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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재도 Feb 19. 2023

시 소설 & 소설시
모자이크 환상

일곱 번째 환상  무화과 

Poetic Novel & Story Poem

(시 소설 & 소설시)

모자이크 환상     

     

시와 소설의 경계를 해체하는 순수문학 판타지 

아름답고 서정적인 시문(詩文) 속에 펼쳐지는 경이로운 환상의 세계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새로운 장르가 열린다                                               


                                                               




일곱 번째 환상

무화과 

            


      

1


에덴동산 한가운데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여자에게 따 먹도록 꾄 뱀에게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이런 일을 저질렀으니

너는 모든 집짐승과 들짐승 가운데에서 저주를 받아

네가 사는 동안 줄곧

배로 기어 다니며 먼지를 먹으리라(창세기 3–14).


그러나 뱀은 이 명령에 굴복할 수 없었다.

내가 한 일은 무지한 인간들에게 지식의 문을 열어준 것이다.

이런 나에게 상은 주지 못할망정 저주를 내리다니.

오히려 뱀은 저항했다.       

에덴동산의 하와를 유혹한 달콤한 혀로, 

하느님의 나라인 이 세상을 거짓으로 물들이자.

그 거짓에 내 뼛속에 사무친 독을 섞어 이 세상에 퍼뜨리자.

이것이 나를 추방한 하느님에 대한 유일한 복수의 길이다.

뱀은 하느님의 절대 권력에 항거하는 혁명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2     


에덴동산에서 추방되기 직전, 뱀은 하느님 몰래 하와가 열매를 따먹은 그 생명나무의 우듬지로 기어 올라가 가지 하나를 물어 꺾어 잘랐다. 뱀은 그 가지를 입에 물고 사막을 건너기 시작했다. 뱀은 뜨거운 열사의 사막을 하루 종일 기어갔다.   


일주일이 지났다. 

뱀은 여전히 사막을 기어가고 있었다. 내리쬐는 뜨거운 열에 등껍질이 모두 벗겨져 내렸다. 그러나 뱀은 입에 문 가지를 놓지 않았다. 오직 가지가 시들지 않도록 입안의 침으로 가지 끝 잘린 부분을 적시고 있었다.    


또 일주일이 지났다. 

뱀은 여전히 사막을 기어가고 있었다. 뜨거운 열에 등의 진피가 녹아내렸다. 그러나 뱀은 입에 문 가지를 놓지 않았다. 점점 메말라가는 입안의 침으로 오로지 가지 끝을 적시고 있었다.       


또 일주일이 지났다. 

뱀은 여전히 사막을 기어가고 있었다. 진피가 녹아내린 등줄기에서 하얀 등뼈가 드러났다. 그러나 뱀은 입에 문 가지를 놓지 않았다. 가지가 시들어 죽어버리면 뱀의 열망도 모두 수포로 돌아가 버릴 것이었다. 안 돼! 뱀은 마지막 몸 안의 수분을 짜내어 가지 끝을 적셨다.     


사막의 끝, 푸른 바위산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밤이 오고, 뱀은 푸른 바위산의 돌 틈에서 탈진한 몸을 잠시 뉘었다. 이제는 몸속의 수분이 모두 고갈되어 침조차 나지 않았다. 입에 문 가지도 푸른빛을 잃고 점차 시들어가고 있었다. 


아아! 가지가 죽으면 안 돼. 

살려달라고 기도라도 하고 싶었다. 

그러나 저주를 받은 뱀은 기도할 대상조차 없었다.   

나의 열망은 끝내 이루어지지 못하는가. 

뱀은 독기 서린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나의 의지는 정녕 여기에서 꺾이고 마는가.

그러나 하늘은 뱀의 절망처럼 깊고, 검고, 어둡기만 했다.

아! 이대로 죽어야만 하는가. 

뱀은 너무도 안타까운 마음에 하늘을 향해 절규했다.       


그때 푸른 별똥별 하나가 긴 꼬리로 푸른 광선을 내뿜으며 푸른 바위산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 별똥별이 신호였다는 듯이 푸른 바위틈에서 푸른 전갈들이 무리 지어 기어 나왔다. 푸른 별빛을 받은 푸른 전갈들이 푸른 꼬리 침으로 뱀의 하얀 뼈마디에 푸른 독침을 쏘았다. 사막을 기어 오는 동안에 하얗게 탈색되었던 등뼈의 색깔도 푸르게 변색되었다.      


뱀의 입안에 전갈의 독이 고이기 시작했다. 

