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번째 환상 // 콜럼버스의 관(3)
Poetic Novel & Story Poem
바람 속에 깃든 위대한 정령의 숨결에 가만히 귀 기울여보세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부르는 노랫소리가 들릴 겁니다.
어머니 대지가 바람의 색깔로 그려 놓은 아침노을을 바라보세요.
이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아름다운 얼굴이 보일 겁니다.
태양과 달과 수많은 별을 품은 큰 우주와 그 안에서 헤엄치는 작은 지구와 그 위의 모든 생물과 심지어 작은 돌 하나와도 서로 교감하고 영혼을 나눴던 최고의 지적 영성체! 얼굴색이 흰 사람들의 문명을 거부하고 지금도 자신들의 고유한 전통과 영적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얼굴색이 붉은 사람들!
특히 이들 중 체로키족의 치료사 구르는 천둥(Rolling Thunder)의 영적인 정신세계는 얼굴색이 붉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수많은 얼굴색이 흰 백인 아티스트들에게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 아티스트들 중에는 인간의 존엄에 관한 뿌리 깊은 성찰을 담은 시와 노래로 2016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밥 딜런(Bob Dylan)도 있습니다.
밥 딜런은 그의 영적인 정신세계를 흠모하여 1975년 <롤링 썬더 레뷰(Rolling Thunder Revue)>라는 전미(全美) 공연 투어(Tour)를 합니다. 그리고 이 공연 투어에는 로저 맥귄, 존 바에즈, 조니 미첼, 엘렌 긴즈버그, 자크 레비, 링고 스타, 패티 스미스 등 30여 명의 뛰어난 백인 아티스트들이 참가합니다.
얼굴색이 붉은 사람들의 치료사(추장) 구르는 천둥(Rolling Thunder)은 이렇게 말합니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것이 아닙니다.
원래부터 우리가 그곳에 있었으니까.
우리는 정복당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토록 무례하게 행동하는 그들에게
이제까지 한 번도 굴복한 적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순수하고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아름다운 사람들!
얼굴색이 붉은 사람들은 오늘도 이렇게 노래합니다.
겸손한 풀과 수줍은 꽃에서 피어나는
어머니 대지의 푸른 향기를 맡아보라.
독수리의 날개를 떠받치는
창공의 고요한 공기를 느껴보라.
사슴의 여린 눈에서 솟아나는
숲속 맑은 샘물을 마셔보라.
거울같이 투명한 토끼의 귀에 걸린
대평원에서 웃음 짓는 달을 바라보라.
무엇보다 나비의 빛나는 침묵과
그 부드러운 날개의 미세한 파동에 떠는
삶의 거미줄에 매달린 그대 자신들을 돌아보라.
그대들은 이 모든 생명이 어울려 노래하는
경이로운 삶의 합창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그대들이 진정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것은 무엇인가.
그대들이 이제까지 아주 하찮게 여겼던 그것들 안에
그대들이 몰랐던 풍요로운 의미의 세계가 있다.
그대들의 천국은 그대들이 가보지 못한
미지의 저 먼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다.
얼굴색이 흰 사람들, 그대들이 오기 전,
우리 얼굴색이 붉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던
바로 이곳, 어머니 대지 바로 그 위에 있었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으로부터 500여 년이 지난 2019년,
그때 얼굴색이 흰 사람들이 얼굴색이 붉은 사람들의 청정대륙에 퍼뜨린
천연두, 콜레라, 홍역 등 유령과는 다른 새로운 유령이
이 푸른 지구별 전체를 감염시키고 있습니다.
<코로나>라는 이 유령은 손과 가슴을 타고 이어지는
영혼의 징검다리를 없애버렸습니다.
사람들은 서로의 손을 잡을 수 없게 되었고
영혼을 교류하는 포옹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때 얼굴색이 붉은 사람들이 유령 때문에 죽어간 것처럼
전 세계 사람들이 이 유령 앞에 속수무책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얼굴색이 흰 사람들이 쌓아놓은 녹슨 유리의 문명
이 문명의 영혼이 여전히 오염되어 있는 탓이 아닐까요.
아니, 이 문명에 영혼이 있기나 한 걸까요.
하늘에도 오르지 못하고
땅에 묻히지도 못하고
지금도 중간 경계를 떠도는
콜럼버스의 관 속에서 피어난
악마의 꽃이 씨앗을 퍼뜨린 것이 아닐까요.
인간 또한 삶의 거미줄 한 올에 불과한데도
거미집을 짓은 창조주로 착각한 대가가 아닐까요.
당신이 내민 손을 내가 잡습니다.
내가 내민 손을 당신이 잡습니다.
서로의 손을 잡는다는 것
이것은 가슴을 타고 영혼을 이어주는 징검다리입니다.
그러나 콜럼버스가 내민 손은 악마의 손길이었습니다.
이것이 신대륙을 발견한 당신들의 위대한 영웅
얼굴색이 흰 사람 콜럼버스의 손길입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은
이 악마의 손길을 통하여
아름다운 푸른 지구별에 퍼져나간
인류 문명의 원죄가 아닐까요.
그리고 앞으로도 콜럼버스의 관 속에서 피어난
악마의 꽃은 분명 다시 씨앗을 뿌릴 것이고
이 때문에 인류는 또 다른 새로운 유형의
유령 때문에 고통을 받게 되겠지요.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인간의 끝없는 탐욕과 지배욕에 대한
자연이라는 위대한 정령의 경고가 아닐까요.
오직 감사하고 참회하는 마음으로
앞으로 닥칠 새로운 유령에게서 인류를 지켜주시기를
얼굴색이 붉은 사람들의 위대한 정령께 눈물로 기도합니다.
* 저자 후기
1. 아메리카 원주민을 어떻게 부를 것인가. ‘인디언’, ‘아메리카 인디언’, ‘아메리카 원주민’, 단순히 그냥 ‘원주민’, 인디언 추장의 연설문에 나오는 ‘얼굴 붉은 사람’ 등을 고려했지만, 고심 끝에 ‘얼굴색이 붉은 사람’으로 쓰기로 했다. 그들 자신을 스스로 '얼굴 붉은 사람'이라고 칭한 인디언 추장들의 정신을 존중함과 동시에 백인우월주의에 저항하는 유색인종의 의미를 더욱 강조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비되는 백인을 ‘얼굴색이 흰 사람’으로 썼다. 서술의 편의상 ‘원주민’도 병용하여 썼다.
2. 이 글은 <늑대와 춤을>, <말이라 불리운 사나이>, <작은 거인> 등 인디언의 삶과 생활을 엿볼 수 있는 많은 미국 서부 영화와 넷플릭스 드라마 <아웃 랜드>, 마틴 스콜레지 감독의 <밥 딜런, 롤링 썬더 레뷰>에 소개된 인터뷰와 영상을 참고하였다. 무엇보다도 류시화 시인이 엮은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김영사)에 소개된 인디언 추장들의 연설문(본문의 ** 표시 부분은 시애틀 추장의 연설문을 변용)에서 특별한 영감을 받았음을 밝혀둔다.
3. 저자는 가능한 한 얼굴색이 붉은 사람들(아메리카 원주민, 인디언)의 정신세계로 들어가 이들의 영혼에 동화되어 이 글을 쓰고자 시도했습니다. 이 글에 행여 그들의 순결한 영혼을 조금이라도 왜곡하거나 오해하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제 사고와 영혼이 빈약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넓은 아량과 용서를 구합니다. 아울러 얼굴색이 붉은 사람들의 영혼에 축복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그들의 위대한 정령이 마지막 얼굴색이 붉은 사람들을 끝까지 보호하고 지켜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