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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할수 Mar 16. 2024

[100-12] 주인공은 작고 작은 강아지야

네 곁에 있어도 될까? 사라 저코비 글 그림

 그림책 '네 곁에 있어도 될까?'는 표지부터 참 따뜻하다. 표지에는 미소 띤 소녀가 두 손으로 강아지 목을 받쳐 들고 강아지를  바라본다. 강아지도 소녀를 빤히 쳐다본다.  강아지와 소녀의 눈길에서 따뜻한 온기가 오가는 게 느껴진다. 이 그림책의 주인공은 작고 작은 강아지다. 이 강아지는 나뭇가지를 좋아해서 늘 나뭇가지를 입에 물고 다닌다. 그리고 소녀를 사랑한다. 그래서 소녀에게 묻는다. "네 곁에 있어도 될까?"라고. 강아지가 한 말은 "내 곁에 있어 줄래?"가 아니고 "네 곁에 있을 께."도 아니다.  "네 곁에 있어도 될까?"란 말은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이 아닐까?


소녀가 흔들리는 종처럼 신이 날 때나 텅 빈 접시처럼 외로울 때도, 눈물을 흘리는 순간에도, 너무너무 기쁠 때도. 같이 차를 타고 멀리 가더라도, 서로 눈에 보이지 않아도, 낯설고 새로운 곳으로 가더라도 말이야. 네가 넓고 푸른 들판이 보고 싶거나 오렌지빛 단풍이 보고 싶거나 해도 언제나 네 곁에 있어도 될까 하고 작은 강아지가 소녀에게 물어. 강아지의 진심이 느껴져.  작은 강아지는 알아. 작은 강아지가 아무리 소녀를 사랑해도 조금씩 멀어질 거란 걸. 그리고 멀어지는데 익숙해질 거란 걸. 소녀의 다른 친구가 찾아와도,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소녀의 방황을 이해할 거라고 작은 강아지는 말해. 저도 그래봤다고. 소녀가 혼자 산책을 가거나 오랜 방황을 하더라도 작은 강아지는 알고 있대. 소녀가 모든 산책과 방황을 끝나면 집에 있는 작은 강아지 자신을  떠올릴 거라고. 작은 강아지가 소녀에게 기다려온 대답은 "내가 언제나 네 곁에 있을 게."다. '내가 언제나 네 곁에 있을 게.'란 글을 읽을 때 울컥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우리는 여행을 떠난다. 방황이라고 해도 좋다.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자신을 찾기 위해서고 방황을 하는 것도 자신을 찾기 위해서다. 소녀를 언제나 사랑하고 기다려주는 작은 강아지는 바로 소녀 자신일 것이다. 우리가 자신을 찾아 방황하다 자기 자신을 찾고 보면 자신이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잖아.


고등학교 때였다. 어느 때는 기분이 좋았다가 어떤 때는 기분이 나빴다. 또 어떤  때는 시무룩해지기도 했다.  어느 순간에 신이 나는가 했는데  우울해지기도 했다. 나는 순간순간 기분이나 감정이 변하는 나를 알아차렸다. 근데 이런 나를 바라보는 다른 존재가 있었다. 그 존재는 한결같았다. 나는 웃지도 울지도 기분 나빠하지도 않는 이것의 정체가 궁금했다. 나는 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이것이 어디에 존재하는지 샅샅이 살펴보았다. 분명 존재하는 뭔가가 있었지만, 내 몸 어느 구석에도 있지 않았다. 내 곁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이 존재가 영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금은 이 존재를 참나(진아) 혹은 메타인지라고 생각한다. 


내가 나를 찾아 길을 떠난 지 수십 년, 나는  기쁠 때도 있었고 고통스러웠을 때도 있었다.  때론 즐거웠고 때론 절망하기도 했고 한때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를 미워하기도 했다. 소녀가 집으로 돌아오듯 나도 노인이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한 번도 길을 떠난 적이 없는 나, 늙지도 젊지도 않은 내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소녀를 기다리던 작고 작은 강아지처럼, 내가 집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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