뱀은 혀로 그 독을 가지 끝에 발랐다. 

시들어가던 가지가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3     


푸른 바위산에 아침이 찾아왔다. 바위산 아래에 푸른 아침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굽이치는 푸른 강줄기가 바다로 흘러들고 있었다. 강줄기를 따라 푸른 언덕이 이어지고, 그 언덕 위에 푸른 나무들이 푸르게 우거져 있었다. 


뱀은 그 언덕을 향하여 기어갔다. 언덕 아래에 도착한 뱀은 입에 물고 온 생명나무 가지를 부드러운 흙속에 정성껏 심었다. 


뱀은 그 가지가 심긴 땅 밑을 삼각형의 머리로 파고 들어갔다. 흙속에 심긴 가지 끝부분보다 더 아래까지 파고 내려간 뱀은 땅속에서 마치 참선을 하는 것처럼 똬리를 틀고 앉았다. 그러고는 먹이를 포획하는 것처럼 입을 크게 벌리고, 아래위 네 개의 독 이빨을 가지 끝부분에 못처럼 단단하게 박았다. 벌어진 턱을 단단히 조이고, 입술을 꽉 다물었다. 입속의 긴 혀로도 가지 끝부분을 친친 감았다.           



4     


이제 흙속에 심긴 그 가지 끝에서 새 뿌리가 돋아날 것이고, 그 뿌리는 푸른 강물을 머금은 푸른 대지에 더 깊은 뿌리를 내릴 것이다. 그리하여 그가 에덴동산에서 잘라온 그 작은 가지 하나는 푸른 강 언덕에서 부는 푸른 바람을 마시며 새로운 원줄기로 성장하여 다시 수많은 새 가지를 펼쳐나갈 것이다. 그리고 그 가지에서 푸른 잎이 돋아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을 것이다.  


그러나 그 뿌리는 그의 혀에 발린 거짓말과 뼈에 스며든 푸른 전갈의 독도 함께 끌어올릴 것이다. 그리고 그 독은 나무의 꽃과 열매를 통하여, 벌과 나비를 통하여, 꽃향기와 바람을 통하여, 사람들의 몸과 마음에 소리 없이 스며들 것이다. 그리하여 하느님이 만든 이 세상은 푸른 전갈의 독에 중독된, 그가 소망하는 거짓 세상이 될 것이다. 


뱀은 흐뭇한 승리의 웃음을 머금고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           



5     


뱀이 소망하고 예언한 것처럼, 그 가지에서 뿌리를 내린 나무는 무럭무럭 자랐다. 

이제 나무는 무성한 잎을 매단 많은 가지에서 꽃을 피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느님의 나라를 거짓으로 물들이고 말겠다는 뱀의 무서운 욕망, 

그 욕망의 꽃이 피어나고 결실을 맺을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나 그 나무는 에덴동산의 생명나무 가지가 자라난 것이었다. 

그 생명나무에 하느님의 뜻이 숨겨져 있는 것처럼,

그 가지가 자라난 그 나무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그 뿌리 위 둥치에 뱀의 무서운 욕망이 스며들어 있었지만,

나무의 더 깊은 본성에는 하느님의 거룩한 신성(神性)이 깃들어 있었다.

빛과 생명, 그것이 바로 하느님이 부여한 생명나무의 본성이었다.    


나무는 알고 있었다. 

아프게 느끼고 있었다.   

뱀이 죽으면서 예언한 것처럼, 

이제 그가 꽃을 피우게 되면, 

꽃잎을 스치는 바람과 벌과 나비의 날갯짓을 타고,

뱀의 거짓말이 세상으로 퍼지고, 

그 꽃이 지고 열매를 맺으면, 

그 열매를 먹은 생물과 사람들의 몸이

푸른 전갈의 독에 중독될 것이다. 

나무는 자신의 가지에서 피어날 꽃의 개화를 막아야 했다. 


나무의 우려에는 아랑곳없이,

드디어 가지에서 꽃봉오리가 꿈틀거렸다. 

벌과 나비가 무리를 지어 벌써 날아와 

관능적인 몸짓으로 군무(群舞)를 추고 있었다. 

마침내 꽃잎 하나가 피어나려고 실눈을 떴다. 

나무는 그 눈꺼풀을 안으로 접어 넣었다.

또 한 잎이 피어나려고 발가락을 꼼지락거렸다. 

나무는 그 발가락을 안으로 오므려 넣었다.

여러 개의 꽃잎이 한꺼번에 피어나려고 웅성거렸다. 

