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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재도 May 15. 2023

모자이크 환상

여덟 번째 환상  //  콜럼버스의 관(1)

Poetic Novel & Story Poem

(시 소설 소설시)

모자이크 환상


시와 소설의 경계를 해체하는 순수문학 판타지

아름답고 서정적인 시문(詩文속에 펼쳐지는 경이로운 환상의 세계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새로운 장르가 열린다  


        




여덟 번째 환상

콜럼버스의 관(1)            

                 






INTRO / 얼굴색이 붉은 사람들    


 

봄, 푸른 달빛에 젖은 늑대의 슬픈 울음소리를 들은 적이 있나요.

여름, 소나기 품은 잿빛 하늘을 방황하는 독수리의 지친 날갯짓을 본 적이 있나요.

가을, 야위어가는 햇빛을 양철거울처럼 반사하는 대평원에 쓰러져 죽은 들소 떼의 하얀 갈비뼈를 본 적이 있나요. 

겨울, 살을 에는 송곳바람이 부는 눈 쌓인 협곡으로 피난하는 얼굴색이 붉은 사람들*의 뒷모습을 본 적이 있나요.

     



아버지 태양이 빛을 주었습니다. 

어머니 대지의 가슴에 비가 내렸습니다.

어머니 대지의 품으로 바람이 불었습니다. 

대지의 옷자락이 그 비와 바람을 품었습니다. 

대지의 옷자락을 적신 물이 강으로 흘렀습니다.

바다는 모든 강물을 안았습니다.

땅과 바다에서 수많은 종류의 생명이 태어났습니다. 

기고, 걷고, 뛰고, 날고, 헤엄치는 무수한 생명 중에서 

두 발로 서서 다니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모든 생명과 더불어 살아가는  

얼굴색이 붉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콜럼버스의 가짜 신대륙  


   

1492년, 인도를 향해 떠난 얼굴색이 흰 사람 콜럼버스와 그 선원들은 바다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었죠. 선원 중 많은 사람이 이미 배 위에서 죽었고 살아 있는 사람도 이질, 설사 등 풍토병으로 죽기 직전이었습니다. 그때 어머니 대지가 그들을 안았습니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그곳에 있었던 어머니 대지가 그들을 품고 또 하나의 생명을 주었던 것이죠. 


콜럼버스 일행을 처음 맞이한 사람은 카리브해의 히스파니올라섬에 살던 타이노(Taino)족이었습니다. 원래부터 그곳에 살던 얼굴색이 붉은 사람들이었죠. 그들은 처음 보는 얼굴색이 흰 이방인들의 손을 따뜻하게 잡았습니다. 먹을 음식이야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요. 잠잘 숙소도 마련해 주고 병도 낫게 해 주었죠. 비록 피부색이 다른 이방인일지라도 고난에 처한 사람들을 돕는 것은 그들의 오랜 전통이었습니다. 


신대륙을 발견한 얼굴색이 흰 사람 콜럼버스!

그러나 콜럼버스는 신대륙을 발견한 것이 아닙니다. 

그곳에는 이미 얼굴색이 붉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죠. 

그의 신대륙은 거짓으로 포장된 가짜 신대륙입니다.

그때 얼굴색이 붉은 사람들이 내민 구원의 손길이 없었다면 

그가 말하는 신대륙도 발견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도 낯선 이국의 땅에서 불귀객이 되고 말았겠죠. 

얼굴색이 붉은 사람들이 그와 선원들의 생명을 구해 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콜럼버스는 감사할 줄 몰랐습니다. 

오히려 생명의 은인을 짐승처럼 취급했습니다. 

그에게 새 생명을 준 얼굴색이 붉은 사람들을 강제로 붙잡아 

그의 배에 짐짝처럼 싣고 갔던 것입니다. 

그의 항해를 후원한 스페인 여왕 이사벨라에게 

인도에서 잡은 <인디언>이라고 거짓자랑하기 위해서였죠. 


얼굴색이 붉은 사람들은 원래 그곳에 살았던 원주민들입니다. 

그곳과는 전혀 다른 인도 대륙에 살았던 인디언이 아닙니다. 

