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궁금해했던 삶의 방법을, 그 시절의 나로부터 찾다.
무더위가 한풀 꺾이며 아침저녁으로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이 문득 가을이 다가왔음을 알려준다.
지난주에도 또 오늘도, 유난히 가을을 많이 타는 내가 감상에 젖는 것을 돕기라도 하듯 주말이면 촉촉하게 비가 내린다. 지난 주말엔 종종 방문하는 청음카페의 오픈 시간에 맞추어 문을 열자마자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마스크'를 주제로 글을 써보기러 했다. 핵심 메세지와 그에 연관되는 키워드를 기반으로 글을 풀어내는 평소의 방식과 달리, 아무런 맥락 없이 특정 단어를 고르고 이에 맞춰 내 생각을 풀어내는 방식 또한 제법 즐거웠다. 그리고 오늘 역시,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내리는 비를 반기며 집 근처 카페로 향했다.
유독 삶이 힘들거나 무료하다고 느껴질 때면, 장롱 깊은 곳 박스에 담아 둔 예전 일기장을 펼쳐보곤 한다. 그중에서도 군생활할 때의 나를 자주 들여다본다. '제대하고 싶다.', '집에 가고 싶다.' 다음으로 빈번히 적혀있는 문구는 '얼른 서른 살이 되고 싶다'였다. 그 시절의 나는, 무척이나 서른의 나를 동경했다.
20대의 나는 나 자신을 이해하는 것을 참 힘들어했다. 어쩌면 내 모습이 그다지 맘에 들지 않아 받아들이기 싫었는지도 모르겠다. 섬세하고 사려 깊지만 예민하고 까탈스러운 아이. 고집이 세다 느껴질 만큼 주관이 뚜렷한 아이였던 나는, 열 번의 칭찬보다 한 번의 잔소리를 마음속 어딘가에 각인하곤 했다.
내 존재를 느끼고자 주변으로부터 필요한 사람이 되려고 부단히 애쓰기도 했다. 굳이 나서서 친구들의 안부를 물어가며 모임을 주선하기도 하고, 연애할 때면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하여 상대방으로 하여금 '좋은 사람'이 되고자 했다. 공허하게 느껴지는 내 안을 그저 채우려고만 하니 그 마음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늘 어느새 지쳐 퍼지기 일쑤였고, 그런 무기력한 내 모습이 또 싫었다.
그래서 서른이 되고 싶었다. 어릴 적 보던 서른 살의 삼촌들은 제법 어른 같아 보였는지, 그때의 나는 무언가 달라져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세상과 주변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져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그 막연한 기대감은 스물일곱, 스물여덟, 서른이 가까워질수록 '불안'으로 변질되어 나를 더욱 괴롭게 만들었다. 특히 비가 내리는 날이면 그 우중충함이 내 속까지 전달되었다. 때문에 비를 그리 반기지 않았다. 비 오는 날을 싫어했다.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면, 행동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조금 더 용기 내보았다면 어땠을까', '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 '더 넓은 마음을 가지고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흐린 하늘에 적혀있던 나의 내면은 후회와 번뇌, 갈증, 불안이었다.
그 결과 나는 격동의 이십춘기를 보냈다. 내 안에서는 끊임없이 싸움이 일어나고, 세상과 내 자신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불안으로 점철되었다. 부모님 왈, “학창 시절 흔한 사춘기를 겪지 않더니 그 이상의 방황을 20대 후반이 되어서야 하더라“며, 가장 키우기 힘들었던 시절이랜다. 불안을 이겨내기 위해 또 정체성을 찾기 위해 온갖 발악을 했던 시간이었다. 워커홀릭이 되어 회사에서는 여러 상도 받고, 대학원에 진학하여 학위도 받았다. 시간을 쪼개어 밤낮으로 운동하며 보기 좋은 몸을 만들기도 했다. 허나, 방황을 이겨내기 위한 노력은 외려 더 큰 방황을 불러왔다. 내가 얻고자 하는 질문의 답은 더더욱이 알 수 없었다. 악순환이 가속되었다.
그때부터였다. 일종의 포기하는 마음으로, 더 이상 내 행동에 의미를 두지 않기로 했다. 그저, 또 그냥 보내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물론 그 마음가짐에 자의는 하나도 없었다. 다른 방도가 없었기에, 노력해도 답을 알 수 없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묵묵히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화난 채, 슬픈 채, 힘든 채 또 가끔은 즐겁기도 한 날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제야, 아주 천천히 또 조금씩 힘이 빠졌다. 내 속의 어떤 것들이 비워져 갔다. 몇 년이나 지났을까. 어느샌가 비로소 보였다. 정작 내가 나 자신을 좋은 사람으로 바라볼 줄 아는 다정함이 없었다는 것을. 그 결핍을 '사회가 만든 이중잣대 속 타인의 인정이 가져다주는 우월감'으로 채우려고 했다는 것을.
30대의 절반에 이른 지금에서야, 일기장 속의 나를 따스히 안아줄 용기가 생겼다. 그저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에 마냥 타인에게만 다정했던 그가 안쓰럽기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질은 잃지 않은 채 잘 견뎌주어 대견하기도 하다.
글을 쓰다 보니 어느새 하늘이 맑게 개었다. 통창 밖 보이는 작은 호수와 나무들, 따스한 페퍼민트 차 한 잔, 지금 이 시간에 읽기 위해 애써 아껴둔 에세이 한 권, 이어폰 속 흘러나오는 잔잔한 재즈 선율을 소중히 또 세심히 느낀다. 그토록 동경했던 '어른'이 되기 위한 방법은 '나를 다정하게 대함으로써 세상에, 매사에 진심으로 임하는 것'임을 오감으로 느낀다. 카페 통창 유리 속 비치는 내 모습이 조금은 내가 동경했던 그 어른인 것 같기도 하다.
이윽고, 나를 좌절하게 했던 그날의 비를 사랑한다.
그저 좋은 사람이고 싶었던, 뭐든 더 잘하고 싶었던 내 지난날들을 사랑한다.
흐린 뒤 맑음이 있음을 알기에, 흐림이 있기에 맑음도 있기에,
무엇보다 흐림과 맑음 모두 저마다의 '필요'가 있음을 알기에.
오늘의 비를 사랑한다.
한 주 간 회사에서 정신없이 일하며 받은 스트레스를 씻겨내 주는 것만 같은 이 비를 사랑한다.
그렇게 세상을 씻어내고서 가져다주는 청명함과 개운함을 사랑한다.
그저 먼지일 줄만 알았던 스트레스를 깨끗이 씻어내고 보니,
세상이 나로 하여금 '쓰임'을 알려주는 소명감을 전해주는 방법이었다는 것을 비로소 느낀다.
그토록 부르짖던 '행복'은 언제나 잠깐 스쳐 지나가는 것임을,
내가 원했던 안정은 언제나 내 옆에 공존하고 있었다는 것을,
'편암함'과 '감사함'이 그를 느끼는 방법이라는 것을,
일기장 속 나와 오늘의 내가 만나, 비 온 뒤 갠 하늘 아래 상냥히 알려주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