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중 #부작용 #다이어트 #식단조절 #건강 #먹토 #목표를지우고 목적만
제목 : 약 부작용 ②체중조절: 살 찜
체중은 민감한 이슈다. 건강의 척도이면서 동시에 미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사람들은 "건강이 최고"라고 입을 모아 말하고, 나 역시 그 말에 동의한다. 하지만 일상에서는 ‘미’를 위해 ‘건강’을 뒤로 미루는 일이 빈번하다. 그만큼 체중은, ‘예쁨’이라는 틀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주제다.
그런 살이 찐다. 체중계가 싫어졌다. 숫자로 지금의 내 몸 상태를 직면하기 싫었다.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의 안부 시작이 '살'과 연결되는 말로 이어지면 거북함이 올라왔다. 말하지 않아도 몸이 무거워지는 건 스스로 잘 알고 있는데 가족이기 때문이라는 이유만으로 그걸 콕 집어 이야기하는 게 불편했다.
안부라는 말 뒤에 숨은 의미를 모르는 건 아니다. ‘살이 찐 네 건강이 걱정된다’는 말이 아니라, 살이 찐 네 모습은 예쁨의 틀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경고였으니까. 가족이니까, 가까운 사이니까 말해주는 거라며 참 다정하게도 폭력적인 말을 잽처럼, 훅처럼 날렸다.
약을 먹기 전에는 폭식으로 스트레스를 풀었다. 그것도 분명 원인 중 하나였을 거다.
달고, 맵고, 자극적인 음식을 먹으며 내 마음의 허기를 달랬다. 가장 손쉬운 방법이었고, 가장 단순했다. 약을 먹기 시작한 뒤에도, 폭식은 줄지 않았다. 나의 정서적 허기는 여전히 멈추지 않았다. 그저, ‘내가 지금 많이 먹고 있구나’라는 걸 인식하게 됐을 뿐이다.
그걸 토하면서 실감했다. 말로만 듣던 ‘먹토’를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건가, 싶은 순간이었다. 토하려고 먹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미 가득 찬 위장에 무언가를 꾹꾹 눌러 담으며 더 먹다 보니, 속이 결국 그것을 감당하지 못했다. 변기를 붙잡고 토하며 눈이 새빨개지도록 식도를 줄였다 늘였다 반복하며, 나는 끝내 토해냈다. 토했다고 살이 빠지진 않았다.그저, 뚜껑에서 넘친 음식물 일부가 밖으로 흘러나온 것뿐이었다.
식단을 조절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살이 쪄서 괴로운 게 아니었다.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는,
내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살이 찔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몰려왔다. 그건 공포였다. 하지만 다이어트 식단은 무리였다. ‘다이어트’라는 목표를 세우고 체계적인 식이요법을 할 만큼의에너지가 내겐 없었다. 옷 사이즈가 달라지며, 살이 찌고 있다는 게 피부로 느껴졌다. 막연한 상상이 아니라, 현실로 다가오는 숫자들과 변화였다. 그래서 숫자를 마주하지 않기로 했다. 체중계는 보지 않았다. 아니, 보지 못했다. 싫었다.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일부터 했다.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치웠다. 버렸다. 그리고 사지 않았다.
운동할 의욕은 좀처럼 생기지 않았다. 대신, 그냥 산책을 했다. 저녁을 먹고 단 10분이라도 아파트 단지를 돌았다. 샐러드, 고구마, 계란만 먹고 살 순 없었다. 토마토를 갈아 주스로 마시며 허기를 달랬다. 멍하니 간식을 퍼먹으며 소파에 주야장천 누워 있던 시간을 지우기 위해
티브이를 없앴고, 소파는 방 안으로 들여보냈다. 그저 조금 우울하다고, 그저 조금 불안하다고 해서 더 이상 살찌는 건 아니라는 생각으로 할 수 있는 일만 골라서 했다.
간식을 덜 먹었고, 배부른 채 소파에 누워 있는 시간을 없앴다. 10분이라도 나가 걸었고,
힘이 나면 수영도 갔다. 날씨가 좋으면 단 10분이라도 달렸다. 좋아하던 떡볶이, 추로스, 과자와는 간헐적으로 만나는 사이가 되었다.
이 정도면 덜 쪘어야 했다. 누가 봐도 이건 다이어트가 아니었다. 그저 살을 빼기보다는, 덜 찌기 위한 조치였을 뿐이다. 그런데도 내 체중은 꾸준히 늘었다. 나중에서야 ‘약의 부작용’ 가능성을 인지했다. 병원에 가서 물어보니 애매한 대답이 돌아왔다. “부작용으로 살이 찔 수도 있어요.” 인과관계는 명확하지 않았다. 나이가 들며 자연스럽게 기초대사량이 떨어졌고, 우울은 나를 둔감하게 만들어 활동량을 줄였다. 포만감 조절은 잘 되지 않았고, 감정적 폭식은 오랫동안 반복됐다. 그리고 그 폭식의 내용물은 단백질보다는 당과 탄수화물이 대부분이었다.
모두가 약을 먹는다고 해서 살이 찌는 것은 아니다. 사람마다 부작용의 양상과 정도는 다르다. 하지만 중요한 건, 살이 찔 ‘높은 가능성’이다. 식이 조절과 운동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체중 증가가 ‘약의 부작용’일 수 있다는 사실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내 체중 증가가 모두 약 때문이라고 단정할 순 없지만, 그 영향 역시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살이 찔 수 있다는 부작용을 알았어도, 나는 아마 약을 먹었을 것이다. 급속도로 살이 찌는 약이 아니라는 걸, 몸으로도 느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땐 너무 힘들었다. 견디기 위해서 약이 필요했다. 물론, 살이 쪘다는 사실이 나를 괴롭혔던 사람들과 연결되며 분노와 증오가 불쑥불쑥 올라오기도 했다. 그럼에도 나는 약을 먹었다. 그 약 덕분에 잠들었고, 숨 쉴 수 있었다.
단약을 결심한 지금, 나는 단순히 ‘살을 빼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찐 살을 근육으로 바꾸자’고 생각의 방향을 돌렸다. 마음도 망가지고, 몸까지 망가졌다는 사실이 억울하고 서러운데 그 위에 살찐 나 자신까지 미워하면, 그건 너무 억울하지 않나. 마음이 아프던 시절, 내 몸이 보내는 살이 찐다는 신호를 나는 제대로 알아채지 못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건 내가 둔해서가 아니다.
그 시절의 ‘마음 마비’ 상태라면 누구에게나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체중계에 올라가지 않는다. 숫자를 목표로 달리다 보면 결국 나는 다시 나를 이렇게 만든 사람들에 대한 분노, 서러움, 증오심에 갇히게 될 것 같아서. 그래서 ‘목표’를 지우고, ‘목적’을 세웠다.
건강해지자. 살을 천천히, 근육으로 바꿔보자. 숫자 대신 감각에 집중하자.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더 찾아서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