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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동훈 Jun 21. 2022

고3 수업을 대하는 교사의 복잡한 마음

올해로 고3 학생들을 대상으로 동아시아사 수업을 한지도 벌써 3년째다. 처음 수업했을 때와 비교해 보면 수업에 집중 못하는, 일명 딴짓하는 아이들이 많이 늘었다.


그렇다고 그 아이들이 공부를 안 하는 것은 아니다. 고3인 만큼 대부분 공부는 하고 있다. 다만 그 아이들이 공부하는 과목은 동아시아사가 아니라 다른 과목들이고 이마저도 귀에 무선 이어폰을 꽂은 채 태블릿 PC로 인터넷 강의를 들으면서 공부하고 있다.


어른이 자기 학창 시절과 비교해 본다면 참으로 기가 막힐 풍경. 그렇다. 이런 모습이 현재 고3 교실의 현실이다.




실제 내 수업의 경우 한 반 30명의 선택자 학생 중 수업을 제대로 듣고 있는 학생은 절반이 채 안된다. 그렇다고 내가 무능력하거나 못 가르쳐서 그렇다라고 여기지는 않는다. 다른 고3 과목 선생님들 다수도 이런 일을 겪고 있다고 이야기를 해주기 때문이다.


앞에서 열심히 수업하시는 선생님을 무시하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대놓고 귀에 이어폰을 꽂고 인강을 듣고 있다니.


선생님이나 학교 입장에서는 일견 불쾌하고 예의 없는 행동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수시를 포기하고 정시를 준비하는 정시파나 해당 교과와 진로가 관련 없는 학생들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어차피 그들 입장에서 내 과목은 본인들 대입이나 진학과 관련이 없는 과목일 뿐이다. 당장에 수능이 150여 일 앞으로 다가왔고, 시간이나 대입을 위한 효율성 면에서 다른 과목 공부가 그들에게는 차라리 나은 선택일 수 있다. 대입은 학생의 인생과도 직결되는 문제인데, 학생의 인생을 책임질 것도 아니면서 이를 수업태도나 교사에 대한 예의 운운하며 그저 나무랄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더구나 떠들거나 노는 것도 아니고 공부하겠다는데 말이다.


그래서 나도 처음엔 이런 모습이 당황스러웠지만


'얼마나 급하면 저러겠나'

'마음은 이미 다른데 가 있는데 통제한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겠나.' 

'본인들은 급한데 내가 통제하면 시간만 자꾸 빼앗긴다 하여 반발심만 생기겠지.'


등의 생각이 들어 웬만해선 딴짓하는 아이들의 행동에 태클 걸거나 잔소리를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저주하는 것은 아니지만 솔직히 나는 이런 학생들의 말로를 잘 안다. 대부분 본인 의도와는 다르게 수능성적이 잘 안 나오고 대입 진학에서도 실패를 겪는다. 바로 시간에만 쫓기는 공부를 하다 보니 효율성과 집중력이 크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부끄럽지만 나 역시 20년 전 고3 시절엔 지금 이 아이들처럼 정시로 올인하여 해당 수업에 집중 안 하고 딴 것을 공부하기 바빴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자습하기 적합하지 않은 환경에서 자꾸 자습하는 것은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와 집중력 분산만 가져올 뿐이었다. 더구나 떨어진 집중력은 문제를 자꾸 틀리게 만듦으로써 문제를 푸는 과정에서 얻는 성취감이나 자아효능감마저 상실하게 만들었다. 수능은 고도의 집중력과 차분한 마음을 유지한 채, 지문이나 문제의 핵심을 이해하고 사고력 응용력 추리력을 발휘하여 문제를 푸는 시험이다.

그저 남들보다 좀 더 암기 많이 한다 해서, 어려운 문제 조금 더 많이 풀어 봤다 해서 성적이 오르는 시험은 아닌 것이다. 그래서 본인이 계획하거나 목표한 만큼 성적을 끌어올리는 정시파 고3은 단 한 명도 못 봤다. 앞에서 이야기했듯 안 좋은 자습 환경에서 안 좋은 공부 경험이 쌓이는 것은 자꾸 마이너스 효과를 가져올 뿐이었다.


딴짓하는 고3 아이들이 과연 이 사실을 알까? 나는  한번 실패를 겪고 난 이후 두 번 다시 그런 짓을 안 했지만 이 아이들은 아마 본인이 직접 경험할 때까지는 이 사실을 인정 못할 것이다. 한편으로 내가 담임도 아닌 상황에서 이 아이들을 따로 불러 이런 사실까지 장황하게 설명하는 것은 선을 넘는 것 같아 멈추었다.(그렇게 말한다고 그만둘 아이들도 아니기 때문에)




 고3 수업은 의외로 고3 담당 선생님에게는 편하다. 수업을 듣는 학생과 듣지 않는 학생이 명확히 구분되어 있기 때문이다. 듣지 않는 학생들은 알아서 뒷자리에서 조용히 자습을 하기 때문에 교사 입장에서는 수업 듣는 소수 학생들을 위한 맞춤형 수업도 진행할 수 있다. 수준 높거나 심화된 내용을 설명해도 수업 듣는 아이들은 고도의 집중력을 유지한 채 적극적으로 이해하고자 노력한다. 당연히 수업에 대한 효율은 좋을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수행평가 채점도 편하다. 고3 수행평가는 내신 성적에 집착하는 소수 아이들과 내신을 포기한 다수 아이들에 대한 평가이기 때문이다. 포기한 아이들은 이름만 쓰고 백지만 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채점에 대한 업무량도 고 1,2에 비해서는 적은 편이다. 시험 문제만 난이도 있게 출제해서 시험이나 등급에 대한 시비만 잠재우면 된다.   

 

하지만 학생이나 교사가 이런 수업이 편하다고 해서 과연 이런 수업이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있을까? 대입이나 수능이 닥쳐옴에 따라 아이들은 불안해지고, 포기하지 않던 것을 하나둘씩 점점 포기하게 된다.(수행평가, 내신관리, 시험, 그리고 수업, 나중에는 학교 등교까지 하지 않게 된다.)


학년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나는 안돼.' '포기할 것은 포기하자.' '지금 학교 등교해서 수업 듣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냐.'는 생각을 자꾸 만드는 것은 좋은 시스템이 아니다. 한편으로 학교 내신은 1-3등급 나오는 상위권 학생들만을 위한 것도 아니다. 학교는 학생 누구나에게 끝까지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줘야 하는 곳이다.


전반적으로 현행 대입제도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 대학 서열화가 명확하고 고등학교 생활이 단순히 대입을 위한 과정이라는 현실이 바뀌지 않는 한 어떠한 제도도 근본적인 대책은 될 수 없다. 한편으로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포기하지 않고 계속 학교 활동에 참여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많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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