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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할수 Sep 29. 2022

꽃신

원숭이의 생활필수품이 되다

원숭이 꽃신 이야기*다. 오소리가 예쁜 꽃신을, 원숭이에게 선물로 주었다. 원숭이는 덥석 신었다. 꽃신이 예뻤고, 공짜로 생겼기 때문이다. 오소리가 꽃신을 사라고 했더라면, 헐값이라도 원숭이는 사지 않을 것이다. 원숭이 삶과 관계없는 물건이기 때문이다. 원숭이가 꽃신을 신을 때부터 원숭이의 삶과 관계가 있는 물건이 되었다.

   

 양잿물도 공짜라면 마신다는 속담이 왜 있겠는가. 우린 소소한 것이라도 받을 때 기분이 좋아진다. 오소리의 속셈을 모르는 원숭이. 오소리로부터 꽃신을 받았을 때 얼마나 기분이 좋았겠는가. 또 꽃신을 신은 자신의 예쁜 모습이 얼마나 흡족했겠는가.


오소리에게 선물로 받은 꽃신은 얼마 후 헤어졌다. 원숭이는 꽃신을 신지 않으니 발이 아팠다. 오소리를 찾아가 꽃신을 달라는 원숭이. 염치가 없다. 선물로 받은 것이 닳았다고 다시 달라고 하다니. 꽃신이  닳으면, 오소리가 또 줄 것이라 생각했을까.



오소리는 공짜로 줄 수 없으니, 꽃신 값으로 잣 세 송이만 달라고 했다. 잣 세 송이쯤은 원숭이의 삶에 별 영향을 주지 않기에. 생각 없이. 꽃신을 사서 신었다. 꽃신은 금세 닳았다. 원숭이는 잣 세 송이를 들고 오소리를 찾아갔다. 오소리는 다섯 송이를 달라고 했다. 원숭이가 꽃신을 사러 올 때마다 오소리는 값을 조금씩만 올렸다.


원숭이가 꽃신을 오래도록 신게 하려는 오소리의 계획이었다. 갑자기 꽃신 값을 올리면 원숭이가 사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소리의 계획에 따라 원숭이가 꽃신을 신은 기간이 길어갈수록, 원숭이의 발바닥은 점점 보드라워졌다. 발바닥이 보드라워진 만큼 꽃신을 신지 않으면 발이 더 아팠기 때문에 원숭이는 꽃신을 신지 않고는 살 수 없게 되었다.

 


잣 삼백 송이로 올려도 안 신을 수 없는 꽃신. 오소리가 부르는 게 값이 되는 꽃신. 오소리가 꽃신 값을 너무 많이 올려, 잣이 모자라 원숭이는 외상으로 꽃신을 샀다. 원숭이는 외상값을 갚기 위해 오소리 집을 청소하고, 오소리가 개울을 건널 때 업고 건너 주는 몸종 노릇까지 하게 되었다.


원숭이에게, 꽃신은 상관없는 물건이었는데. 이젠 불편해서가 아니라, 아프기 때문에 없으면 안 되는 물건 즉, 생활필수품이 되었다. 원숭이는 비싼 꽃신을 신으면서, 앞으로도 계속 오소리의 종노릇을 할 것이지만. 우리가 원숭이를 어리석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오소리가 자본이라면. 우린 원숭이다. 우리 삶과 상관없었는데. 상관있게 된 물건들은 셀 수 없이 많다. 이미 갖고 있는 물건이지만, 새로운 모델이 나오면 그것을 사지 않고는 못 배긴다. 그것을 사용하지 않으면 살아가기 어려운 것도 있지만, 대부분 그것이 있으면 행복할 것 같고. 자신이 좀 더 근사해 보인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 시대에 컴퓨터나 휴대폰이 없으면 제대로 살 수 있겠는가. 앞으로 나올 그 무엇도 사지 않으면 살아도 사는 게 아닐 것이다.

 

요즘은 심리학을 넘어서 뇌과학을 이용한 마케팅을 한다. 우리 뇌는 2가지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다. 1 시스템은 자동시스템이고 2 시스템은 수동 시스템인데, 비행기 조종할 때의 자동시스템으로 하다가 때에 따라 수동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제일 좋은 브랜드라고 인식되어 있는 브랜드 제품이면, 뇌의 자동시스템이 작동하여, 생각 없이 구입하게 된다. 이유는 수렵 채취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사나운 동물을 만났을 때, 즉각적으로 행동하지 않고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간  잡아먹히게 되므로 1 시스템인 자동시스템이 작동된다.  또 우리에게 쏟아져 들어오는 정보는 너무나  많다. 이 정보를 일일이 분석하고 생각할 수 없기에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해, 익숙한 것은 자동시스템이 작동한다.


이미 우리 뇌 속에 제일 좋은 브랜드라고 각인되어 있는 브랜드 제품이면, 우리 뇌는 생각하지 않고 자동시스템을 작동시켜 우리가 구매하게 된다고 한다. 2등 브랜드의 제품이면,  2 시스템 인 수동 시스템이 작동되어, 이 제품이 괜찮은지, 살지 말지를 생각을 한다고 한다. 기업들이 제품 광고보다 브랜드 광고를 많이 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라 한다.


나는 제품을 구입할 때,  한 브랜드의 제품만 구입하는 경향이 있다. 또 마트에 갔을 때 1+1 제품을 자주 샀는데. 1+1 제품 중에서 용량이 적어 그리 싼 편이 아닌 것들도 있었다. 묶음으로 사면 싼 물건은 필요한 양보다 더 많은 양을 구입하기도 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산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원하는 물건이 아니라 자본의 계획에 장단 맞춘 것 같다.


원숭이가 자신의 잣을 빼앗고, 자유까지 빼앗으려는 오소리의 계획대로 움직인 것은, 오소리의 계획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소리의 계획을 간파했다면, 선물로 꽃신을 받지도 않았을 것이고, 신지도 않았을 것이다.

오소리가 꽃신 값을 조금씩 올리면서 원숭이가 오래도록 꽃신을 신게 하여 발바닥을 연약하게  만들었듯. 거대 자본이 그들의 계획대로 우리가 움직이도록 우리의 뇌를 각인시켜 놓았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목숨인 시간과 자유를 지불하고 마련한 돈으로 자본이 생산한 제품들을 살 때, 원숭이처럼, 생각 없이 우리 뇌  속의 자동시스템이 시키는 대로 물건을 사게 된다.


원숭이와 달리, 거대 자본의 목적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해도. 뇌 속에서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라 이성적으로 제어할 수 없다. 원하지도, 필요하지도 않은 것, 자본이 시키는 것을 사고 마는 사람들. 원숭이가 오소리의 뜻대로 꽃신을 신고 몸종 노릇한다고 해서, 어떻게 어리석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원숭이 꽃신(정휘창 지음, 박요한 그림, 효리원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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