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화 피터 팬, 탈출 계획을 짜다
존엄사법이 제정되지 않아 살인범이 된 어느 소년의 아버지에 대한 지극한 간병과 사랑이야기
― 과장님, 원장님께서 함께 좀 오시라고 합니다.
출근하자마자 원무과장이 진료실로 찾아와 말했다. 원장이 왜 부르는지는 뻔했다. 원장실로 들어서자 원장이 우리 두 사람을 힐끗 쳐다보고는 두툼한 서류 봉투 하나를 던지듯이 응접실 탁자 위에 툭 내려놓으며 말했다.
― 내가 하도 답답하여 변호사 사무실과 신용조사기관에 알아봤어요.
화가 잔뜩 난 원장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다.
― 그 환자, 재산이 없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우리 병원에 오기 전에 땅이며 집을 모두 다른 사람 명의로 이전해 놓았다고 합니다.
원장이 탁자 위의 봉투에서 서류를 꺼냈다. 등기부등본이었다. 아마 열 통도 더 넘을 것 같았다.
― 집이며 땅이 이렇게 많이 있었어요. 그런데 하나같이 그 환자 명의에서 모두 다른 사람 앞으로 이전됐어요. 우리 병원에 오기 직전에 말입니다. 김 변호사 말로는 소송을 해도 되찾을 가능성도 없다고 합디다. 이런 등기이전 법률사무를 훤히 꿰뚫고 있는 전문가의 솜씨라고 합디다.
아마 원장은 병원비 일부라도 받아 낼 방법이 없나 하고 변호사 사무실과 신용조사기관에 소년의 아버지의 재산 조사를 해본 모양이었다. 원무과장과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 이 사람들, 사기꾼들이야. 병원비를 떼먹으려고 미리 재산을 다 빼돌려 놓았어. 박 과장, 그애 어머니 아직 소식이 없지요?
처음에는 의식적으로 화를 누르고 그나마 고분고분 말하던 원장이 끝내 참지 못하고 흥분하여 고함을 치듯이 말했다.
― 예, 그애 말로는 어머니는 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있던 내가 겨우 소년에게서 들은 말을 했다.
― 거 봐요. 이제 그 여자 겁낼 필요 없어요. 그 여자는 제 자식과 남편을 팽개치고 바람이 나 도망을 간 겁니다. 바람난 제 서방 앞으로 재산을 모두 빼돌려 줄행랑을 친 거예요. 이제 당장 내보내요. 여기가 무슨 자선단체도 아니고, 이런 사람 우리가 돌보고 있을 이유가 어디 있어요? 박 과장이 그 환자 들여놓았으니까, 책임지고 내보내세요. 그렇지 않으면 정말 짐을 싸세요. 그리고 원무과장, 시청이나 동사무소나 보건소나 어디든 한 번 알아봐. 이런 환자를 어떻게 내보내면 되는지. 무슨 방법이 있을 것 아냐?
원장이 그동안 속은 것만으로도 분이 풀리지 않는다는 듯 씩씩대며 말했다. 나는 지난번처럼 원장에게 대들 엄두가 나지 않았다. 바람난 여자라고 아예 단정하는 원장의 말도 스미 아저씨와 함께 갔다는 소년의 말에 비추어 일리가 있었다. 김 과장도 스미 아저씨라는 그 사람이 항상 소년의 어머니와 함께 있었고, 그가 서울의 법률사무소에서 근무한 경력을 내세우며 은근히 협박까지 했다고 하지 않았는가.
소년의 아버지 명의로 되어 있는 재산이 모두 다른 사람 명의로 이전된 것은 그 사람의 수단과 계책일 것이다. 법률사무소에 근무하면서 익힌 전문 지식과 법망에 걸려들지 않을 교묘한 수단이 총동원되었을 것이다. 김 과장 병원에서의 휘발유 통 사건이나 우리 병원에서의 화염병 소동도 그 사람이 소년의 어머니를 조종하여 일으킨 것이 분명했다. 그런 사람을 내가 변호할 구실도 없었다.
며칠 후 나는 원무과장으로부터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새로운 사실이라기보다는 소년과 원장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확인해 주는 것이었다. 원장의 말처럼 소년의 아버지 명의로 되어 있던 그 섬의 논과 밭, 심지어 집까지도 사고가 있은 1년쯤 후에 다른 사람 명의로 모두 이전이 되었는데, 이전받은 그 사람의 주소가 서울이라고 했다.
그동안 섬마을 분교의 그 여선생은 공휴일을 틈타 한 달에 한두 번씩은 아이들과 함께 병원을 찾아와 소년과 환자의 상태를 보고 가곤 했다. 그러나 그녀가 병원으로 오는 공휴일에는 내가 병원에 나가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와 직접 만날 기회는 없었다. 그녀는 가끔 내게 전화로 소년과 환자의 상태를 물어보곤 했다.
