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고? 아니, ‘파도’를 탈 기회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
직장 생활을 하며 이보다 더 절망적인 속담이 있을까요? 부서 간의 해묵은 권력 다툼이나 상사들의 이권 싸움이 벌어지면, 실무자들은 본능적으로 움츠려 들 수 밖엔 없습니다. “절대 끼어들지 마라”, “가만히 있어야 중간이라도 간다”등의 조언은 조직 내에서 무력감을 합리화하는 위험한 생존 전략이 되곤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생존 모드’로만 일관하며 폭풍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사이, 조직은 정체되고 실무자는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단 한 번의 결정적 기회를 놓치고 맙니다.
인사부장으로서 수많은 조직의 풍파를 겪으며 깨달은 사실이 있습니다. 고래들의 싸움은 단순한 갈등이 아니라, 거대한 에너지의 충돌입니다. 그 소용돌이는 겉보기에 매우 위험해 보이지만, 역설적으로 정체된 조직에 가장 큰 ‘변화의 흐름’을 만들어냅니다.
“고래들이 싸울 때, 영리한 새우는 그 물결을 타고 먼바다로 나갈 수 있다. 등이 터지는 게 아니라, 판을 흔드는 ‘키맨’이 될 기회다.”
등이 터질까 봐 웅크려 숨어만 있다면 평생 작은 새우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하지만 고래들이 서로를 무너뜨리지 못하고 팽팽하게 맞설 때, 승패를 결정짓는 것은 결국 그 사이에 낀 ‘새우’의 선택과 전략입니다. 고래 싸움이야말로 새우가 조직의 핵심 전략가(Key-man)로 비상할 수 있는 가장 다이내믹한 무대입니다.
몇 년 전, 우리 회사 영업본부장과 생산본부장이 신제품 출시 시기를 두고 정면으로 충돌한 적이 있었습니다. 회의실 문밖까지 고성이 새어 나올 정도로 험악했죠.
“아니,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지! 당장 다음 주부터 물량 내놓으란 말입니다!”
영업본부장이 책상을 쾅쾅 치며 몰아세우자, 생산본부장이 얼굴이 벌게져서 배수진을 쳤습니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못 내보냅니다! 품질 안정화 안 된 물건 팔아서 뒷감당 누가 할 거야? 어차피 사고 터지면 생산 탓할 거 아니요!”
그 사이에서 실무를 맡은 마케팅팀 정 대리는 말 그대로 ‘사망 직전’이었습니다. 오전엔 영업본부장에게 불려 가 “마케팅이 압박을 안 하니 생산이 노는 거 아냐!”라며 탈탈 털리고, 오후엔 생산본부장에게 “시장 상황도 모르는 마케팅이 사람 잡네!”라는 핀잔을 들어야 했으니까요. 동료들은 “정 대리, 조만간 사표 쓰는 거 아냐?”라며 안쓰러워했습니다.
하지만 정 대리는 숨지 않았습니다. 그는 며칠 밤을 새워 두 본부장이 싸우느라 놓치고 있는 현장의 데이터와 경쟁사 동향을 샅샅이 뒤졌습니다. 그리고 운명의 주간 회의 날, 정 대리가 조용히 손을 들었습니다.
“본부장님들, 잠시만 제 화면 좀 봐주시겠습니까?”
순간 회의실에 정적이 흘렀습니다. 정 대리는 주저 없이 태블릿을 연결하며 말을 이어갔습니다.
“지금 두 분이 ‘언제 낼까’를 두고 싸우시는 동안, 경쟁사가 어제 유사 제품 ‘B버전’을 기습 출시했습니다. 지금 싸움의 포인트는 단순히 ‘날짜’가 아닙니다. 경쟁사가 놓친 핵심 기능 ‘C’만 보강해서 2주 뒤에 예약 판매를 시작하면, 생산의 품질 자존심과 영업의 시장 선점 명분을 모두 지킬 수 있습니다. 여기 보강 시안까지 준비했습니다.”
그제야 두 고래는 서로 힐끗 눈치를 보더니, 헛기침을 하며 정 대리의 안을 받아들였습니다.
“거봐, 내가 마케팅 전략이 중요하다고 했지! 정 대리, 추진해 봐.”
“음, 2주면 품질 잡을 수 있겠네. 정 대리, 센스 있어..!”
그날 이후 정 대리는 ‘등 터진 새우’가 아니라 ‘고래를 조련하는 새우’로 불렸습니다. 프로젝트는 대성공이었고, 그는 그해 ‘특진’이라는 파도를 탔습니다. 회식 자리에서 정 대리가 남긴 농담은 아직도 회자됩니다.
“본부장님들, 앞으로도 가끔 싸워주십시오. 그래야 제가 또 파도를 타지 않겠습니까?”
50대 인사부장이 보기에,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말은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비겁한 변명입니다. 만약 누군가의 등이 터졌다면, 그건 조직이 그에게 ‘파도 타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았거나, 본인이 파도를 볼 줄 몰랐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어쩔 수 없는 희생양’으로 정의하는 순간, 리더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끝납니다. 조직의 판도를 바꾸는 건 항상 큰 소리로 싸우는 고래들이 아니라, 그 싸움의 물결을 이용해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배를 띄우는 ‘깨어 있는 새우’였습니다.
지금 당신의 조직에 거친 풍랑이 일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새우의 등을 걱정하기 전에 스스로에게 물으십시오.
“나는 지금 등 터지는 새우입니까, 아니면 파도를 즐기는 서퍼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