나무는 그 꽃잎들을 두 팔로 감싸 안아 속으로 밀어 넣었다.  


꽃잎은 피어나려 하고,

나무는 접고,

꽃잎은 피어나려 하고,

나무는 오므리고,

꽃잎은 피어나려 하고,

나무는 감싸 안고, 

단 한 장의 꽃잎도 피어나게 해서는 안 되었다.

안으로 접힌 꽃잎에 나무의 땀방울이 흐르고,

안으로 오므린 꽃잎에 나무의 눈물이 맺히고,  

속으로 감싸 안은 꽃잎에 나무의 울음이 새겨지고 있었다. 


개화를 막으려는 나무의 안타까운 의지에, 

안으로 접힌 꽃잎은 안으로 오므린 꽃잎에 밀려  

더 깊은 곳에서 속살이 되고,

안으로 오므린 꽃잎은 속으로 감싸는 꽃잎에 묻혀

그 속살에 녹아든 과즙이 되었다. 


우연히 그 나뭇가지에 앉은 작은 새 한 마리가, 

멋모르고 꽃잎의 속살 한 조각을 파먹고 다시 날아올랐다. 

새가 나무의 우듬지 위를 잠시 선회하며 날개를 파닥였다.

새의 날갯짓을 타고 뱀의 거짓말이 물방울처럼 튀었다. 

그러나 새는 이내 날갯짓을 멈추고 피를 토하며 추락하고 말았다.


나무가 혼신의 의지를 다하여 꽃잎의 개화는 막고 있었지만, 

뿌리에서부터 안으로 또 안으로 흘러

꽃잎의 속살까지 스며든 뱀의 의지는 막을 수 없었다.

뱀은 이미 나무가 피울 꽃잎뿐만 아니라 그 꽃잎의 깊은 속살에도 

그 견고한 의지를 심어 두고 있었다.


나무는 절망했다. 

혼신의 힘을 다한 그의 의지와 정신력만으로는, 

뱀의 견고한 의지를 막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나무는 가지를 모으고 잎사귀를 떨며, 

하느님께 간절하게 기도했다.     



6     


주여제 뿌리를 적시고 있는 이 거짓의 샘물을

당신의 진실한 음성으로 메워주소서.

제 줄기를 타고 흐르는 이 무서운 푸른 액체를,

당신의 부드러운 손길로 걸러주소서

제 열매에 스며든 이 붉은 독기를,

당신의 따뜻한 입김으로 정화시켜 주소서.

제 뿌리와 줄기와 열매에 스며든 간악한 뱀의 의지를 벌하시고

주의 거룩한 뜻을 배반한 그 저주의 영혼이,

다시는 이 땅 위에 나타나지 않도록 해주소서.


그러나 하느님은 이 기도에 응답하지 않았다.

나무의 기도는 계속되었다.  

나무의 간절한 기도와는 반대로,

나무는 이제 모든 가지에서 꽃을 피우려 하고 있었다. 

그 많은 가지에서 피어나는 모든 개화를 막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 개화를 막지 못하면 이 세상은 결국 뱀의 거짓 세상이 되고 만다. 

그런데도 하느님은 나무의 안타까운 기도를 외면하고 있었다. 

나무는 원망스러운 마음으로 잎사귀와 가지를 마구 흔들었다.

그러나 하느님은 응답하지 않았다.


나무는 지쳐가고 있었다.

이제는 탈진한 나머지 개화를 막으려는 의지조차 상실해 가고 있었다. 

그때 문득 나무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나의 기도가 잘못되었는지 모른다.

내가 한 번이라도 눈물 어린 시선으로 

뱀의 모습을 바라본 적이 있었던가.

내가 만약 뱀과 같은 형벌을 받았다면, 

나도 뱀처럼 했을 것이 아닌가.

그런데도 나는 그런 뱀의 영혼을 가엽게 여기지는 않고

그 영혼을 이 땅 위에서 사라지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나의 기도는 잘못되었다. 

나무는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 

나무는 다시 간절하게 기도하기 시작했다.          



7     


주여, 제 뿌리에서 솟아오르는 이 무지의 싹을 

당신의 부드러운 손길로 가꾸어주시고,

제 줄기를 타고 흐르는 이 푸른 물방울을

당신의 온화한 입김으로 불어주시고,

제 열매에 스며든 이 붉은 과즙을 

당신의 따뜻한 입술로 적셔주소서.

제 뿌리와 줄기와 열매에 스며든, 

뱀의 가련한 의지를 용서하시고

보이지 않는 주의 거룩한 뜻으로,

이제까지 그가 겪은 고통을 위로해 주소서.

