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파타고니아를 가다
빙하를 보러 가는 날 아침부터 설렌다. 몹시 추울 거라는 생각에 지레 겁먹고 옷을 두 겹, 세 겹 챙겨 입고 양발도 두 켤레나 겹으로 신었다. 빙하는 Laguna San Rafael National Park에 있는데 차로 두 시간, 배로 두 시간 거리에 있다. 우리 일행을 태운 차가 5분 남짓 달리고 나더니 곧바로 비포장 도로로 들어선다. 파타고니아 여행은 버스를 타고 며칠씩 달리기도 해야 하고, 버스를 타더라도 호수를 바지선이나 페리를 이용하여 건너야만 하는 지루하고 인내심이 필요로 하는 코스다. 오늘처럼 관광을 하더라도 비포장 도로를 3-4시간씩 달리기 때문에 귀족 관광이 아니고 어드벤처(adventure)라고 부르는 게 더 어울릴 것 같다. 공항에 손님들도 나와 같이 캐리어를 끌고 있는 분은 찾아보기 힘들고 대부분이 배낭을 메고 트레킹 운동화를 신고 있다.
가고 있는 도중에 이게 웬일이람. 양 떼들이 도로를 점령하고 있어 차가 멈추어선다. 줄잡아 300-400마리는 넘어 보인다. 알프스 목동들의 전통의상을 차려입고 말을 타고 가는 두 젊은이, 그들의 조력자 양치기 개 대여섯 마리가 분주히 움직 이면서 주인장의 명(명령)을 따라 양들을 도로에서 산으로 몰아내고 있다. 운전수도 이런 경우가 자주 있었는지 서두르지 않고 도로가 치워질 때까지 차분히 기다려준다.
선박으로 갈아타기 위해 선착장까지는 50킬로미터를 더 달려야 하는데 가는 계곡이 깊다. 길 양쪽으로 우거진 숲들은 한국과 같이 소나무 일색이 아니라 10분 간격으로 나무 종류들이 바뀌어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오니 잠시도 눈을 뗄 수가 없다. 이건 무슨 자연의 조화인가 싶다. 높은 산 위에는 눈으로 덮여 있어 그것만으로도 이미 장관인데 산이 펑크라도 난 것처럼 수십 미터 길이의 폭포수들이 여기저기에 널려있다. 장관이다, 아름답다는 말 외에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내가 만약 시인이었다면 멋진 시 한수가 나올 만도 하다.
드디어 선착장에 도착했다. 대여섯 척의 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배에 승선하니 바람도 없고 난방이 되어있어 안방처럼 아늑하다. 점심 메뉴를 고르라 한다. 나는 치킨을 시켰는데 와우! 대--박-- 맛이 일품이다. 여느 일류 식당에서 이런 맛을 볼 수 있단 말인가. 다른 일행들도 여기저기서 와우! 하면서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고서는 한 그릇 더 달란다.
배를 든든하게 채우고 나니 마음도 한결 여유롭다. 두 시간 동안의 항해도 결코 지루하지가 않다. 안내원이 큰소리로 “우리가 오늘 찾아온 빙하가 나왔습니다.” 저 멀리에 두 개의 산사이에 하얀 빙하언덕이 걸쳐 있는 듯 보인다. 배가 속도를 줄이니 우리 배 주위에는 벌써 집채만 한 크기의 얼음 덩어리가 두둥실 거리고 있어 조심하는 듯싶다. 어떤 얼음 조각은 유달리 푸른빛을 발하고 있어 그 이유를 물었더니 얼음이 단단할수록 푸른빛이라고 한다. 얼음마저도 그 옛날에 무슨 일들이 (유별나게 추운 날씨) 있었는지를 색깔로 우리에게 얘기해주고 있다.
저 멀리에 있는 빙하벽이 무너 지더니 괭음이 들린다. 지구 온난화로 빙하가 녹아내리고 있는 관경을 목격하고 있다. 빙하벽 높이가 80미터라 한다. 그리고 수면 아래 빙하는 수면 위로 올라와 있는 높이의 배라 하니 저 물밑으로 160미터의 얼음이 숨어 있다. 놀랍다. 우리가 타고 있는 배가 커다란 빙산을 한 바퀴 돌고 있다. 이를 비디오카메라로 담고 있으니 마치 내가 영화를 찍는 카메라맨이라도 된 기분이다.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글을 쓰고있는 오늘 아름다운 장면들을 리플레이(replay) 하니 설레던 그때의 감정이 다시 소환된다.
안내원이 얼음 덩어리를 바다에서 건져 올린다. 수백 년 아니 수천년된 얼음이 내 손아귀에 있다. 이 얼음으로 위스키를 만들겠단다. 이름하여 빙하 위스키다. 100년 된 위스키 한 병이 억대를 호가한다는데 3000년 된 빙수로 만든 이 술잔은 값을 매길 수나 있을는지. 평소엔 술을 가까이하지 않는데 어찌 이리도 술맛이 좋은지. 위스키가 달다고나 할까? 두 잔을 거뜬히 마셨는데도 취기가 없다.
선장이 뱃머리를 돌리면서 이젠 집으로 가잔다. 내가 살면서 또다시 빙하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을는지? 눈에 넣고 가슴에 담아서 숙소로 돌아왔다.
칠레산 닭으로 백숙을 해 먹었다
빙하투어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온 우리 일행은 부엌에서 손놀림이 바쁘다. 어제 마켓에서 사 온 닭으로 백숙을 만들고 있다. 이곳 트란쿠일로에 와서 매일 아침 조식으로 만들어 먹은 (달걀) 스크램블이 미국이나 한국에서 먹었던 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깊이가 있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감칠맛이 있다고 해야 하나? 아마도 닭을 방생해서 기른 토종닭들이 낳은 알이기 때문은 아닐는지. 백숙 또한 혹시나 했는데 짱이다. 우리 일행 네 사람이 한 마리씩 거뜬히 먹어 치운다. 손가락에 기름을 씻어 내리면서 “우리가 이곳을 떠나기 전에 닭백숙 파티를 한번 더 해야 하지 않겠냐”고들 이구동성이다. 오늘 빙하투어 하면서 먹었던 치킨이 유달리 맛있었던 것도 선상이라는 분위기도 한몫했겠지만 토종닭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그 진미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다음 여행코스인 프에르토 나탈레스 (Puerto Natales)에 가면 양고기가 맛있다고들 하는데 이 또한 기대된다. 입도 눈도 호강하는 파타고니아 여행이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