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를 타고 하교하는 길은 멀기만 했다. 십리나 되는 길을 달려야 집에 갈 수 있었다. 중간 지점인 언덕배기에 철길이 있었는데, 그곳에 오르면 산들바람이 더위를 잊게 해 주었다. 긴 여정의 오아시스처럼 등하굣길에 위안을 주는 곳이었다.
그날도 하굣길에 철길에서 땀을 식혔다. 기분이 상쾌해진 친구와 나는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깔깔거리며 내 쪽을 보고 있던 친구가 갑자기 외쳤다.
“기차다. 뛰어.”
산모퉁이를 돌아 난 철로라서 멀리서 오는 기차를 못 보는 경우가 많아 특히 조심해야 하는 곳이었다. 땀을 식혀준 바람에 홀려 우리는 경계의 끈을 놓고 있었다. 자전거를 둘러업고 온 힘을 다해 뛰어 내려갔다. 간발의 차라는 말이 맞을까. 하마터면 정말 큰일을 치를 뻔했다.
“야, 니들 뭐야?”
벼락같은 소리가 날아왔다. 성인 남자 두 명이 얼굴을 실룩거리며 우리에게 달려왔다. 기차에서 사람이 뛰어내렸을 리는 없고 도대체 그 사람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어리둥절했다. 다짜고짜 퇴학당하고 싶냐고 소리치는 그들 앞에서 우리는 얼어붙었다. 철길 위에서 노닥거린 것은 명백한 우리의 잘못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퇴학까지 당할 일인 줄 몰랐다.
“저 기차에 누가 타고 있는지 알아? 사고라도 났으면 니들 죽는 건 아무것도 아니야. 난리 난다고.”
우리가 죽는 것보다 더 큰 난리가 뭘까. 우리 때문에 기차가 전복이라도 돼서 더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된다는 걸까. 저 기차에는 누가 타고 있을까. 우리의 죽음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이 아저씨들은 도대체 누구일까.
갑자기 내 존재가 너무 시시하게 느껴졌다. 호통치는 아저씨들에게서 어떻게 벗어났는지 모르겠다. 당장이라도 퇴학을 당할까 봐 집에 와서도 내내 조마조마했다. 저녁밥상 앞에서 맛을 모르고 젓가락질을 하고 있는데 뉴스가 들려왔다. 이리역, 기차, 대통령, 귀경길….
그 기차에 대통령이 타고 있었다. 나는 대통령 전용 기차가 있는 줄 몰랐다. 대통령이 탄 기차 앞에 서있으면 퇴학 감이라는 것을, 그 기차에 치인 사람의 죽음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나는 몰랐다. 대통령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역사 시간에 배운 왕 같았다.
대학 새내기가 되어 신입생 환영회에서 무성 연극 변사(辯士) 역할을 맡았다. 그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며 한 선배가 나를 찾아왔다. 같이 역사공부를 해보지 않겠느냐면서 나를 한 모임에 초대했다. 그 동아리 모집 공고가 교내 곳곳에 붙어 있어서 나도 관심을 갖고 있던 차였다. 한번 가보자는 생각에 따라나섰다. 그곳에서 5·18 민주화 운동에 대해 처음으로 들었다. 그리고 보았다, 믿기 어려운 그날의 참상을.
내가 왕 같다고 생각했던 그 대통령이 진짜 미친 왕처럼 한 도시를 짓밟아 놓았다는 사실은 내 피를 뜨겁게 했다. 무엇보다도 중고등학교 내내 배운 역사책 어디에도 그런 내용이 없었다는 것에 배신감이 밀려왔다. 그동안 내가 배운 것들이 과연 제대로 된 것이었는지 의문이 들었다.
나는 심한 혼란에 빠졌다. 내가 아무것도 모른 채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 동안 많은 이들이 민주화를 위해 피 흘리고 있었다. 대학 초년생이 받아들이기엔 버거운 일이었다. 그 선배는 거의 매일 나를 찾아왔다. 민주화 운동에 함께 하자는 선배의 말에 나는 갈피를 잡지 못했다. 내 미래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자식 걱정으로 힘들어하실 부모님 생각에 선뜻 결정할 수가 없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괴로운 시간이 계속되었다.
고향집에 내려갔다. 부모님을 뵈면 어느 쪽으로든 내 마음이 기울 것 같았다. 농부들의 잰걸음이 봄 들판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논으로 향하시는 아버지의 발걸음도 가벼워 보였다. 어머니는 파릇해지는 들판이 좋다며 밭으로 나가셨다. 밭두렁에 쑥이 많으니 캐보라는 어머니의 말에 바구니를 챙겨 들고 따라나섰다. 봄나물 캐는 일에 익숙하지 않은 나는 서툰 손놀림으로 애먼 풀들만 상하게 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무언가를 열심히 심고 계셨다. 앉은걸음으로 한참을 땅만 보고 가시다가 문득 허리를 펴고 내 쪽을 바라보곤 하셨다. 어릴 적 밭일하시는 어머니 옆에서 노는 나를 혹여 다칠까 염려되어 몇 번이고 돌아보시던 어머니가 생각났다. 내가 다치면 부모님의 평화로운 일상도 깨져버릴 것 같았다.
결국 나는 평화로운 일상을 지키기로 했다. 선배와 마주치지 않기 위해 나는 오락실로 몸을 피했다. 강의가 빈 시간엔 여지없이 오락실을 찾았다. 설마 내가 거기에 있을 거라는 생각을 못했는지 선배는 그곳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게 한 학기가 지났다.
여름 방학이 끝난 후 나는 그 선배를 다시 볼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오락실에서 또 한 학기를 보내고 싶진 않았다. 피하지 말고 내 생각을 정확히 전해야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내가 먼저 선배를 찾아가기로 했다.
동아리 방에도 구내식당에도 선배는 보이지 않았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선배는 학교를 그만뒀다고 했다. 졸업반인 선배가 한 학기를 남겨두고 학교를 그만뒀다니 믿기지가 않아서 수소문해봤지만 나는 선배를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다시는 선배를 만나지 못했다.
오랜만에 찾은 학교 앞은 젊은이들로 넘쳤다. 각자의 개성대로 자유분방했다. 교문 앞에 서서 학교 안을 바라보았다. 어디선가 투쟁가가 들려오는 듯했다. 최루탄을 쏘며 괴로워하던 젊은 전경들과 화염병으로 대항하던 학생들이 다 같이 우르르 몰려나오는 것 같았다. 지금의 젊은이들과 그때의 젊은이들이 마주 보고 서있다는 착각이 들었다. 그 어느 중간 즈음에 외딴섬처럼 서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들 앞에 나는 비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