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에게 금연을 선물하라!

by 한지원

" 야! 불 있냐? "

터미널 홈에 버스를 정차시키자, 운전석 옆창으로 거들먹거리며 다가온 칠십대로 초반으로 보이는 할아버지 한 분이, 열린 차창 사이로 시골 기사에게 물어본 말이다.

생전 안면(顔面)도 없는 인간이지만, 말투며 행동 등을 보아, 소위 예전에 놀던 인간임에 틀림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 어떻게 생긴 불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 담뱃불! "

" 담배 안 피웁니다! "

" 뭔 버스기사가 담배도 안 피우냐? "

점점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이 인간을 어디 한 군데 부려뜨려놔?'

이미, 독자들은 파악하셨겠지만 시골 기사는 말로만 격투기 선수지, 성격도 그렇게 와일드하지 않고 간도 크지 않다.

버스에서 내렸다.

내려서 마주 보니 키가 나보다 5cm 정도 작은 것이 옛날 노인 치고는 덩치가 있는 사람이었다.

호랑이 눈으로 그 인간 눈동자를 마주치고...

" 아저씨! 기사는 담배 피워야 된다고 대한민국 헌법에 나와 있어요? 그리고 나를 언제 봤다고 불을 빌려달라고 합니까? 나한테 맡겨 놓은 거 있어요? "

여차직 하면 그 인간을 머리로라도 받을 요량으로 고개를 앞으로 5°쯤 기울인 상태로 목소리를 아래로 깔고 나지막하게 얘기했다.

물론, 말끝에는 연장자를 대우하는 의미에서 '요'자를 꼬박꼬박 붙이기는 했는데, 이럴 때는 경어가 발달한 대한민국의 언어가 거추장스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장자 대우를 한 이유는... 큰 소리가 나면, 내용을 모르는 주변 사람들은 젊은 기사가 노인네를 타박한다 할 터이고, 더 큰 이유는 내 자신이 그 노인네와 같은 수준의 인간이 되기를 거부하는 마음 때문일 거다.


아내가 우리 집 막내를 뱃속에 잉태할 무렵에,

고생하는 아내와 태어날 아이에게 줄 선물을 생각하다가...

금연(禁煙)으로 정했다.

집을 탈탈 뒤져서 이십여 년을 간직해온 라이터를 포함하여 재떨이 등 담배와 관련된 사물을 폐기물 쓰레기봉투에 모두 넣어 금연을 결심한 그날 밤에 모두 갖다 버렸다. 물론 개봉하지 않은 담배도 보루째...

다음날 출근하여 업무용 책상 서랍을 뒤져 집에서와 똑같은 방법으로 사무실도 깔끔하게 정리해 버렸다.

그 후 엄청난 금단현상의 고통에 몸부림쳤지만, 아내의 미소는 엔도르핀이 되어 고통을 상쇄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혹시, 여러분들은 여자에게 주었던 선물을 도로 빼앗아 본 경험이 있는가? 특히 아내에게...

선물을 도로 빼앗긴 여자의 한 서린 눈매에 비하면, 금단현상의 고통쯤은 즐거움으로 견딜수 있으리라...

여러분 금연을 하고 싶으면, 아내에게 혹은 여자 친구에게 본인의 금연 선언을 선물하라!

이제 막내아들이 18살이 되었다. 나의 금연기간도 같은 나이가 되었다.


새벽, 버스 운행을 위하여 부지런히 자동차를 몰아 터미널로 출근을 하고 있었다. 솔골 마을회관 앞을 지나는데, 내 나이 또래의 인간이 차를 세운다. 창문을 빼꼼히 열고 용건을 물어보니...

"형씨! 혹시 담배 있으신가요?"

아무리 급했기로 지나가는 차를 세우고 담배를 구걸하나?


나이 드신 분이나, 젊은 놈이나...

두 인간 모두 홀아비 이거나, 싱글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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