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번째 환상 // 콜럼버스의 관(2)
Poetic Novel & Story Poem
위대한 정령은 인간이 준비될 때까지
가치 있는 보물 한 가지를 감춰두었습니다.
그것은 가장 중요한 삶의 비밀입니다.
독수리는 푸른 달에
연어는 깊은 바다 밑에
들소는 대평원 땅속에
그것을 감춰두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준비가 되기도 전에
달과 바다와 땅속에서도
반드시 그 비밀을 찾아낼 것입니다.
위대한 정령은 마음의 눈을 가진
들쥐의 가슴속에 그것을 감춰두었습니다.
이것은 얼굴색이 붉은 사람들(Sioux족)에게 전해 내려오는
삶의 의미와 지혜가 담긴 구전(口傳)의 하나입니다.
인간은 마음의 눈으로 바라보지 않으면
그 비밀을 결코 밝혀내지 못할 것입니다.
얼굴색이 붉은 사람들은 모든 생명의 가슴속에
마음의 눈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얼굴색이 붉은 사람들은 새벽이 오기 전에 일어나
떠오르는 아버지 태양을 바라보며 기도합니다.
경이로운 마음의 눈으로 기도합니다.
빛으로 생명을 주는 아버지 태양과
위로하고 치유하는 어머니 대지에
오직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깊은 명상으로 하루를 준비하고
오랜 침묵 속에 부드럽게 일합니다.
하루의 모든 행위가 성스러운 의식입니다.
얼굴색이 붉은 사람들은 더 많이 달라고
더 많이 갖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습니다.
위대한 정령이 필요한 모든 것을 만들어놓았고
어머니 대지에 그 모든 것은 이미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 달라고 기도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얼굴색이 붉은 사람들은 주어진 현재의 것에
오직 감사할 뿐이었습니다.
얼굴색이 흰 사람들의 유일한 정령이시여!
나는 얼굴색이 붉은 사람들의 위대한 정령입니다.
나는 얼굴색이 붉은 사람들을 대신하여
마음의 눈을 열고 당신에게 공손하게 물어봅니다.
얼굴색이 흰 사람들은 매일 당신께 기도합니다.
주여,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소서.
양식을 창고에 가득 쌓아두고서도
더 많이 달라고 요구하고 또 요구합니다.
굶주린 이웃에게 나눌 줄도 모릅니다.
유일한 당신은 그 기도를 항상 들어주시나요?
얼굴색이 흰 사람들은 또 당신께 기도합니다.
주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나는 나의 뜻을 얼굴색이 붉은 사람들의
어머니 대지 위에 이미 이루어 놓았습니다.
당신도 당신의 뜻을 당신이 창조한
당신의 땅 위에 이미 이루어 놓았겠지요.
얼굴색이 흰 사람들은 왜 이것을 모르는 것일까요?
왜 당신이 이미 이루어 놓은 것을
새삼 이루게 해달라고 기도할까요?
얼굴색이 흰 사람들은 또 당신께 기도합니다.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얼굴색이 흰 사람들이 당신께 하는 기도에는
죄를 뉘우치는 반성은 왜 없는가요?
유혹을 물리치겠다는 의지는 왜 없는가요?
더 이상 죄를 짓지 않겠다는 맹세는 왜 없는가요?
나는 얼굴색이 붉은 사람들의 위대한 정령으로서
얼굴색이 흰 사람들의 유일한 정령에게 감히 말합니다.
얼굴색이 흰 사람들이 당신께 하는 기도는
마음의 눈으로 하는 감사의 기도가 아닙니다.
요구하고 애원하는 투정일 뿐이고
심지어 당신에 대한 겁박처럼 보입니다.
감사할 줄 모르고 오로지 바라기만 하는
끝없는 탐욕에 당신은 화가 난 것입니까?
그래서 당신은 오직 심판하고 벌하는 존재가 되었습니까?
얼굴색이 흰 사람들의 유일한 정령이시여!
나는 얼굴색이 흰 사람들이 당신을 믿지 않는다고
얼굴색이 붉은 사람들을 해치는 것을
대지의 비통한 눈물 속에서 무수하게 보았습니다.
얼굴색이 붉은 추장을 화형대에 묶어놓고
얼굴색이 흰 당신의 사제가 말했습니다.
주를 믿으라.
살아 영생을 얻고
죽어 천국에 가리라.
얼굴색이 붉은 나의 추장이 말했습니다.
얼굴색이 흰 사람들도 그 천국에 있는가.
