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단약 다이어리> 약 부작용 ①체온조절 실패:더워

#열감 #부작용 #항우울제 #항불안제 #체온조절 #수영장 #찬물샤워

by 산책이

제목 : 약 부작용, 체온조절 실패: 더워


밤마다 자주 깼다. 불면으로 고생하다가 겨우 잠들었는데도, 숙면을 취하지 못했다.

악몽을 꾸다 소리 지르며 깬 적도 있었고, 온몸이 경직된 채 눈을 뜬 적도 많았다. 나쁜 꿈을 꾸지 않는 밤도 물론 있었지만, 여전히 한밤중에 깨는 날이 많았다. 그 원인은 바로, 땀 때문이다.


체온은 정상인데, 자꾸만 몸 안에서 열이 났다. 불덩이가 내 몸속에 들어 있는 것처럼 뜨거웠다. 처음엔 화병인가 싶었다. 얼마나 억울했던 걸까. 몸 안에 복수의 열이 가득 찬 느낌이었다. 실제로 나는 직장 괴롭힘으로 오랫동안 힘든 시간을 보냈다.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와장창 무너졌고, 그 상실감은 나 자신을 조금씩 갉아먹었다. 그들과 내가 같은 직업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수치스러웠다. 하지만 뾰족한 대안은 없었다. 생존을 위해 당장 직업을 내려놓을 수는 없었고, 무엇보다 그들 때문에 내가 일을 그만두면 결국 피해자인 나만 손해 보는 일이 될 테니까 꾹 참고, 버텼다. 그래서 화병이 났구나 싶었다. 마음의 문제라고만 여겨서,

열감을 낮추기 위한 대안을 떠올리지도 못했다.


물론 화병도 한 요인이었겠지만, 마음이 차분해지고 감정 조절이 되기 시작했는데도

이놈의 열은 나를 붙잡고 좀처럼 놔주질 않았다. 그러다 단약을 시작하면서 비로소 깨달았다.

체온 조절이 안 되는 게, 부작용일 수도 있겠구나


실제로 나는 밤마다 옷이 땀에 젖는 일이 잦았다. 잠옷을 몇 번씩 갈아입는 날도 허다했다.

겨울엔 자는 도중 너무 더워서 한밤중에 깨곤 했다. 긴팔을 얇은 긴팔로 바꿔 입고, 다시 반팔로 갈아입었다. 어느새 긴바지는 반바지가 되어 있었다. 여름엔 5월부터 에어컨 없이 잠드는 게 힘들었다. 옆에선 남편이 춥다고 했고, 나는 계속 덥다고 했다. 단순히 ‘남편은 추위를 많이 타고, 나는 더위를 많이 타는구나’ 하고 넘기기엔, 내 목과 등은 항상 땀으로 흥건했다.


처음엔 기온에 민감한 피부를 가진 줄 알았다. 이유 없이 뜨거워졌다가 차가워지는 몸. 너무 불편했다. 게다가 나는 어릴 적부터 뜨거운 물로 샤워하는 걸 좋아했다. 소화가 안 되거나 속이 답답할 땐, 뜨거운 물줄기를 배에 대면 한결 나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그 습관이 나를 더 덥게 만들고 있었다는 건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러다 ‘단약’을 시작하면서, 약을 끊기 전후의 내 몸을 하나하나 관찰하기 시작했다. ‘혹시 이 더위, 약 때문은 아닐까?’ 검색을 해보고, 상담도 받아보았다. 그리고 나는 알게 되었다. 내가 복용해 온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SSRI), 노르에피네프린 재흡수 억제제는 실제로 열감을 유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즉, 이 약들은 체온 조절 기능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부작용이 있었다.


그제야 많은 장면이 퍼즐처럼 맞춰졌다. 자다가 옷을 벗고, 갑자기 에어컨을 켜고, “덥다, 더워죽겠다”를 입에 달고 살았던 내 모습이 알고 보니 부작용 증상이었던 거다. 그렇다고 당장 약을 모두 끊을 수는 없었고, ‘부작용이니 어쩔 수 없지’ 하며 단념할 수도 없었다. 약이 효과가 있는 만큼, 부작용도 따라오는 거라면 이젠 그 부작용을 돌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우선 샤워 습관부터 바꾸기로 했다. 열을 낮추는 음식도 검색해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샤워 물 온도를 낮추는 건 쉽지 않았다. 갑자기 뜨거운 물을 차가운 물로 바꾸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고 낯설었다.


그러다 문득, 내가 뜨거운 불덩이라면 물속에 나를 집어넣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집 근처 체육센터에 수영장이 있었고, 그렇게 가까운 거리에 있다는 건 정말 큰 행운이었다. 나는 항불안제와 항우울제를 복용하면서 서서히 일상의 루틴을 되찾기 시작했고, 운동을 시도해보려 몇 번 수영장에 갔던 적도 있었다. 이번에는 ‘운동’이라기보다는, 발끝부터 머리까지 차오르는 열감을 물속에서 식히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다. 그래서 얼른 수영장에 가고 싶었다. 운동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간절했던 건 물속에 들어가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물속에선 열도, 긴장도 가라앉을 것 같았다.


손등으로 정수리를 대면 언제나 뜨거웠다. 열을 낮추기 위해 족욕도 시도해봤지만, 온몸을 시원한 물속에 한 번에 담그면 효과가 훨씬 더 클 것 같았다. 단 20분이라도 물속에 들어갔다 나오면 몸이 차가운 물에 점차 적응했다. 그래서 샤워실에 가면, 굳이 뜨거운 물이 아니어도차가운 물로도 무난하게 씻을 수 있었다.


믿거나 말거나, 수영장에 입수한 뒤 차가운 물로 샤워를 마치고 나오면 기분이 좋아진다. 체육센터 출구를 나설 때, 살랑살랑 부는 저녁 바람이 너무 시원하게 느껴졌다. 나는 그동안, 내 안의 뜨거움을 온몸으로 느끼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체온 조절의 이상, 이 열감이 약의 부작용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야 그 열을 다루는 법을 하나하나 배워가는 중이다.


이제는 안다. 내가 이상했던 게 아니다. 약을 먹으며 생기는 몸의 변화를 나는 몰랐고, 내 몸이 보내던 신호들을 오랫동안 놓치고 있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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