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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이 Sep 27. 2024

<너는 내 미션> 3. 내 말부터 들어봐요.

#교실이야기 #연작소설 #내 말부터

나는 말 한마디 했지만, 수백 마디의 말이 한꺼번에 날아왔다.


“주말에 날씨가 좋았죠? 가을이 찾아온 것 같아 선생님은 공원에서 산책을 했어요 여러분은 어땠나요? “


처음엔 몰랐다. 이 말이 그렇게나 영향력이 있는지.


이렇게 큰 반응을 불러일으킬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고

갑자기 수십 명의 아이들이 동시에 대답을 하기 시작했다.


영화를 봤다는 이야기, 놀이공원에 갔다는 이야기, 어디 놀러 가진 않았지만 집에서 재미있게 보냈다는 이야기 등 아이들은 마치 대답경쟁을 하듯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끊임없이 했다.


간혹 이 분위기에 휩쓸려 특별히 말할 거리가 없던 친구도 일단 손을 든다

나도!라고 외치며 이 분위기에 편승하는 거다


듣는 이는 없지만 말하는 이가 가득한 교실은 순식간에 왁자지껄해진다.


물론 나는 귀를 쫑긋 세운체 청자가 되고 싶지만 마치 20여 개의 티브이가 동시에 켜진 것 같아 어떤 말도 정확히 알아들을 수 없다.


가만히 앉아 아무 대답도 안 하는 것보단 좋은 일이니까.


적극적으로 자신을 표현하려고 하는 모습은 기특하니까.


무엇보다 초롱초롱한 눈으로 내 말을 귀담아 들었다는 반증이니까.


하며 최대한 이 상황을 긍정적으로 생각해 본다.


그러나 그 아이는 뭔가 달랐다. 발언권을 얻고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일에 매우 서툴렀다.


손을 들고 자신의 차례가 될 때까지 기다리는 일은 마치 입 안에 개미가 기어 다니는 일인가 보다.


빨리 말하고 싶어 입이 간질 거려 참기 힘든 그 눈빛과 몸짓이 너무나도 느껴진다.


발언권을 얻고 발표를 해야 한다는 걸 교육받은 다른 아이들은 간절하고 또는 애절하기까지 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하늘 위로 뻗고 있다.  누구부터 발표를 시켜야 할지  혼란스러울 찰나..


이런 난감한 순간에 호명을 하기도 전에 저요! 를 외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그 아이의 모습은 유독 튄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학교생활에 적응하면서 발언권을 얻는 연습을 차곡차곡 해온 티가 난다. 친구가 하는 말에도 귀 기울이려고 하는 모습은 사랑스럽다.


그러나 그런 교육을 안 받았을 리가 없는 그 아이는 유독 자기 말을 먼저 들어주지 않는다고 끊임없이 몸부림을 쳤다. 소리를 꽥 지르거나, 이미 교실 앞으로 나와 갑자기 1:1 대화를 시작한다.

 

이런 아이를 만나면 마음 한편이 불편해지고 불안해지는 건 최근의 직업병이다.


'내가 발표를 하려고 했는데, 내가 말을 하려고 했는데, 선생님이 시켜주지 않아서 하지 못했다'라고 아이가 학교에 있었던 일을 왜곡해 가정에 전달할까 마음이 조마조마해지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말을 다 들어주고 싶지만 시간관계상 모두 함께 이야기를 나누지 못해 아쉬운 마음인데 보호자가


 내 아이만 차별하는 건가라는 오해까지 한다면 너무 속상하다.


수업시간엔 더 다양하고 개방적인 질문들이 등장한다. 그래서 최대한 골고루 발표를 시켜주기 위해 나름대로 작전을 세우기도 하지만…


그때마다 먼저 말하지 못했다고 삐지는 그 아이.


그냥 삐지는 것이 아니라 소리를 크게 치며 화를 내고


눈물을 흘리고 심하면 교실 한 구석으로 몸을 웅크리는 경우도 있다.


그게 책상 밑이든, 청소함 안이든

더 심각한 경우엔 교실 이탈을 시도한다.


나 삐졌다고 시위하는 거다.


마음을 알아주기 위해 다가가면 울분에 찬 모습으로 화를 낸다


난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이 아이는 나에게 반항하는 걸까?


처음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렇게까지 화날 일인가? 하는 의문으로 아이가 교사의 권위에 도전한다고 여기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먼저 이렇게 물어본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평소에 어른들이 너의 말을 잘 안 들어줬니?"


그 아이는 예상밖의 질문을 받았나 보다.


귀 닫고 눈 닫고 소리치다가 갑자기 나를 쳐다보더니


“네”라고 대답한다.


이때다 싶어 아이를 붙잡고 말했다.


선생님은 다르다고,


나는 너의 말을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다고,


수업시간엔 아이들 모두와 함께 이야기해야 하지만

쉬는 시간엔 너를 불러서 네 이야기를 꼭 듣겠다고,

아니면 남아서 이야기를 해도 된다고 타일렀다.


1:1 수업이 아닌 이상 그 아이의 맞춤 발표는 어렵지만

급식 줄을 기다리고 있을 때 잠시,

쉬는 시간에 1분이라도 짬을 내어 아이를 불러 너의 이야기가 듣고 싶다고 반복해서 물어보기 시작했다.


아까 말하려던 게 있지 않았냐고, 지금 이야기해 줄 수 있냐고 선생님이 너에게 관심이 참 많다고, 너의 말을 듣고 싶다고 구애작전을 펼친다.


이런 노력이 무색하게 오히려 그 아이는 공격하듯 여전히 화를 낼 때도 있다.


또는 내 말을 듣고 무시한 체 가버리기도 한다.


그러다 또 자기 생각대로 상황이 이뤄지지 않으면

“내가 예쁘게 말해도, 밉게 말해도 모두가 내 말을 들어주지 않잖아요”하며 우는 아이가 안쓰럽다.


극단적으로만 생각하는 그 아이가

흑백논리로만 고집부리는 그 아이의 외침이

너무 외롭게 공중에 떠다닌다.


나를 만나기까지 수많은 아이의 시간을 나는 알지 못한다.


내 노력이 단기간에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장담할 수도 없다.


아이가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실망하지 않으려 마음을 다잡았다.


어느 순간 아이도 내가 주는 애정에 스며들지 않을까 하는 작은 믿음이 있는 걸까?


 '어?, 선생님이 나한테 관심이 많네' 하며

돌발행동이  적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살짝 남겨둔다.


물론 지친다. 나의 성취는 언제나  가시적으로 보기 어렵다


그게 교사의 숙명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 아이가 나를 기억하지 않아도 좋으니


이 세상에 너의 말을 들어줄 사람은 어딘가 분명히 있다는 메시지를 아이에게 심어주고 싶었다.



내 노력이 헛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그 마음이 왜곡되지 않고 잘 전달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도


출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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