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고 에세이로 소통하며 시로 공감한다
제주도 송악산에 갔다 내려오는 길에 근처 해안가를 거닐었다. 마침 썰물이었다. 바닷속에 잠겨있던 용암의 응혈자국 하나가 신비로운 모습을 드러냈다. 동그랗게 부풀어 올랐다가 터지면서 바닷물에 식은 용암의 기포자국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바닷속 용암의 신기한 모습에 감탄하기보다는 문득 조세희 작가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생각났다. 그 동그란 용암의 기포자국 우물에 조세희 작가의 소설 속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떨어졌을 것이란 상상력이 파고들었다.
절망의 시대다. 청년실업, 구조조정, 노인문제 등 세대를 불문하고 많은 사람이 희망을 잃어버린 시대에 살고 있다. 이들은 조세희 작가의 위 소설에 나오는 난장이들이다. 아니,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대부분은 여전히 난장이로 살아가고 있다.
이 소설이 출간될 당시의 1970년대의 모습이나 지금의 모습이 하등 다를 것이 없다. 오히려 지금의 가진 사람들은 더 많은 탐욕과 이기심에 물들어 있고, 반대로 난장이들의 입지는 그만큼 더 좁아졌다. 이제 난장이들은 작은 우물에 갇혀 공을 쏘아 올릴 하늘조차 바라보지 못할 것 같다. 빈부격차는 한층 더 벌어지고 사회구조적인 절망의 사슬은 더욱 견고하게 우리를 조이고 있다.
그렇다고 우리는 마냥 우물 속에 갇힌 난장이처럼 절망에만 빠져 있을 것인가. 이제 우물에서 건져낸 공에 다시 희망을 새겨 쏘아 올리자. 개인이든 집단이든 각자의 탐욕과 이기심을 조금씩 내려놓고 어린아이의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가자.
아이의 순수한 눈길로 서로를 보듬고 배려해 주고,
아이의 순결한 눈물로 서로의 슬픔과 아픔을 위로해 주자.
눈물 어린 시선으로 서로 어깨를 얼싸안고 격려해 주자.
이럴 때 치유의 싹이 돋아나고 희망은 자라기 시작한다. 난장이가 희망의 돛을 달고 먼바다로 나가는 것처럼 이 사회의 구조적인 절망의 사슬도 이런 희망으로 끊어낼 수 있다. 절망을 만드는 것도 사람이고, 희망을 만드는 것도 사람이다. 생명이 있는 한 희망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