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말은 '상호작용', 말투로 바뀐 조직문화

by 심 홍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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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어린 시절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이 속담은 우리에게 늘 '개인의 수양'을 요구합니다. 내가 먼저 선의를 베풀고 예의를 갖춰야 상대도 그에 걸맞은 반응을 보인다는 지극히 도덕적이고 인과적인 가르침이죠. 특히 조직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이 속담은 주로 리더들이 후배나 동료의 태도를 교정하는 훈육의 도구로 쓰이곤 합니다.


"김 대리, 말을 좀 부드럽게 해. 싸우는 줄 알겠어."
"목소리 좀 낮추세요. 토론은 상호 소통입니다."

하지만 수십 년간 인사부장으로 살며 수많은 조직의 갈등과 화해를 지켜본 인사부장은 이제 이 속담을 거꾸로 읽으려 합니다.
“상대가 먼저 곱게 말해야, 나도 비로소 고운 말을 내뱉을 수 있다.”

세상에는 아무리 곱게 말해도 늘 퉁명스럽게 반응하는 이들이 존재하며, 내 의도와 상관없이 상대의 말투 하나에 내 말의 톤이 즉각적으로 변하기도 하고, 비아냥 한마디에 내 평정심이 무너지는 순간도 부지기수입니다.

말투와 언어는 전염성이 강합니다. 따뜻한 온기가 흐르는 공간에 있으면 나도 모르게 말끝이 둥글어지지만, 냉소와 비아냥이 공기처럼 깔린 조직에 있으면 아무리 조심해도 내 말은 점점 각지고 날카로워집니다. 결국 말의 온도란 내 안에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맺고 있는 관계와 환경 속에서 함께 빚어지는 ‘문화의 산물’이기 때문입니다.


몇 년 전, 조직 문화 진단에서 유독 최악의 점수를 받은 물류지원 팀이 있었습니다. 업무 성과는 좋았지만, 팀원들의 피드백은 처참했습니다. "회의실 가는 게 도살장 끌려가는 것 같다", "숨이 막혀 아무 말도 못 하겠다"는 비명이 가득했죠. 직접 참관한 그들의 회의는 예상보다 더 참혹했습니다. 보고가 끝나기 무섭게 날 선 공격들이 날아다녔습니다.


"아니 그래서, 결론이 뭐야? 뭔 서론이 길어.”
"그건 3년 전에도 다 해봤던 거 아닙니까? 왜 자꾸 한 말 또 하고... 뭐지?"
"이게 현실성이 있어? 현장감이 없으니 현실성이 없지."

팀원들은 누군가 입을 열면 어디서 공격이 들어올지 계산하느라 눈동자를 굴리기 바빴고, 의견을 내기보다 방어막을 치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팀장 역시 미간을 찌푸린 채 펜을 돌리며 직설적인 비난을 서슴지 않았죠. 어느 날, 팀장이 김 과장을 따로 불러 이렇게 말했습니다.

"김 과장, 자네는 그 말투가 문제야. 너무 공격적이란 말이야. 그렇게 해서 직원들 다독여 일할 수 있겠어? 나이가 몇인데 이런 것까지 내가 일일이 지적해 줘야 해? 팀 분위기 좀 생각해. 머리는 생각하라고 있는 거지, 스타일 내라고 있는 게 아니야. 알았어?"

팀장의 지적에 김 과장은 잠시 침묵을 지켰습니다. 주먹을 꽉 쥐었다 펴기를 반복하던 그가 작심한 듯 팀장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입을 열었습니다.


"부장님... 솔직히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제 말투가 날카로워진 건, 부장님의 화법을 그대로 복사했기 때문입니다."
"뭐... 뭐?"
"회의 때마다 '왜 이거밖에 못 하냐', '틀려먹었다'는 말을 듣다 보니 저도 모르게 후배들에게 똑같이 쏘아붙이고 있더라고요. 생존 본능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안 하면 제가 무능해 보일까 봐요.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의 취지는 이해했지만 듣는 내내 모멸감이 들었습니다. 왜 항상 저만 감정의 쓰레기통이 되어 받아줘야 합니까?"

충격에 빠진 팀장은 그날 이후 자신의 말버릇부터 뜯어고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어색했겠지만, 그는 대화의 '칼날'을 무디게 만드는 연습을 반복했습니다.


"그거 틀렸어, 아니라니까!" 대신 "이 부분은 흥미롭네요. 다른 관점에서 볼 여지도 있을까요?"
"아니, 왜 이렇게 했어?" 대신 "이렇게 생각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제가 놓친 게 있을 것 같은데 얘기해 줄래요?"


한동안 부서원들은 당황했지만, 진심은 결국 통하는 법입니다. 공격받을 준비를 하던 팀원들의 어깨에서 서서히 힘이 빠지기 시작했고, 회의실에는 비난 대신 '질문'이 오가며 간간이 웃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안 됩니다"라는 거절 대신 "어떻게 하면 될까요?"라는 고민이 싹텄습니다. 몇 달 뒤, 그 팀의 보고서는 내용뿐만 아니라 그 문장들 사이에 흐르는 '결' 자체가 달라져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저는 확신했습니다. 말투는 한 개인의 우연한 성격이 아니라, 그 조직이 오랫동안 허용하고 권장해 온 문화의 결실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이제 오십 대 인사부장에게 이 속담은 이렇게 다시 쓰입니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그러나 더 중요한 건, 어떤 언어를 쓰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있는가 이다.”


좋은 언어 습관을 지닌 동료들과 함께할 때 나의 말은 자연스레 부드러워집니다. 비난 대신 질문이 오가는 환경에서 팀의 언어는 비로소 창의적인 결을 갖게 됩니다. 말은 한 개인의 인격을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조직이 어떤 품격을 지향하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적나라한 문화의 산물입니다. 누군가의 말투를 지적하고 고치려 들기 전에 그가 마음 놓고 부드럽게 말할 수 있는 ‘언어의 토양’이 마련되어 있는지부터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당신의 조직은 지금 서로의 날개를 꺾는 말을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비상을 돕는 말을 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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