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단약 다이어리>힘들지 않다면 그냥 미워해.

#미움 #조언을 함부로 하지 마세요 #단약의 특효약이 된 말

by 산책이

제목 : 힘들지 않다면 그냥 미워해.


나를 괴롭혔던 사람들을 마음껏 미워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나를 말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마.”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는 거야.”

“그냥 피해. 사회생활 하다 보면 다 그런 일이 있어.

더한 일도 많아. 너 정도면 그냥 그러려니 해.”

“미워해봤자 너한테 돌아오는 게 뭐가 있겠어.

괜히 힘 빼지 마. 그 사람들도 사정이 있었겠지.”

“네가 이해해. 미워해봤자 너만 손해야.”

“그냥 잊어버려. 요즘 세상 무서워.

괜히 너한테 해코지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냥, 넘어가.”


정말 지겨운 말들이었다. 나를 힘들게 한 사람을, 나를 고통의 구렁텅이에 밀어 넣은 사람을 미워하는 것조차 죄가 되는 걸까? 그들에게 싫은 티도 내지 말라는 조언이 정말 나를 위한 말이었을까? 나는 오히려 그 말에 더 상처받았다. ‘참아서 생긴 병인데! 그렇게 참고 넘겨서 결국 병이 된 건데! 이제 와서 미워하는 것마저 하지 말라고? 그럼 나는, 도대체 어떻게 하란 말이야?’


나는 약을 먹으며 버텼다. 감정의 끝에서 솟구치는 증오와 분노, 혐오를 억누르고 싶었다. 누구도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여 스스로를 고통스럽게 하길 바라지는 않는다. 욕을 해도, 쌍욕을 해도, 슬픔은 가시지 않았고 억울함은 좀처럼 해소되지 않았다. 이 감정들이 나를 서서히 파괴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냥 넘길 수는 없었다. 내 마음과 몸이 이미 너무 많이 망가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 감정들까지 억누르라는 건 너무 불공평하지 않나? 욕먹을 짓을 한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데. 때때로 사람들에게 내가 겪은 일을 털어놓고 싶은 마음이 치밀어 올랐다. 나조차 내 이야기가 지겨운데, 듣는 사람도 지겹겠지 싶어 입을 다물기도 했지만, 제발 알아달라는 마음에, 못된 사람들이 어떤 짓을 했는지 꼭 좀 알아달라는 절박함에 하소연이 터져 나왔다.


그런데 이 감정들마저 참으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삶의 모든 것이 허무해졌다. 괘씸하기도 했다. ‘넌 안 겪어봤지? 그게 네 일이 아니니까 그저 조언하듯 말하는 거지.’ ‘너는 무슨 성인군자야? 아니, 성인군자라도 그건 못하겠네. 그걸 공감이라고 말한 거야?’ 결국 생각은 이렇게 흘렀다. '당신은 내 얘기를 진심으로 들어줄 여유가 없구나. 당신은 내가 겪은 고통에 관심이 없구나.'


그런 와중에 남편이 말했다. “미워해도 돼. 다만 그 감정 때문에 네가 너무 힘들면, 그땐 잠깐 멈춰. 근데 괜찮으면 그냥 미워해도 돼.” 내가 욕을 할 때, 눈물을 흘릴 때, 무기력할 때, 그는 조용히 “힘들겠다”고 말하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약도 해주지 못했던 위로였다.


“마음껏 미워해도 돼.” 그 말을 해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 나는 숨을 쉴 수 있었다.

내가 몰라서 욕을 하는 게 아니라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의 의미도 알고 있었다. ‘똥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더러워서 피한다’는 말이 품고 있는 감정도 알고 있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별의별 일이 다 있다는 것도, 미워한다고 상황이 바뀌는 건 없다는 것도, 미움이 결국 내 에너지를 고갈시킨다는 것도, 사람마다 각자의 이해관계와 사정이 있다는 것도, 사실 나는 다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들이 나를 ‘착한 인간’이라는 틀에 옭아매고 있었다. 미워해도 되는가, 미워하면 안 되는가. 그건 내가 선택한다고 해서 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미움은 올라온다.

그런데도 “참아야 해”라는 말만 반복된다면, 그건 과연 옳은 방법일까? 물론, 미움을 표현하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미움을 건강하게 해소하는 방법도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그 ‘건강한 해소’를 하려면 그전에, 적어도 충분히 미워할 수 있는 시간이 먼저 주어져야 한다. 그래서 말하고 싶다. 아직 그 시간을 충분히 가지지 못한 사람에게는, 감히 “미워하지 마”라는 조언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마음껏 미워해도 된다는 그 말, 어쩌면 내가 약에서 한 걸음 더 멀어질 수 있었던 가장 강력한 특효약이었다.

keyword
월, 수, 토, 일 연재
이전 14화<나의 단약 다이어리>내가 미치지 않았다는 증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