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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날다 Oct 24. 2022

손에도 표정이 있다


 오늘도 나는 낭만의 도시 해운대로 출근한다. 그곳으로 가는 길은 종종 바다 냄새 잔뜩 머금은 여행객들과 함께한다. 만원 지하철은 저마다의 설렘을 싣고 있다. 이곳을 찾는 사람에겐 여러 가지 모습이 있다. 대부분은 빌딩, 백화점, 낭만 가득한 바다를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설렘 가득한 해운대를 찾는 사람은 여행객뿐만 아니다. 해운대역엔 바쁜 움직임들 속에 낯익은 풍경들이 종종 보인다. 앵벌이를 단속하는 단속반이다. 남루한 옷차림의 사람들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하지만 단속반이 가고 나면 다시 어디선가 나타나 지나가는 사람에게 손을 내민다.      


 그 또한 그랬다. 처음엔 막연히 한 철 장사라 여름에 사람이 많이 몰리기 때문에 왔다고 한다. 소위 ‘장사’가 잘 될 거라 생각했다. 그는 흔히 말하는 앵벌이다. 여름철 해운대 바다 구석구석에서 볼 수 있는 남루한 옷차림의 손 중 하나이다. 그들의 손에는 다양한 표정이 있다. 

‘우리를 외면하는 매몰찬 인간은 되지 마라.’

가끔은 당당하게 말하기도 한다.

‘불쌍한 우리를 돕는 것은 당연하지 않냐?’

너무도 익숙한 그들의 손에 나는 답답함이 몰려온다. 낭만의 도시 해운대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다.

“해운대에 잘 정착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잘하실 거예요.”

노숙인 쉼터에서 최근 해운대 수급자 골목에 전입한 남자를 데려왔다. 어딘가 낯익은 손이다. 출근길에 만난 그 앵벌이다.

밀폐된 상담실에 마주 앉아 있자니 낯익은 퀴퀴한 냄새로 숨 쉬는 게 불편하다. 자해 흔적으로 성한 곳이 없는 양팔과 감지 않은 머리, 제 모습을 갖춘 것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손톱은 원래의 색인 양 까맣다.      


  ‘신체는 건강해 보이는데 왜 앵벌이를 하지?’ 

그의 모습에 절로 한숨이 나온다.

서른 살인 그는 어린 시절 입양되었다. 열세 살에 양모가 사망하자 양부 혼자 키우기 힘들다는 이유로 다시 보육원에 버려졌다. 보육원에서 2년은 집단폭력과 텃새로 지옥 같았다. 살고 싶어 탈출했다고 한다. 갈 곳 없는 열다섯 살 어린 중학생이 선택한 삶은 앵벌이였다.     

 “TV에서 봤는데 별로 고생 안 하고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것 같더라고요.”

그가 처음 내게 건넨 말이었다.

“처음엔 벌이가 제법 쏠쏠해서 찜질방이나 모텔 등을 다니며 남부럽지 않고 자유롭게 지냈어요.” 

 “정말 이만한 일이 없어요, 힘 안 들고 쉽게 벌고, 더할 나위 없는 직업이에요.” 

자신의 직업에 대해 당당하고 자부심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그 생활도 잠시, 경쟁자들이 늘어났다. 벌이가 없는 날들이 늘어나면서 지낼 곳이 없었다. 자연스레 길에서 자는 일이 많아졌다.      


 “널린 길바닥이라고 주인 없는 거리는 없어요.”

“좋은 곳은 힘센 아저씨들이 이미 다 자리 잡아서 엄두도 못 내요.” 

하지만 이제는 이 바닥에서 나름 경력자라 신참이 와도 무찌를 자신이 있다고 한다. 몇 번의 ‘터’ 싸움으로 소년원도 다녀왔다. 소년원에서는 밥도 주고 제빵 기술도 가르쳐줘서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답답해서 두 번은 갈 곳이 못 된다고 한다. 그렇게 이리저리 쫓기고 떠돌다 노숙인 쉼터의 도움으로 해운대 여관 골목에 자리 잡았다.      


 ‘이런 그가 평범한 삶을 살 수 있을까?’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계속 들었던 생각이다. 

나는 이런 그와 뭘 할 수 있을지 혼자만의 고민에 빠졌다. 그의 삶에 대한 공감이 아닌, 일로 만나고 있었다. 남들과 다를 바 없는 편견을 가지고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쉼 없이 본인의 기구한 인생사가 이어지고 있다.      


 “선생님에게 종종 전화해도 돼요? 이렇게 길게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어요.”

그가 해맑게 웃는다. 

“들어줘서 고마워요” 

‘고맙다니!’ 

많은 사람을 만나는 나에게 그의 이야기는 색다를 게 없었다. 그저 귓가를 맴돌 뿐이었다. 무료하게 앉아 있던 나의 모습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나는 주로 소외된 이웃을 많이 만난다. 비슷한 모습을 한 그들과의 만남에 늘 다짐한다. 

‘편견 된 마음으로 보지 않게 해 달라!’ 

주문처럼 외우곤 한다. 하지만 그 다짐은 종종 내 기억에서 잊히곤 한다. 편견을 갖지 말자, 공감해주자 했던 수많은 나의 실천 현장 다짐은 개뿔, 한갓 나의 자만심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언제부턴가 문제를 파악하는 데 집중했다. 나름의 시스템 안에서 안정적인 일 처리를 하는 것에 익숙해진 것이다. 그의 옷차림보다 내 모습이 더 초라했다. 더 부끄러워지기 전에 나의 매무새를 가다듬어야 했다. 그의 삶의 속도를 인정해줘야 한다.     


 그 후 한동안은 지하철에서 그의 볼 수 있었다. 여전히 그의 내민 손을 먼저 만났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그의 손은 보이지 않는다. 모두의 걱정과 달리 그는 재활프로그램과 자조 모임에 열심히 참여했다. 예쁜 낭자를 만나 근사한 연애도 꿈꾸고 있다. ‘내민 손’ 대신 노숙인의 자립을 돕는 잡지를 팔았다. 그는 올해 수급 자격 조사 때 생애 처음 소득신고를 했다. 보통은 수급비가 줄어들어 신고하지 않으려 한다. 수급비에 영향을 줄 정도의 금액은 아니었다. 하지만 떳떳하게 합법적으로 번 돈이기 때문에 소득신고를 한 게 기쁘다고 했다. 스스로 대단한 일을 해낸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한다.

당당하게 본인의 삶을 꾸리는 모습을 보면서, 이제야 나의 편견에 가려졌던 그의 얼굴과 내민 손에 난 상처들이 보인다. 웃는 그의 모습 또한 생각보다 앳되고 해맑다. 다음에 나는 덥석 그의 손을 잡아줄 수 있을까? 나는 오늘도 ‘어떤 표정을 가진 손을 만날까’ 하는 설렘 가득한 마음으로 해운대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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