이토록 잔인한 영혼이 있는 그 천국에는
나는 절대 가지 않겠다.
얼굴색이 붉은 추장은 화형대의 연기로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그는 얼굴색이 붉은 사람들의 가슴속에서
어머니 대지의 향기로운 들꽃으로 다시 피어났습니다.
얼굴색이 흰 사람들의 유일한 정령이시여!
당신은 당신이 만든 생명을 벌하고 심판합니다.
얼굴색이 흰 사람들은 당신을 믿지 않는다고
얼굴색이 붉은 사람들을 들소처럼 참혹하게 죽였습니다.
총으로 쏘고 칼로 머리 가죽을 벗기고 불에 태웠습니다.
당신께서 그렇게 하라고 시켰는가요?
얼굴색이 흰 사람들의 가슴에 당신의 사랑이 있기나 한가요?
나는 당신처럼 그 누구도 벌하지 않습니다.
나는 그 어떤 생명도 심판하지 않습니다.
오직 그 생명을 보살피고 치유할 뿐입니다.
그 얼굴색이 붉은색이든 흰색이든 차별하지 않습니다.
내 앞에서 모든 생명의 가치는 똑같습니다.
모든 생명은 평등하고 모든 세계는 조화롭습니다.
나는 내 세계를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이런 세계가 바로 천국이 아닌가요?
얼굴색이 붉은 사람들은 내가 만든 낙원에서
모든 생명과 더불어 자유롭고 평등하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당신을 믿는 얼굴색이 흰 사람들이 와서
그 낙원을 빼앗고 파괴했습니다.
얼굴색이 흰 사람들의 유일한 정령이시여!
나는 감히 당신에게 묻습니다.
당신이 얼굴색이 흰 사람들에게 그런 권리를 주었나요?
당신의 그런 권리는 누구로부터 받은 것인가요?
당신이 만든 당신의 천국은 어디에 있나요?
당신이 만든 당신의 천국을 보여주시고
그곳이 이곳보다 더 행복하다는 증거를 보여주세요.
나는 당신의 뜻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당신이 만든 천국을 받아들일 수는 더욱 없습니다.
당신은 정녕 만물을 창조한 유일한 정령인가요?
나는 얼굴색이 붉은 사람들의 위대한 정령입니다.
나는 얼굴색이 흰 사람들이 신봉하는
유일한 정령의 오만을 증언합니다.
1493년, 콜럼버스는 그에게 생명을 주었던 타이노족 마을에 다시 돌아왔습니다. 무려 열일곱 척의 큰 배에 총과 대포 등 무기와 군대를 가득 싣고 왔던 것이죠. 그러고는 노예로 삼기 위해 그곳 원주민 500여 명을 강제로 붙잡아 갔습니다. 그러나 원주민들은 대서양을 건너지 못했습니다. 항해 도중 병과 굶주림과 정신병으로 모두 죽어 바다에 버려졌습니다.
얼굴색이 흰 자들의 작은 추장 콜럼버스여!
당신이 오기 전 얼굴색이 붉은 사람들의 어머니 대지는 행복 낙원이었습니다.
얼굴색이 흰 자들의 유일한 정령이 말하는 천국은 바로 그곳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다시 그 낙원에 와서 얼굴색이 붉은 사람들을 붙잡아 갔습니다.
오직 당신들의 노예로 삼기 위해서였죠.
당신은 바다에 버려져 갈 곳을 잃고 떠도는 영혼을 바라보는
창백한 별의 눈물과 바닷새의 비통한 울음소리를 기억해야 합니다.
1490년대 후반, 콜럼버스는 스페인 총독으로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습니다. 이즈음 이곳에서 황금이 발견되었습니다. 그곳 얼굴색이 붉은 원주민들이 말하는 <누런 똥>이었죠. 원주민들은 금의 가치를 몰랐고 금을 소유하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금광을 보호하려고 더 많은 스페인 군대가 왔습니다. 이때부터 원주민들은 금을 캐기 위해 강제로 금광에 끌려가 혹사당하고 굶주림과 병으로 죽어갔습니다. 당연히 원주민들의 생존저항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때 스페인 총독 콜럼버스가 첫 번째 포고령을 내립니다.
백인 한 사람이 죽으면 원주민 백 명을 죽여라.
