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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묘해 Oct 17. 2022

버티는 삶에서 버팀목이 되는 삶으로

2022년도의 마지막 연휴 중 하루인 10월 8일, 부산에 갔다. 9월부터 세워둔 계획을 실행하였다.

기차 시간에 늦을세라 아침부터 부지런을 떨었다. 어차피 혼자 하는 여행이라 딱히 약속도 없는데 무식할 정도로 계획적인 성격 탓에 계획대로 여행을 진행하고자 기차 시간 변경 따윈 없었다.

이번 여행에서는 어떤 점을 느끼고 생각하게 될지 잔뜩 기대를 안고 요시모토 바나나 책 한 권과 아이패드 하나를 들고 부산 여행길에 올랐다.




'광안리... 광안리... 내 사랑 광안대교'

아... 푸르른 부산 바다. 변함없는 광안대교... 그 광활함 앞에 또 눈시울이 붉어졌다. 왜 광안리에만 오면 그리고 광안대교만 보면 눈물이 날까? 이번에는 이유를 찾을 수 있을까 기대를 했는데 여전히 찾지 못한 채 멍하게 바다를 보며 또 눈물지었다. 아마도 너무나 사랑해서 너무나 그리워해서였을지도 모르겠다 생각을 하면서 '정말 너를 보고 살아야겠다, 나는'을 마음속으로 또 한 번 생각하였다.


광안대교가 가장 잘 보이는 2층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좋아하는 음악을 들었는데,


행복하였다. 무척이나...

겁이 날 정도로 행복하였다.

토요일이라 사람이 많았지만 아무도 없는 것처럼 나 혼자만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행복하였다. 그리고 다른 어떤 불필요한 생각도 걱정거리도 생각나지 않았고 드넓은 바다와 광안대교만 눈에 보였다.




얼마만이었을까?

지난여름 휴가로 부산에 왔을 때 이후로 처음이 아닐까?

몸과 정신이 같은 곳에 있음을 느낀 게 그때 이후로 처음이 아닐까?

그동안은 몸은 직장에 정신은 항상 다른 곳에 있었다. 일을 하는데도 머릿속에는 또 다른 일과 또 다른 걱정거리와 또 다른 염원들이 항상 자리 잡고 있었다. 언제나 다른 생각일 뿐 지금 내가 있는 곳에 정신이 함께 인 적이 없었다. 일상에서는 항상 그랬다.


여행을 하는 이유. 없는 시간을 쪼개어가면서 여행을 하는 이유. 사람 붐빔과 길 막힘을 감내하며 여행길에 나서는 이유는 몸과 정신의 하나 됨이 완성되는 순간, 모든 근심과 걱정을 뒤로하고 나를 숨 쉬게 하는 그 순간이 여행의 시간이기 때문이 아닐까?


거의 백여 일 만이다. 이 충만한 느낌을 다시 받는 것이... 다시 숨 쉬고 있음을 느끼는 것이...

그래서였을까? 그래서 나는 이곳에만 오면 숨을 쉬면서 눈물을 흘리는 걸까?


조금의 삶의 여유를 느끼면서 또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면서 내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나도 명확해졌다. 숫자로 표현할 수 있을 만큼 아주 구체적으로 좋아하고 원하는 것을 말할 수 있다. 기쁘면서도 가슴 한 편으로 먹먹해졌다. 왜 지금에서야 알게 되었을까, 왜 이제야 나를 깊숙이 들여다보게 되었을까.


그 시절... 아주 젊고 초록이었던 시절에 왜 몰랐을까, 그 시절에 왜 깊고 처절하게 고민하지 않았을까, 왜 당시 상황에만 내몰려 단편적인 해결책만 찾고 그 시간에 마땅히 했어야 할 고민들과 그리고 그 시간의 소중함을 몰랐을까, 그때에 했어야 했던 고민들을 왜 이제야 하고 진정한 나를 찾게 되었을까. 차라리 모르고 그냥 조용히 살지...


푸른 바다를 보며 이러한 생각에 미치자 가슴이 미친 듯이 갑갑하였고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을 지나옴에 허망하기까지 하였다. 분명 행복하기 그지없어야 할 여행길인데 몸과 정신이 하나인 상태인데 놓쳐버린 배를 쳐다보는 것처럼 허무할까. 여기가 광안리이기 때문에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된 걸까?


친구에게 얘기했다. 그랬더니 친구의 말이...

그 시절에 당시 상황에 내몰려 단편적인 해결책만으로 처절하게 치열하게 버텨온 나의 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 조금의 여유 앞에서도 다른 것들을 보고 느끼고 좋아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 버텨온 시간들이 존재했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묘해가 있다고 하였다. 그 시간들이 버팀목이 되어 내가 진정 좋아하고 하고 싶은 것들을 이제야 찾을 수 있었던 것이라 하였고 지금보다 삶의 여유가 조금 더 생기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향해 더 힘차게 나아갈 것이라 하였다. 지금은 단지 '다듬어지지 않은 진주'와 같다고 하였다.


가슴이 또다시 먹먹해졌다. 그때에 하지 못했던 것들에 억울해하고 허망함까지 느낀 게 조금은 부끄러워졌고 친구의 말은 아주 큰 울림이 되어 가슴 깊숙이 박혔다. 내가 버텨내 온 수만 겹의 시간들, 초록이던 그 시절에 내가 선택할 수 없이 받아들여야만 했던 상황들, 그런 상황에서도 삶을 이어나가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치열하게 버텨내 온 나의 노력들.

이는 억울해할 것도 허망해할 것도 아니었다.

이는 '나'였다.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잘 버텨낸 전쟁 같은 시간들이었던 거였다.

이 버텨냄을 버팀목으로 삼고 이제는 드디어 진정 내가 좋아하고 원하는 것들을 향해 또다시 힘차게 나아가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나아가기만 하면 되는 시간이 이제는 된 것이었다.


책 한 글자도 읽지 못하고 아이패드는 전원도 켜지 못했지만 그 못지않은 아주 큰 울림과 깨달음을 얻는 순간이었다. 역시 광안리였다.

고통은 수시로 사람들이 사는 장소와 연관되고 그래서 그들은 여행의 필요성을 느끼는데,
그것은 행복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슬픔을 몽땅 흡수한 것처럼 보이는 물건들로부터 달아나기 위해서이다.
 -데이비드 실즈-

광안리 맛집 블로그에서 본 돈가스를 꼭 먹겠다고 다짐을 하였고 식당에 들어가서는 일 초의 망설임도 없이 경양식 돈가스를 주문하였는데 다 먹지도 못할 큰 사이즈에 웃음이 절로 났다.

그런데 세상에나... 이렇게 느끼한 돈가스는 처음이었다. 치즈돈가스도 아닌데 말이다. 돈가스 딱 세 조각을 먹고 피클을 몽땅 털어 넣었고 힘을 내어 다시 세 조각을 더 먹고 청포도 에이드를 원샷하였다.

큰 울림을 준 여행은 맛집 블로그를 다 믿지는 말자, 내 입에는 안 맞을 수도 있다는 또 다른 울림을 주었다.


내 사랑 광안리

글. 그림. 사진 by 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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