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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의 북극 Jul 29. 2024

우리는 진정으로 독립했는가

79년의 세월, 청산하지 못한 시간의 축적은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

[정치적 이야기를 다루고 싶은게 아니라는 점을 먼저 밝혀 둡니다. 이 땅에 사는 역사적 체험을 함께 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일제 강점기로부터 벗어난 지 79년이 지났지만, 나는 독립한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것인지 자괴감이 듭니다. 뉴스를 보는 것이 고통스러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지만 최근에는 그 정도가 도를 넘는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최근에 조정래의 소설 아리랑을 읽는 중이라 그 시대의 삶에 빠져들어 역사의 아픔 속에 동화된 지금이라 더욱 그러한 지도 모릅니다.


“오염수가 아니라 처리수”라거나 “위안부 문제의 강압성은 개별 사항이라 답할 수 없다”는 방송통신위원장 내정자의 발언을 보며 충격을 받았습니다. 

물론 장관급 인사로 가게 된다면 현직 대통령의 생각과 결을 맞춰야 하는 것이라고 본다면 그런 발언이 나올 만도 하겠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평소 생각과 행동들이 드러났던 예전 방송이나 소셜미디어에서의 발언 등을 본다면 평소 생각이 그런 한 것으로 보입니다. 평상시에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장관급 인사에 내정하는 정부. 

이러한 정부의 인사 결정은 일전에 대법에서 판결한 강제징용에 대한 배상책임이 있다는 판결에 대한 반응에서도 그 성향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대법원 판결에 강력 항의했던 일본에게는 아무런 말도 못 하면서 국내 피해자들에게는 제3자 변제라는 해괴한 논리를 들어 배상책임을 묻는 개인의 명예를 훼손하고 폄훼하고 있습니다. 

배상 책임을 원하는 그들이 진정 원하는 것이 돈이겠습니까?


"일본은 한국에 은혜를 베풀었다", "만일 일본이 당시에 (일본이 한국을 침략했을 때) 한국을 정복하지 않았더라면 한국은 타국에 의하여 정복당했을 것이며 그때 한국은 더욱 비참한 입장에 놓여 있었을 것이다."

일본과 제3차 한일회담에 일본의 수석 대표인 구보타는 이런 말을 했었습니다. 일본은 이 회담에서 한국에 대한 손해 배상 46억 8300만 달러를 요구했습니다. 우리가 손해 배상을 했다는 게 아니고 일본이 자신들이 손해를 입었다고 한국에 손해 배상을 요구한 것입니다. 

물론 정치적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전략적 차원의 손해배상청구일 가능성이 있지만 일본 극우의 생각이라는 것은 이와 같습니다. 

그들은 조선에 대한 식민지배를 인정하지 않고 끊임없이 소모적인 분쟁을 조장하고 있습니다. 그런 행태는 비단 식민지배에 대한 사안에서 그치고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독도 관련 영토 문제도 틈만 나면 들고 나와 분쟁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려 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정치 권력이 바뀔 때마다 약한 고리를 파고 들어 망언을 일삼지 않습니다.


손해 배상 46억 8300만 달러를 요구했습니다.
우리가 손해 배상을 했다는 게 아니고 일본이 자신들이 손해를 입었다고 한국에 손해 배상을 요구한 것입니다. 


그들은 참으로 부지런하고 끈질깁니다. 일본 내에서 이러한 작업을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조직적으로 기금을 마련해서 세계적으로 자신들의 주장에 동조할 수 있는 학술 논문에도 지원하고 한국 내에서도 그들의 주장을 담을 수 있는 동조자를 위해 아낌없이 지원을 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대표적으로 이영훈 ”반일 종족주의“같은 책들이 나올 수 있던 배경에도 이러한 일본의 지원이 의심됩니다.


몇 해전 독일에서 ”소녀상 철거“ 관련한 이슈가 있었을 때 놀랍게도 한국의 극우라는 사람들이 독일까지 날아가 ”위안부는 거짓말“이라고 시위를 하고 소녀상 철거를 옹호하는 발언을 했습니다. 독일 언론에서는 그들이 마치 일본의 극우 세력과 같은 말과 행동을 하는 것에 의아함을 표시할 정도였습니다. 그들은 왜 그 먼 곳까지 날아가서 그런 행동을 할 수 있는 것일까요?

한국 내에 극우라고 하는 세력들의 주장은 대체로 일본 극우와 일치되는 주장들이 많습니다. 왜 그런 걸까요? 극우라는 것은 뭘까요?