이 포고령에 따라 스페인 군대의 원주민 학살극이 시작됩니다. 그 학살극의 잔혹상은 도저히 필설로 옮기기 힘듭니다. 원주민들을 집단으로 목매달고 불태웠습니다. 아무런 저항 없는 여자와 아이들을 학살하여 그 시체를 개의 먹이로 던져주었습니다. 콜럼버스의 이 포고령 이후 불과 14년 동안에 이곳의 원주민 3백만여 명이 무참하게 학살당하고 말았습니다. 50년 후, 살아남은 원주민은 불과 2백여 명에 불과했습니다.
얼굴색이 흰 자들의 작은 추장 콜럼버스여!
당신은 누런 똥의 악취에 취하여 얼굴색이 붉은 사람들을 무차별 학살했습니다.
당신의 잔혹한 만행에 어머니 대지조차 그 원혼들을 모두 거두지 못했습니다.
오직 바람과 높은 산과 해와 달이 그 참상을 지켜볼 뿐이었습니다.
당신은 그 원혼을 품은 어머니 대지의 옷자락을 결코 밟을 수 없을 것입니다.
당신의 영혼은 하늘의 문에 이르지 못하고 경계의 하늘을 떠돌 것입니다.
1500년대 초반, 중남미에 살던 원주민 아즈텍인들은 목걸이 등 금장식품을 스페인 군인들에게 호의로 선물했습니다. 물론 원주민들은 금의 가치를 모르고 있었죠. 금은 그들에게 귀중한 보물이나 가치 있는 물건이 아닌 단순한 장식품의 소재에 불과했으니까요. 그러나 곧바로 금에 눈이 먼 스페인 군대의 학살극이 시작되었습니다. 아즈텍의 수도는 불과 이틀 만에 완전히 폐허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그곳 아즈텍 원주민들의 시체가 산이 되고 피가 강물을 이뤘습니다.
동쪽 큰 바다 건너 얼굴색이 흰 자들의 대추장 스페인 국왕이여!
누런 똥의 악취가 바다 건너 당신들 궁전까지 퍼졌나요.
황금에 눈먼 당신들의 군대가 아즈텍의 수도에 저지른 만행을 보십시오.
얼굴색이 붉은 사람들의 시체가 산이 되고 피가 강물이 되어 흘렀습니다.
아즈텍 성채 보다 더 높게 쌓인 그 붉은 산은 당신들의 가슴에서 낙인이 되고
아즈텍 폐허를 적신 그 붉은 강물은 당신들의 혈관에서 저주로 흐를 것입니다.
당신들은 그 무거운 원죄의 짐을 영원히 어깨에 짊어져야 할 것입니다.
1800년대 초반, 앤드류 잭슨은 탈라푸사강에서 아무 저항도 못하는 크리크족 여자와 아이들 만여 명을 무차별 학살했습니다. 여자와 아이들의 시체가 피로 새빨갛게 물든 강물에 둥둥 떠내려갔습니다. <호스슈밴드(Horseshoe Bend) 전투>로 알려진 이 학살로 이름을 떨친 앤드류 잭슨은 오히려 미국의 대추장(7대 대통령)이 되었죠. 그리고 1830년, 대통령으로 <인디언 이주법>을 통과시키고 원주민들이 살던 곳에서 수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미시시피강 서쪽으로 강제이주를 시킵니다. 이 이주 과정에서 수만 명의 체로키족, 세미놀족 등 원주민이 병과 굶주림으로 죽어갔습니다. 이 길을 체로키족의 언어로 nvnadaulatsvyi(우리가 울었던 길), 즉 <눈물의 길(Trail of Tears)>이라고 합니다.
1864년, 존 M 치빙턴 대령이 이끄는 콜로라도 민간기병대는 모래샛강(Sand Creek)에서 이미 항복하여 평화교섭을 진행하고 있던 샤이엔족을 완전히 전멸시켰습니다. 이때 학살당한 사람들의 삼 분의 이는 비무장 여자와 아이들이었습니다. 모래샛강의 하얀 모래가 이들이 흘린 피로 빨갛게 물들었습니다. 당시 미국의 한 언론이 <샤이엔족의 머리 가죽이 이집트의 두꺼비처럼 두껍게 쌓여 있다>고 쓴 잔혹한 학살이었습니다. 이를 <샌드크리크 학살(Sand Creek massacre)>이라고 합니다.