콜럼버스의 거짓말이 얼굴색이 붉은 그곳 원주민들을 

거짓 인디언으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콜럼버스의 신대륙이 가짜 신대륙인 것처럼

원래부터 그곳에 살던 얼굴색이 붉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지금도 가짜 인디언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콜럼버스에게 잡혀간 얼굴색이 붉은 사람들!

어머니 대지는 이들의 영혼을 품지 못했습니다. 

이들은 항해 도중 모두 죽어 바다에 버려졌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인간종족 말살의 전형으로 인류 역사가 기록하는

나치의 유대인 학살 이전에 자행된 

그때까지 인류 역사에서 유례가 없었던 

가장 광범위한 장소에서

가장 오랜 시간에 걸쳐 

가장 비인간적인 방법으로 자행된 

인간종족 말살의 서막이 열렸던 것입니다.


이것은 뿌리 깊은 백인우월주의와 

유일신 사상이라는 오도된 종교적 신념에 의한

인류 역사의 가장 부끄러운 한 페이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풀과 나무 정령의 증언


                             



우리는 풀과 나무의 정령입니다. 

원래 이곳에 살았던 얼굴색이 붉은 사람들은 

나무나 벽돌로 지은 집에서 살지 않습니다. 

티피(tepee)라고 부르는 원뿔형 천막집에서 삽니다.

얼굴색이 붉은 사람들도 나무나 벽돌로 집을 지을 줄 압니다. 

그런데 왜 이런 천막집에서 사는 삶을 택할까요?

왜 해마다 그 천막집을 옮겨 다닐까요?

마음 깊은 곳에 머무는 달(아라카라족의 1월)부터 

다른 세상의 달(체로키족의 12월)까지 

오랫동안 천막을 친 곳에는 어머니 대지의 살갗이 딱딱해져 

우리들 풀과 나무가 살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죠. 

어머니 대지의 살갗에 흉터가 생긴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죠. 

얼굴색이 붉은 사람들은 우리를 배려하고 존중했고

우리도 그들을 이해하고 사랑했습니다. 




얼굴색이 붉은 사람들은 위대한 정령의 뜻에 따라 

우리에게 고유한 이름을 붙여 주었습니다. 

그 이름은 위대한 정령의 숨결처럼 신성하고 고귀했습니다. 

우리는 그 이름으로 서로 친해질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우리에게서 양식을 얻고 꼭 필요한 만큼만 가졌습니다.

더 많이 가지는 것은 불명예로 여겼습니다. 

남는 것은 이웃에게 모두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들은 우리 중 어느 것도 잡초나 잡목이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우리 각자가 모두 소중한 같은 생명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각자의 비밀을 하나씩 가르쳐 주었고

그들은 그 비밀을 통하여 병을 고치는 약을 만들었습니다.

얼굴색이 붉은 사람들은 우리를 지배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통하여 그들은 우리를 통하여 

위대한 정령에게 더욱 가까워질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돌보고 사랑하며 조화롭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얼굴색이 붉은 사람들과 우리는 어머니 대지의 품 안에서 하나였습니다.

     



우리가 사는 곳에 얼굴색이 흰 사람들이 왔습니다. 

처음 그들은 굶주리고 병들어 있었습니다. 

얼굴색이 붉은 사람들이 먹을 것을 주고 잠잘 곳을 마련해 주었죠.

병든 사람은 정성껏 치료해 주었습니다. 

얼굴색이 흰 사람들은 티피가 아닌 옮겨 다닐 수 없는 

돌과 통나무로 벽을 세운 사각형의 딱딱한 집을 짓고 살았습니다. 

그들이 집을 지은 곳은 어머니 대지의 살갗에 난 부스럼 딱지였죠. 

우리는 그 부스럼 딱지 위에서는 제대로 살 수 없었습니다. 


얼굴색이 흰 사람들이 더욱 많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들은 누구나 자기들 집 둘레에 울타리를 치고 

그 안이 그들의 소유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어머니 대지 위에 보이지 않는 금을 긋고 

그곳이 그들의 소유라고 했습니다. 

얼굴색이 붉은 사람들에게 어머니 대지를 팔라고 했습니다. 

어머니 대지의 따뜻한 사랑과 포근한 품을 

어떻게 돈이나 문서로 사고팔 수 있나요.**

어머니 대지를 소유한다는 문서가 무슨 소용이 있나요. 

그 문서가 어머니 대지의 가슴을 열 수 있나요.