나는 혹시 그녀가 소년이 스미 아저씨라고 말한 그 사람의 본명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섬마을 분교로 전화를 걸었다. 나는 그녀에게 명의를 이전받은 등기부등본의 이름을 대며 이 사람이 혹시 스미 아저씨라는 사람이 아니냐고 물어보았다. 그녀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 맞아요. 아버님께서 그 이름으로 몇 번 불렀던 것 같아요. 그런데 왜 그러세요?
나는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멍멍해졌다. 어머니가 스미 아저씨를 따라갔다는 소년의 말은 사실이었다. 아무리 돈이 지배하는 세상이라지만, 어떻게 이럴 수가? 의식불명의 남편과 제 몸에서 난 하나뿐인 자식을 버리고 외간 남자와 도망가는 여자라니! 내 가슴은 분노로 꽉 메워지고 있었다. 내가 소년의 아버지의 전 재산이 그 사람 앞으로 넘어갔다고 말하자, 그녀가 울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 그 사람과 어머니가 섬에 나타나지 않아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그럴 수가? 선생님,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그럼 아버님과 피터 팬은 어떻게 돼요? 선생님, 환자를 병원에서 내쫓지는 않을 거죠? 병원비가 없다고요. 그렇죠? 선생님, 대답해 주세요. 선생님은 저와 약속했잖아요.
내가 전화를 한 것이 병원비 때문이라는 것을 미리 짐작했는지 그녀가 엉엉 울면서 말했다. ‘선생님은 저와 약속했잖아요.’하고 따지듯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송곳이 되어 심장을 찌르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날 오후, 나는 더욱 기막힌 사실을 알게 되었다. 원무과장이 얼굴이 시뻘겋게 되어 진료실로 와서 말했다.
― 과장님, 이거 한 번 보세요.
원무과장이 내민 것은 환자의 혼인관계증명서였다.
― 이게 뭡니까?
내가 영문을 몰라 묻자, 원무과장이 기가 막힌다는 듯이 말했다.
― 제가 법률사무소를 통하여 이걸 떼 봤는데 말입니다. 환자와 그애 엄마는 벌써 일 년 전에 이혼한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재산을 빼돌린 직후입니다.
― 예? 아무려면 그럴 리가?
― 여기 이렇게 나타나 있지 않습니까?
사실이었다. 원무과장이 내미는 환자의 혼인관계증명서에는 이혼의 원인으로 ‘재판상 이혼’이라고 기재되어 있었다. 환자가 의식불명의 상태로 병원에 누워있는데 어떤 방법으로 이혼 재판을 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분명히 그렇게 적혀 있었다. 원무과장이 얼굴을 붉히며 열을 내어 말했다.
― 가짜 재판을 한 것이 분명합니다. 이제는 애 엄마를 찾아 병원비를 청구하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청구하면 또 뭐 하겠습니까? 전 재산을 모두 빼돌려 놓았는데……. 원장님께 보고하고 이제는 정말 강제로라도 내보낼 방법을 찾아야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원무과장이 씩씩거리며 진료실을 나갔다. 다음 날 오전, 시청의 보건담당 공무원이 병원으로 왔다. 원무과장이 시청에 알아보고 합법적으로 환자를 내보내는 방법을 알아보고자 시청의 보건담당 직원을 부른 것이었다. 그러나 그 직원은 볼살이라고는 하나도 없이 눈이 움푹 꺼져 살아있는 해골 같은 환자의 얼굴을 보자마자 기겁하여 자기도 모르겠다면서 도망치듯 가버렸다. 그래서 합법적으로 환자를 내보낼 방법을 찾지 못한 채 또 며칠이 지났다. 원장의 불만은 이제 머리끝까지 올라 있었다.
― 박 과장,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거요? 당장 사표 내고 짐을 싸요.
출근하자마자 원장실로 불려 간 나는 책상을 꽝꽝 두드리며 고함치는 원장의 원성을 고스란히 뒤집어써야만 했다. 환자의 난을 가져간 원장의 약점이라도 들이대며 원장의 입을 봉하고 싶었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 보니 원장이 그 난을 환자의 집에서 가져왔다는 증거는 내 주장뿐이고, 이를 뒷받침할 다른 증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 일을 꺼내어 자칫 잘못하다간 오히려 내가 무고로 뒤집어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김 과장과의 약속도 약속이지만, 아이들과 선생님과의 약속 아닌 약속도 마음에 걸렸다. 짐을 싸라는 원장의 말대로, 에라, 나도 모르겠다, 하면서 그냥 사표를 내고 병원을 떠나 버리고 싶은 심정도 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내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날 퇴근이 임박하여 병실에 들렀다. 소년의 눈은 이제 휑하니 꺼져 있었다. 어머니가 남은 재산마저 모두 처분해 버렸고, 어머니와 아들이라는 혈육의 정마저도 끊어 버리겠다는 각오로 아버지와 이혼까지 해버린 상태였다. 이제 소년은 이 세상 누구에게도 의지할 데 없는 혈혈단신 고아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나는 내가 알게 된 그런 사실을 차마 소년에게 말할 수가 없었다. 나는 내 처지는 잠시 잊어버리고 소년에 대한 연민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나는 소년의 어깨를 꼭 껴안았다. 소년이 내 가슴에 안긴 채로 훌쩍거리며 말했다.