얼굴색이 흰 자들은 오직 얼굴색이 붉은 사람들을 죽이기 위해 당시 유럽 대륙에 만연했던 천연두, 콜레라, 홍역 등 전염병을 의도적으로 퍼뜨렸습니다. 그들은 당시 유럽의 전염병 환자들이 덮고 있던 담요를 일부러 가져와 원주민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동안 한 번도 세균에 감염된 적이 없었던 청정대륙을 전염병이 휩쓸었습니다. 그때까지 이들 병원체에 대한 면역체계가 전혀 갖추어지지 않았던 원주민들은 속수무책 이들 전염병에 쓰러져갔습니다.
1600년대 초반부터 만연하기 시작한 전염병으로 인해 1492년 콜럼버스가 온 이후 천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던 원주민들은 1900년에 불과 10% 정도만 살아남았습니다. 학살당한 숫자보다 전염병에 희생된 숫자가 훨씬 많았습니다. 원주민들은 이 보이지 않는 살인자를 유령(귀신)이라 했습니다.
얼굴색이 흰 사람들은 원주민들을 강제로 이주시켜 그들을 보호한다는 구실로 보호구역을 설정하여 그 안에 가두었습니다. 소위 말하는 <인디언 보호구역>입니다. 이곳에 갇혀 자유를 박탈당하고 새로운 백인문명에 길들여진 원주민들은 대부분 마약과 알코올에 중독되어 자살하거나 백인들이 퍼뜨린 성병(매독)이나 전염병으로 죽어갔습니다. 보호구역은 <보호>라는 그 이름과는 달리 원주민들의 자유로운 영혼을 박탈해 버린 짐승우리였습니다. 보호구역에 갇혀 살아간 원주민들은 현재 세계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은 불행한 종족이 되고 말았습니다.
얼굴색이 흰 자들이 뽑은 워싱턴의 대추장 대통령이여!
당신은 탈라푸사강의 붉은 물결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들의 헐떡이는 숨소리를 기억해야 합니다.
당신은 눈물의 길에서 죽어간 원혼들의
안식과 평화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들이 고난의 길 위에서 죽어가며 흘린 눈물처럼
당신의 눈물로 용서를 구할 수는 없는가요.
당신은 모래샛강의 순결하고 하얀 모래가
왜 새빨갛게 물들었는지 그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당신은 얼굴색이 흰 자들이 가져온 보이지 않는 유령에게 죽어간
천만 명이 넘는 얼굴 붉은 사람들의 원혼들에게
정녕 단 한 번만이라도 고개 숙여 참회할 수 없는가요.
당신들이 만든 짐승우리에 갇혀 스스로 생을 마감한
얼굴색이 붉은 사람들의 진정한 자유를 위해
단 한 번이라도 무릎 꿇고 기도할 순 없는가요.
콜럼버스가 신대륙에 처음 도착한 1492년부터 시작하여 1900년대까지 무려 4세기에 걸쳐 얼굴색이 붉은 사람들에 대한 얼굴색이 흰 사람들의 박해는 계속되었습니다. 박해의 수단으로 총과 대포를 동원한 살육(전쟁), 전염병, 개종을 거부하는 원주민 살해, 합법을 가장한 입법 등 모든 수단이 동원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일부 백인들의 유색인종에 대한 뿌리 깊은 증오심과 백인우월주의는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콜럼버스는 만년에 스페인에서 쫓겨나 이국에서 비참한 죽음을 맞았습니다. 그 때문에 그는 죽어서도 스페인 땅을 밟지 않겠다고 유언했습니다. 지금 스페인의 세비야 대성당에 있는 콜럼버스의 무덤은 공중에 떠 있습니다. 스페인의 옛 왕국 레온, 카스티야, 나바라, 아라곤의 국왕 네 명이 콜럼버스의 관을 어깨에 짊어지고 있는 지상 무덤 형태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신대륙을 발견한 위대한 인간에 대한 존경과 감사의 표시로 그의 유언에 따라 네 명의 왕이 그 관을 떠받들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늘의 뜻도 과연 그럴까요.
스페인 세비야 대성당에 전시된
공중에 떠 있는 무덤을 보라.
일생을 누런 똥의 악취 속에서 살았던
얼굴색이 흰 자들의 작은 추장 하나가
그 무덤 위 녹슨 황금의 관 속에 누워있다.
하늘의 문에도 이르지 못하고
대지의 품에도 안기지 못하고
유령처럼 경계의 하늘을 떠도는
콜럼버스의 영혼이 그 안에 갇혀 있다.
얼굴색이 흰 자들의 대추장 스페인 국왕 넷이
지금도 그 관을 원죄처럼 어깨에 짊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