그 문서가 어머니 대지의 가슴을 기쁘게 할 수 있나요.

그 문서는 오히려 어머니 대지의 가슴에 흐르는 눈물이 아닌가요.

어머니 대지의 사랑과 포근한 품은 사고파는 물건이 아닙니다. 

그것은 생명 그 자체입니다. 

어머니 대지가 인간을 품고 있습니다. 


얼굴색이 흰 사람들은 어머니 대지를 팔지 않는 

얼굴색이 붉은 사람들을 총으로 내쫓았습니다. 

강제로 붙잡아 노예처럼 부리기도 했습니다. 

야만인이라고 머리 가죽을 벗겨 죽였습니다.

그들에게 필요하지 않은 풀과 나무를 불태웠습니다. 

더 많이 가지고 더 많은 농사를 짓기 위해서였습니다.

더 많은 씨를 뿌리고 더 많이 수확했습니다. 

그러나 남은 수확물을 나눌 줄을 몰랐습니다. 

이웃이 굶주려도 나누어 주지 않았습니다. 

남아도는 수확물을 오직 돈으로 바꿀 줄만 알았습니다.

 

얼굴색이 붉은 사람들이 야만인인가요.

그들에게 필요하지 않은 우리들 풀과 나무는 

오로지 잡초이고 잡목일 뿐인가요.

위대한 정령의 뜻이 우리 안에도 있다는 것을 

얼굴색이 흰 사람들은 왜 모르는가요. 

남는 것을 없는 사람에게 베풀지 않는 사람들   

어머니 대지의 사랑과 품을 돈으로 사고파는 사람들 

위대한 정령의 뜻을 품은 풀과 나무를 마구 죽이는 사람들

정작 야만인은 얼굴색이 흰 그들이 아닌가요.


우리는 얼굴색이 흰 사람들에 의해 죽어간 

풀과 나무의 정령입니다

우리는 얼굴색이 흰 사람들의 야만을 증언합니다






들소 정령의 증언     



대평원을 내달리는 들소 떼의 천둥 같은 발굽 소리는 

얼굴색이 붉은 사람들에겐 축복이었습니다.

들소 고기는 그들의 소중한 식량이었고

들소 가죽은 그들의 옷과 천막이었습니다. 

얼굴색이 붉은 사람들은 들소를 사냥하지 않았습니다. 

들소 무리에게 양해를 구하고 대열에서 처지는 

가장 약한 들소만을 잡았습니다. 

필요하지 않은 들소는 잡지 않았습니다. 

잡은 들소는 하나도 버리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마지막 남은 뼈조차도 용도에 맞게 사용했습니다. 

들소와 얼굴색이 붉은 사람들이 어머니 대지 위에서 

영혼으로 맺은 신성한 약속이었습니다. 

어머니 대지의 품에서 그들은 친구였고 하나였습니다.     

 



얼굴색이 흰 사람들은 달랐습니다. 

필요하지도 않은 들소를 마음대로 죽였습니다. 

들소 가죽만을 벗기고 고기는 들판에 버렸습니다.

장난으로 재미로 들소를 죽였습니다.

대평원을 가로지르는 평행한 철길을 따라

머리 위 굴뚝에서 하얀 연기를 내뿜는 

기다란 뱀이나 지렁이 같은 기차를 타고 가면서 

들소 떼를 향해 무차별 총을 쏘았습니다. 

대평원에 들소들의 시체가 널렸습니다. 

그 악취가 대평원의 하늘로 퍼졌습니다.

들소의 하얀 뼈가 내리쬐는 햇볕에 하얀 꽃처럼 빛났습니다. 


1800년대 수천만 마리가 넘는 들소 떼가 

대평원을 자유롭게 누비며 살고 있었습니다.

그 많던 들소들이 얼굴색이 흰 사람들에 의해

대평원에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2000년대에는 불과 천 마리 정도만 남아 있습니다. 

들소는 이제 멸종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들소들은 무슨 죄를 지었나요.

들소들은 무엇 때문에 죽어야 했나요.


우리는 얼굴색이 흰 사람들에게 학살당한 

들소의 정령입니다.

우리는 얼굴색이 흰 사람들의 만행을 증언합니다.


