖고 가서 운전할 때 신어!"
아내가 골프화 신주머니를 나에게 주었다.
'예전에 잘 나가던 거 자랑할 일 있나? '
'아니, 백돌이가 무슨 전문가? 그리고 버스 운전하는데, 웬 골프화?' '
열어보니 로마병정 슬리퍼였다.
마땅한 신주머니가 없어 골프화 신주머니에 넣어서 나에게 준 것이었다.
어젯밤에 내 발을 만지던 사람은 아내였고, 꿈이 아니라 아내가 나에게 무좀약을 발라주던 생시였다. 하루 종일 신발을 벗지 못하는 남편이 안되어 보였는데, 밤에 잘 때 발을 보니 발톱무좀이 성한 것 같아 아내는 밤마다 남편 발에 무좀약을 발라준 것이다.
운행을 나가기 전 싣고 온 랜드로바를 벗어놓고 아내가 사준 '만년고무'표 로마병정 슬리퍼로 갈아 싣었다.
나는 아내의 사랑도 같이 신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