그리하여 주의 사랑으로 구원받은 그 불쌍한 영혼이, 

주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의 모든 생명과 함께 어울려 

이 땅 위에서 기쁘게 살며 번성하게 해 주소서. 


나무의 기도소리가 가지를 흔드는 바람을 타고 하늘로 퍼졌다. 

하늘이 어두워졌다. 

구름이 몰려왔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빗물이 나무 잎사귀를 적시고 줄기를 타고 내려와 뿌리로 스며들었다.


비가 그쳤다. 

구름 사이에 무지개가 나타났다. 

나무는 무지개를 바라보았다. 

나무는 문득 그 무지개가 하느님의 계시라는 느낌이 들었다. 

구름 사이에서 하느님의 음성이 들리는 것 같았다. 

  

내가 미래의 모든 세대를 위하여, 나와 너희, 그리고 너희와 함께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세우는 계약의 표징은 이것이다. 내가 무지개를 구름 사이에 둘 것이니, 이것이 나와 땅 사이에 세우는 계약의 표징이 될 것이다(창세기 9–12, 13).     


그때, 나무는 알았다. 

드디어 하느님이 그의 기도에 응답하셨다는 것을.

나무는 기뻐서 눈물을 흘렸다.

나무는 둥치 속 깊은 곳에서 느끼고 있었다.   

그의 뿌리와 줄기와 열매가,

하느님께서 내린 성수(聖水) 같은 단비로 정화되었다는 것을.          



8     


푸른 강언덕 아래 나무가 서 있는 곳으로 두 사람이 손을 잡고 걸어오고 있었다. 두 사람은 아직도 구름 사이에 걸린 무지개를 타고 내려오고 있었다. 아버지와 어린 아들이었다. 그리 나이가 들어 보이지 않는데도, 아버지의 얼굴에는 아름다운 은빛 수염이 드리워져 있었다. 이윽고 두 사람이 나무 아래에 이르고, 아들이 고개를 들어 나무를 올려다보고 말했다.  

   

― 아빠, 이상한 나무야. 꽃이 피지 않았는데도 열매가 열렸어. 따 먹어도 돼?  


아버지가 말했다. 


― 가만 보자. 벌과 개미가 벌써 와 열매를 먹고 있구나. 벌레들도 독이 든 열매는 먹지 않지. 그래, 이 열매는 이제 먹어도 돼.       


아버지가 낮은 나뭇가지에 달린 열매 하나를 따서 쪼개어 먼저 속을 들여다보았다. 속은 빨간 꽃잎을 오므려 뭉쳐놓은 것 같은 붉은 과육으로 꽉 차 있었다. 그것을 본 아버지가 빙그레 웃으며 한 손에 든 반쪽의 열매를 아들에게 주었다. 그것을 받아 한 조각을 베물어 입에 넣은 아들의 눈이 경이롭게 빛났다. 아들이 말했다.      


― 아빠, 정말 맛있어. 진짜 달아. 그런데 꽃이 피지 않았는데도 어떻게 열매가 달렸지?  

― 글쎄다. 그러면 지금부터 이 과일은 무화과라고 불러야겠구나.     


그 후 사람들은 이 꽃이 피지 않는 나무의 열매를 무화과無花果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이 열매에 스며들어 있는 뱀의 고통과 원죄를.

이 열매를 맺기 위한 나무의 기도와 해원解寃의 눈물을. 

이 열매를 위해 베풀어진 창조주의 용서와 사랑을.     


 

9


그 안에는,

에덴동산의 하와를 유혹한 

언어의 관능이 녹아있어

 

또 그 안에는, 

마지막 열정을 불태우고 스러지는

낮은 저녁노을이 깔려있어

  

또 그 안에는,

그 노을을 바라보는 

늙은 예술가의 눈빛이 어려 있지 

  

또 그 안에는,

시대의 횃불을 들고 달려가는

젊은 혁명가의 기개가 서려 있어    

    

또 그 안에는, 

이 땅의 모든 생물의 구원을 위해 

작은 촛불을 켜는

가난한 구도자의 눈물도 들어 있지      


이 세상의 모든

기쁨과 슬픔 

사랑과 증오 

열정과 분노까지도 

접고, 오므리고,

삭이고 또 삭였지      

안으로 또 안으로 

안에서 또 안에서 

접고, 오므려, 삭여낸 

해원(解寃)의 눈물꽃     

무화과

無花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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