   



            

나비와 거미 정령의 증언    



                     


나비는 소리가 없어도 날개만으로도 아름답습니다. 

얼굴색이 붉은 사람들은 알았습니다. 

소리 없는 날개로 전하는 나비의 침묵을.

얼굴색이 붉은 사람들은 침묵의 힘을 알았습니다. 

때로는 말보다 침묵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침묵 속에 빛나는 자아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모든 생명의 가슴속에 마음의 눈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오직 깊은 명상 속에서 마음의 눈으로 만물을 보았습니다. 


얼굴색이 붉은 사람들은 나비의 침묵으로 

시간과 삶의 거미줄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들은 매 순간 느끼고 알았습니다. 

만물에 생명의 빛을 주는 아버지 태양과 

그 빛을 받은 어머니 대지와 

그 대지 위에 태어난 모든 생명이 

거미줄처럼 하나로 얽혀 있음을.

인간이 거미줄을 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역시 한 올의 거미줄에 불과합니다.**

얼굴색이 붉은 사람들은 삶의 거미줄을 타고 

어머니 대지의 가슴으로 들어갈 줄 알았습니다. 

 

얼굴색이 붉은 사람들은 어머니 대지의 가슴속에서 

모든 것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대지 위의 풀도 꽃도 나무도 숲도

푸른 달을 바라보는 늑대도 

들판을 달리는 들소도 

하늘을 나는 독수리도 

강과 계곡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도

계곡 바위에 서서 연어를 기다리는 곰도    

심지어 땅 위에 뒹구는 작은 돌 하나에도

위대한 정령의 의지가 깃들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소리에는 거짓을 섞을 수 있으나 

침묵은 오직 진실만을 품습니다. 

얼굴색이 흰 사람들은 침묵 속 진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침묵이 소리보다 더 정직하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얼굴색이 흰 사람들은 소리에 거짓을 섞었으나

얼굴색이 붉은 사람들은 침묵 속에 참을 새겼습니다. 

얼굴색이 흰 사람들은 거짓소리를 쓴 거짓문서를 만들었습니다.

얼굴색이 붉은 사람들이 그 문서약속을 어겼다고 내쫓았습니다.

정작 약속을 어긴 자는 얼굴색이 흰 그들이었습니다. 

얼굴색이 흰 사람들은 거짓을 참으로 꾸며

얼굴색이 붉은 사람들을 들소처럼 살해했습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보호구역에 가두었습니다.

자유를 잃은 얼굴색이 붉은 사람들의

순수한 영혼은 미치고 병들어 죽어갔습니다.


우리는 침묵으로 참을 전하는 

나비와 거미의 정령입니다

우리는 얼굴색이 흰 사람들의 거짓과 위선을 증언합니다 


              




이름 있는 모든 정령이 하는 증언  



 


모든 생명에는 그 나름의 고유한 목적과 의미가 있습니다. 

비록 인간의 눈에는 하찮게 보이는 미물일지라도

생명은 그 자체로 소중하고 마땅히 존중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그 생명을 만든 위대한 정령의 뜻입니다.

얼굴색이 붉은 사람들은 위대한 정령의 이 뜻을 알았습니다. 

생명 존중은 얼굴색이 붉은 사람들의 가장 기본적인 삶의 방식이었습니다. 

 

언어는 그 자체로 힘을 갖고 있지요.

이름은 단순한 언어보다 더 큰 힘을 갖고 있지요.

이름은 모든 사물의 기원이 되며 그 자체로 신성합니다. 

어떤 사물에 이름을 붙이는 행위는

위대한 정령의 숨결을 그 사물에 불어넣는 행위입니다.


얼굴색이 붉은 사람들은 위대한 정령의 숨결을 

그 사물의 이름으로 붙였습니다.

보이는 것과 숨어 있는 것 

소리 내는 것과 침묵하는 것  

움직이는 것과 가만히 있는 것

이 모든 생물과 사물에 이름을 붙였습니다. 

얼굴색이 흰 사람들의 수많은 존과 톰과 메리가 아닌

그것에만 독특한 위대한 정령의 숨결을 불어넣었습니다.



     

얼굴색이 흰 사람들은 자신들이 모든 것들의 우위에 있고

자신들만이 만물을 통제하고 지배하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위대한 정령의 숨결은 아예 느끼지도 못합니다. 