― 선생님, 보내 주세요. 어젯밤 아빠가 또 말했어요. 해적놀이하러 가자고…….
― 안 된다. 내가 그 말을 믿으라는 거니?
― 선생님은 왜 믿지 못하세요? 그것은 선생님이 마음을 모을 줄 몰라서 그래요. 저는 이제 아빠의 마음을 볼 수 있어요. 아빠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알아요. 선생님도 한번 마음을 모아 보세요.
소년의 간절한 눈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의 일은 그렇다 하더라도, 모든 생명체는 귀소본능이 있다고 하는데, 그런 자연의 순리에 따르게 해주는 것이 죽음 앞에 선 환자를 진정으로 위하는 길이 아닐까? 김 과장의 생각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닐 것이다. 의사이기 때문에 오직 생명만을 돌봐야 한다는 그런 절대적 명제는 없다.
환자는 진정 어떤 것을 원할까? 환자는 자신의 비망록에서 최상의 행복의 조건은 영성의 발현에 있고 삶의 최고의 목적은 영성의 개발이라고 했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영적인 의식상태를 도외시하고 소생 불가능한 육체적 생명만을 붙들고 있는 것이 과연 환자가 말한 영성에 부합하는 것일까? 내가 그 영성의 발현을 막을 자격이 있는가?
그래, 소년의 소망대로, 자연의 순리대로, 이 사람에게 행복하고 거룩한 죽음을 맞게 해 주자. 환자 본인도 틀림없이 그것을 원할 것이다. 아빠의 마음을 볼 수 있다는 소년의 말을 믿자. 그래, 환자가 영혼을 바치고자 했던 낙원의 쉼터에서 숨을 거두게 하자. ‘이곳 VIP실에서 거룩한 죽음을 맞게 해 주자.’는 김 과장의 말은 거룩한 죽음의 의미를 오해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내 결심은 점점 굳어지고 있었다.
다음 날부터 나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소년의 간청을 들어주려고 해도 여전히 현실적인 문제가 앞을 가로막았다. 소년이 미성년자라 환자는 보호자가 없는 상태였다. 그리고 환자가 병원을 나간다면 단 며칠 만에 사망할지도 몰랐다. 아니 며칠이 아니라 곧바로 사망할 수 있었다.
존엄사가 인정되지 않는 법제도 아래서 보호자도 없는 이런 위급 환자를 강제로 퇴원시키는 일은 보는 관점에 따라선 환자의 유기살인(遺棄殺人)이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설사 존엄사가 인정되더라도 환자 본인의 명시적인 의사가 없고, 또 환자의 보호자도 없는 상태에서 내린 환자의 추정적 의사는 자칫 법적 문제로 비화할 수 있었다. 내가 형사처벌을 받을 수도 있고, 행정 조치로서 의사면허나 자격까지 문제가 될 여지가 있었다. 나는 실정법과 가치관, 그리고 당면한 현실 사이에서 여전히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어떤 방법으로 내보낼까?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 병원에서 강제로 내보낸 게 아니라, 환자가 병원 관계자 모르게 도망갔다고 하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의식조차 없는 전신마비 환자가 어떻게 스스로 병원을 나간단 말인가?
혹시 병원에 몰려오는 그 아이들을 이용하는 방법은 없을까? 아이들이 저들끼리 환자를 빼돌렸다고 하면 되지 않을까? 그러나 그것도 너무 위험한 일이었다. 자칫 내가 아이들을 이용했다는 것이 밝혀지면 나는 천하에 둘도 없는 파렴치범이 되고 말 것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결국 이 일은 나와 소년 이외에는 아무도 모르게 비밀로 해야 한다. 소년이 제 혼자서 아버지를 몰래 병원에서 데려나갔고, 내가 그 일에 개입된 사실이 절대로 드러나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만에 하나 내가 처벌을 면할 수가 있다.
― 그럼 이렇게 하자.
― 어떻게요?
― 이건 너와 나만의 비밀이다. 반드시 지키겠다고 약속하면 보내 주마. 만약 네가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내가 벌을 받게 돼. 그러면 정말 큰일 난다.
― 지키겠어요. 꼭 지키겠어요. 선생님이 절대 벌 받지 않도록 하겠어요.
결국 나는 소년과 함께 형법상 살인의 음모(陰謀) 또는 예비(豫備)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