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의 마지막 말씀
어느덧 3년이 훌쩍 지났다. 언제나 강철처럼 굳건한 모습이셨던 할아버지는 무척이나 야윈 채 간신히 양손을 크게 흔들며 마지막 안녕을 건네셨다. 당신을 둘러싸고 있던 네 명의 자식들에게도 아무 말씀 않으셨던 그는, 하나뿐인 손자에게 기꺼이 따스한 시선과 함께 “큰 사람이 되어라.” 말씀하셨다. 고작 그 일곱 자에 꾹 눌러 담은 삶의 지층들을 감히 헤아릴 수 없었던 손자는 그저 할아버지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 의미를 짐작조차 할 수 없었기에, 감히 그리하겠다고 입 밖으로 대답할 수 없었다.
이번 추석에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할아버지의 산소에 찾아가 안부를 전했다. 그 앞에 설 때면 늘 80년 남짓 할아버지의 삶을 반추해 본다. 7남매 중 장남이셨던 할아버지는, 그의 자식뿐만 아니라 모든 형제의 삶을 도맡아 책임져야 했다.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안 해본 일이 없으셨다고. 얼마나 지독하게 일을 하셨는지, 동네에서는 할아버지를 “업돌이 삼촌”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요즘 말로 표현하자면 워커홀릭쯤 되려나. 할아버지의 장남이었던 나의 아버지 또한 초등학교 시절부터 자전거를 타며 우유 배달을 하셨다고 한다. 지나가다 친구들이 일하고 있는 자신을 보진 않을지 걱정하며 배달을 하셨더란다.
그 탓인지, 나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애정표현에 무척이나 서툴렀다. 하루하루 대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사람에게 부모와 자식 간의 유대를 형성하는 시간은 그저 사치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런 할아버지가 명절 연휴 때면 하루는 꼭 나를 당신의 오토바이 앞에 태우고 그의 ‘나와바리’로 향했다. 어린 시절의 나는 자동차를 무척이나 좋아해서, 말을 떼자마자 지나가던 자동차 이름을 줄줄 외웠다고 한다. 쥐콩만한 손자의 자동차 사랑이 얼마나 신기하셨을까. 그는 동네 할아버지들이 잔뜩 모인 마을회관 앞 가로수 아래 나를 앉혀놓고 손자의 “자동차 이름 대기”를 뽐내셨다고 한다.
유년시절 내 기억 속 강렬하게 남아있는 장면도 있다. 오토바이를 타고 제법 산길을 올라가더니 어느새 작은 개울에 이르렀다. 큰 바위를 의자 삼아 두 발을 담그고 있던 내게, 할아버지는 나뭇가지를 꺾어 만든 작은 물레방아를 건네주셨다. 좁은 물길의 두 돌멩이 사이에 얹어놓으니 흐르는 물을 따라 데굴데굴 굴러가는 물레방아가 어찌나 신기하던지. 30년이 흐르도록 그날의 충격이 여전하다.
한참이 지나서야 알았다. 할아버지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애정표현이 바로 그 물레방아였음을.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어떻게 삶을 대했는지 보여주는 몇 안 되는 흔적이자 작은 조각이었음을.
그저 일 뿐이었던, 일 밖에 몰랐던, 일 말고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던 할아버지에게 “큰 사람”이란 어떤 의미이셨을까. 삶의 끝을 느끼며 그간 써 내려갔던 책장을 하나씩 덮어가는 할아버지가 느끼셨을 공허함은 무엇이었을까.
장사 체질을 타고나셨던 할아버지는 그 육체만큼이나 강한 고집과 정신력을 가지고 계셨다. 그렇기에 지치지 않고 모든 가족을 부양할 수 있으셨을 것이다. 한편 그 강인함은 사랑을 비껴가게도 하였다. 사랑에 서툴러 홀로 외로우셨다. 불같이 엄했던 아버지를 기억하는 자식들은, 비로소 그들이 아버지의 나이가 되어 그를 존경할 수는 있었지만 다정하게 보듬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진정 삶의 끝에 다다랐을 때에 조차 자식에게 사랑을 건넬 줄도, 표현받을 수도 없었음이 허탈하지는 않으셨을까. 사무치게 외롭지는 않으셨을까.
할아버지 산소에 가기 전날 밤, 온 가족이 다 같이 누워 대화를 나누던 중 문득 들었던 생각을 전했다. “엄마랑 아빠랑 참 다른 사람인데, 둘이 엄청 닮은 점이 하나 있어. 엄마 아빠는 참 성실한 사람들이야. 그런 환경에서 자란 덕분에 내가 자연스레 그 장점들을 물려받은 것 같기도 해. 무엇 하나 뛰어나게 잘할 자신은 없어도 매일 꾸준히 할 자신은 있거든.” 한편으로 그 성실함이 할아버지가 전해준 기질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과 함께, 할아버지는 생전 가족들과 이런 대화를 나누지 못하셨겠다는 묘한 감정이 들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레 변화하겠지만, 지금의 내가 느끼는 “큰 사람”이란 성실하면서 다정한 사람이다. 본디 인간은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크게 느끼는 결핍의 본능이 있다. 내가 느끼는 일억 원의 가치와 재벌이 느끼는 그 가치가 다르듯. 그런 의미에서 할아버지가 느끼는 큰 사람이란 다정한 사람이 아닐까 감히 추측해 본다. 하루하루 살아가기에 급급한 날들 속에도 여유를 찾고 주변 사랑하는 이들에게 따스함을 전달해 줄 수 있는 사람.
국내든 해외든 출장을 가서도 출근하기 전 새벽에 꼭 운동을 하며 루틴을 유지하려고 한다. 지난여름 매주 이어지던 서울 출장길, 숙소 근처의 헬스장에서 운동을 마치고 돌아가던 길에 있던 어느 초등학교 입구에서 할아버지를 만났다. 아마도 그 학교의 교훈이었을 “큰 사람이 되자.”라는 문구를 새겨둔 큰 비석을 보며 한참을 우두커니 서있었다. 그리고 다짐했다. "할아버지의 물레방아 같은 사람이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