과연 얼굴색이 흰 사람들이 얼굴색이 붉은 사람들과 

이름 있는 모든 생명과 사물을 지배하고 있을까요?

얼굴색이 흰 사람들은 아직도 모르고 있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위대한 정령의 숨결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오히려 그들이 그 숨결이 녹은 이름에 지배되고 있다는 것을.


이름 있는 모든 정령은 이렇게 증명합니다.

나이아가라는 천둥처럼 구르는 물입니다.

미시간은 큰 호수입니다. 

일리노이즈는 잘난 사람들입니다.

켄터키는 내일의 땅입니다.

아이오와는 아름다운 땅입니다. 

앨라배마는 우리가 쉴 땅입니다. 

이것들은 모두 얼굴색이 붉은 사람들이 

위대한 정령의 숨결을 받아 붙인 이름입니다. 

그러나 이 땅들의 이름도 하나의 예시에 불과합니다. 

이 대지의 모든 땅의 이름에는 

위대한 정령의 숨결이 살아 흐르고 있습니다.     

     



요세미티 국립공원(Yosemite National Park)은 잘 아실 겁니다. 

그런데 ‘요세미티(Yosemite)’가 무엇을 뜻하는지도 알고 있는가요. 

요세미티는 (사람을 죽이는핏발이 선 곰이라는 뜻입니다.

얼굴색이 붉은 사람들의 오랜 구전(口傳)에 등장하는 

사람을 이유 없이 죽이는 난폭한 곰의 이름입니다. 


모든 것을 베풀어주는 풍성한 어머니 대지와 

위대한 정령이 부여한 신성한 명예와 

그들의 고유한 관습을 지키기 위해

얼굴색이 붉은 사람들의 전사들은

얼굴색이 흰 사람들에게 끝까지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얼굴색이 흰 그들의 기병대는 

현대식 총과 대포로 무장하고 있었습니다.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티피 마을에서, 

들소 떼가 달리는 대평원에서, 

굽이치는 강과 계곡에서, 

내몰리고, 내몰리고 또 내몰린 

얼굴색이 붉은 사람들의 전사들은 

신성한 땅 천연 협곡 요새를 방패로 삼고 

기병대와 최후의 일전을 벌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총과 대포에 의한 학살극이었습니다.

전사들은 마지막 한 사람까지 저항하다 모두 대지의 품에 안겼습니다.

이 학살극이 시작되기 직전, 협곡 입구의 초병 전사가 

기병대가 오는 것을 보고 “요세미티!라고 외쳤습니다.

그 당시 얼굴색이 붉은 사람들은 살인자라는 단어를 몰랐습니다. 

아무 이유 없이 사람을 죽이는 살인 만행은  

오직 난폭한 곰, 요세미티만이 할 수 있는 만행이었습니다.

그래서 초병 전사는 요세미티라고 외쳤던 것입니다.


결국 이 말은 얼굴색이 흰 사람들의 기병대가 

핏발이 선 곰 요세미티와 같은 살인자라는 의미입니다. 

그때 전사들이 마지막 일전을 벌인 

네바다 산맥의 가장 험준한 천연 협곡이 

바로 지금의 요세미티 국립공원입니다.

얼굴색이 흰 사람들은 이 이름 속에서 

지금도 살인자로 살고 있습니다.     

     



지금 얼굴색이 흰 사람들이 사는 거의 모든 땅의 이름은 

얼굴색이 붉은 사람들이 위대한 정령의 숨결을 받아 

그에 맞는 독특한 의미를 부여하여 지은 이름입니다. 

얼굴색이 흰 사람들은 이 이름을 그대로 부르고 있습니다.

얼굴색이 흰 그들의 일상과 말이 이 이름에 지배되고 있습니다. 

얼굴색이 흰 사람들은 어머니 대지를 다스리지 못합니다.

얼굴색이 붉은 사람들을 길들이지도 못합니다.

오히려 얼굴색이 붉은 사람들이 부여한 의미와 이름에 이끌리고 있습니다.

다만 얼굴색이 흰 그들이 모르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모든 이름 있는 것들의 정령입니다

우리는 얼굴색이 흰 사람들의 착각을 증언합니다  

 


       

* 열한 번째 환상 // 콜럼버스의 관(2)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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