극우란 극단적인 우파 성향 또는 그런 사람을 말한다고 합니다. 인종적 또는 사상적으로 이질성을 띠는 존재를 공동체의 안녕을 해치는 적이자 사회적 위협으로 보고, 이를 일소하기 위해 국가의 역할을 강화하고 권력을 활용함은 물론, 이러한 이질성을 막기 위해 시민의 자유와 민주적 질서를 국가가 개입하고 통제하여야 한다고 보는 것이며,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여겨질 때 스스로 '구국적' 행동을 취함으로써 폭력적인 방향으로 발전하는 양상을 보입니다. 특히 이들은 특정한 역사적 지점을 이상적 모델로 삼고 사상적으로 이를 유지하거나 이를 발전시키는 모습을 흔히 보이는데, 이는 곧 사회경제적 불만과 불안에 대한 대항 논리로서, 극좌가 국가의 정체를 타협 없이 갈아엎어버리는 극단적 혁명을 추구한다면, 극우는 국가의 정체를 극도로 공고히 하는 극단적 반동을 추구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극우에 대해 파악할 때는 민족주의, 인종주의, 국수주의, 제노포비아, 권위주의, 민주적 질서에 대한 반동 등의 다양한 개념을 복합적으로 놓고 판단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한두 가지 측면으로만 극우를 판단할 경우 다양한 촌극이 벌어지는데, 이는 극우로 지목된 단체가 '자신은 폭력적인 단체 또는 파시스트가 아니다'라며 자신들이 극우가 아니라고 주장하거나, 민족주의적 측면만을 기준으로 하면 인종과 혈통을 강하게 따지는 북한이 훨씬 더 극우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렇듯 극우라고 하는 것은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는데 있어 국가의 개입과 통제도 꺼리김 없이 행하는 속성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자국의 이익입니다. 남의 나라 이익이 아니고, 그러나 대한민국의 극우들은 집회에 종족 이스라엘 국기를 들고 나오고 최근에는 일본 국기도 아니고 욱일기를 들고 나오는 행태를 보입니다. 이것이 대한민국 극우의 현주소란 말입니까?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입니다. 개인 혹은 어떤 단체가 정치적 성향이 극우이든 극좌든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각자가 바라는 세계관은 다를 수 있고 이념을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민주주의 이념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자유에는 그만한 책임도 따른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자유에도 그 한계가 있다는 것도 압니다.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 사실을 왜곡하여 주장하는 것이 자유라는 이름으로 용인된다면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혼돈이고 자유를 빙자한 폭력일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구보타의 말로 돌아가서 ”일본은 한국에 은혜를 베풀었다“ 이 말에 대한 진의를 보겠습니다. 정치적 성향에 따라 누군가는 일본으로 인해 조선은 근대화를 이룰 수 있었고, 경제적 발전을 이룩하는데 도움을 받았다고 말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조선의 자원과 인력이 착취되고 핍박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과연 그런가요. 이것을 그저 정치적 성향에 따른 분석이라고 치부할 수 있는 것인가요?

일제 강점기를 살아온 민중이 있고 그 세월 속에 고통받았던 한 사람 한 사람의 역사와 기억들이 있고 부당함에 맞서 싸운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일제에 동화되어 그들의 편에서 호의호식했던 사람들이 있고 일신의 평안과 집안의 번영을 위해서는 그들의 편에 서는 것이 오히려 쉬웠을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을 걸고 집안의 안녕을 포기하고 그와 관련된 인연을 포기하며 전지적으로 삶을 희생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정치적 성향에 따른 분석이라고 말한다는 것은 비겁하고 무책임하며 최소한의 인류에 대한 아니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않나 생각합니다.


정치적 성향에 따라 가치 판단을 달리 할 수도 있는 사안들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당연한 가치를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역사적 사실로서 그리고 이 땅에 살아온 사람으로 온몸으로 체득되고 경험되어 온 세월의 흔적을 부정하고서 해석의 문제로만 문제를 바라보는 것은 앞선 예를 들었던 강제징용에 대한 해법에서 알 수 있듯 그저 돈의 논리로 해결하려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너희에게 은혜를 배풀었다."  "너희가 원해서 돈을 벌기 위해 자발적으로 정신대에 지원 한 것."

 그러한 주장은 일본인들, 그중에서도 일본의 극우 들이나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출처;경향신문

올림픽이 시작되었습니다.

뉴스는 우리 선수들의 선전을 응원하고 그들의 성과를 내보내게 될 것입니다. 

다행히도 이제 여기가 독립한 한국인지 의심할 뉴스는 가려질 것입니다. 

대한민국인으로서 한국 선수들을 응원하는 것이 당연한 것은 설명의 여지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 땅에서 함께 살아오며 역사를 같이 한 동족의 입에서 더 이상 정치적 논리로 혹은 학문적 견해라며  피해자를 욕되게 하고 이 나라를 모욕하는 행태를 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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