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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동훈 Jun 13. 2022

무슨 일이든 고생한 만큼 보람은 있다.

1. 요즘 한국사 수업을 할 때 고민되는 반이 하나 있었다. 이 반 아이들 특징은 하나같이 조용하고 점잖다는 것으로, 수업시간 내가 발문을 해도 모두가 포커페이스로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 게 특징이었다. 결국 제풀에 지친 나 혼자 '자문' 하고 '자답' 하는 식으로 수업을 진행했고 심지어는 "잘 따라오고 있는 것 맞니? 잘 알아들었니?"라고 물어도 소심하게 고개만 끄떡일 뿐 대답은 하나도 없을 정도였다. 일명 김 빠지고 재미없는 반이 바로 그 반이었다.


 다른 반은 잘 따라오는데 대체 왜 이 반만 그럴까? 대체 어떻게 해야 이 아이들을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시킬 수 있을까? 그 반 수업시간만 끝나면 나의 이런 고민은 반복되었고, 어느새 나는 그 반 수업을 가장 부담스러워하고 있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이 반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뭔가 해결책을 찾아야겠어.'


 그때부터 난 그 반 수업 준비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이전 강의식 수업보다 활동 위주의 수업을 많이 계획했고, 중간중간 퀴즈 문제도 그 반 만을 위해 신경 써서 제작했다. '어떻게 해야 아이들의 대답을 좀 더 유도할 수 있을까' 심지어 내 발문에 대해서도 되짚어보고 많은 수정을 가했다.   

  

하지만 이렇게 하였음에도 그 반은 달라지는 것이 딱히 없었다. 성격이 내성적인 아이들만 모여서 발표를 꺼리는 것인지, 아님 모두가 성격이 과묵한 것인지 알 길이 없지만 여하튼 재미없는 그 반은 정말 벽을 마주 보고 수업하는 느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 반의 한 아이가 복도에서 나랑 마주쳤을 때 방긋 웃으면서 말했다.


"쌤, 수업 잘 듣고 있어요. 한국사가 요즘 많이 재미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어요."

"어? 정말? 난 솔직히 너네 반 아이들 표정이 밝지가 않아서 수업을 다들 잘 안 듣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에요~ 쌤. 우리 반 아이들이 한국사 전 시간이 꼭 체육이라서 힘들어서 그래요. 대부분 아이들은 잘 듣고 있어요. 최근엔 학생 활동이나 퀴즈도 많이 넣으셨던데 너무 좋아요. 맞추면서 알아가는 재미가 있어요."

"그래? 다행이다. 난 그런 줄도 모르고 너희들 대부분이 쌤 수업을 지루해하고 힘들어하는 줄 알았네."


그랬다. 어떻게 보면 인사성 밝고, 복도에서 나를 마주쳐도 항상 웃으며 나를 대하는 아이들이 바로 그 반 아이들이었다. 어느새 아이들은 나에게 도 많이 든 것 같았다. 수업시간 발표할 때도 서로 눈치를 봤던 것뿐이지, 쉬는 시간에는 한국사 퀴즈를 내면서 서로 '딱밤 놀이' 하는 반이 바로 그반이었던 것이다.


특히 아이들은 내가 준비했던 퀴즈나 발문 문제를 그대로 내고 있거나, 내 말투까지 따라해가며 선생님 놀이를 하고 있었다. 덕택에 이 반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하고 화두에 많이 오르는 과목이 '한국사'가 되었음은 두 말할 것도 없었다.


고생하고 신경 쓴 만큼 보람이 있다고 해야 할까? 여전히 나와 내 수업을 부정적으로만 보고 있을 줄 알았는데 반전도 이런 반전이 없었다. 앞으로도 이 반 아이들을 위해서 매 수업 한 차시 한 차시를 성찰하고 고민하는 교사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2. 최근에 우리 학교에서는 교육과정 박람회 행사가 있었다. 이는 아이들이 고등학교 2, 3학년 때 배우는 선택과목의 선택에 도움을 주기 위한 것으로 우리 학교에서는 이런 행사가 처음이었다. 하지만 처음 이 계획 안이 발표되었을 때 많은 선생님들은 반대부터 하였다.


'그렇지 않아도 수업, 수행평가, 행정 업무, 생기부 입력 때문에 바쁜데 이런 것까지 신경을 써야 하나'

'없던 행사는 왜 만들어서 사람을 고생시키냐'   

'코로나 펜더믹 때는 코로나 때문에 힘들더니 이제 코로나 엔더믹이 되니까 학교 행사 때문에 힘들다'


하는 볼멘소리부터 나왔다. 그런 소리에 가장 동조했던 사람이 부끄럽게도 나였다.


하지만 그런 소리가 나옴에도 업무 담당 선생님은 최선을 다해 행사 준비에 만전을 기했다. 특히 '각 교과목에 대한 설명이나 표현은 실제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가장 잘한다'는 의견이 채택되어 각 부스의 운영은 모두 현재 수업을 듣고 있는 2, 3학년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맡기로 하였다. 교사들은 이런 역할을 잘 맡을 수 있는 학생들을 추천하고 부스 운영에 대한 조언이나 도움만 주기로 하였다.

 

 부스 운영을 맡은 학생들도 교육과정 박람회가 부담스럽긴 마찬가지였다. '박람회 때 호기심 많은 후배들이 많은 질문을 할 건데 내가 실제 그 과목을 잘 알고 있느냐.' '박람회 때 후배들에게 나눠줄 안내서나 팸플릿은 어떻게 제작할 것인가.' 아이들은 신경이 많이 쓰였고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선배 체면에 후배들에게 대충 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아이들은 각 교과목 홍보를 위해서 직접 영상을 제작하고 홍보 포스터도 만들고 최선을 다했다.



드디어 대망의 박람회 날!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고생한 만큼 보람 있다는 속설은 이번에도 통했다. 박람회 결과는 대박이었다. 후배 아이들은 선배들이 준비해놓은 자료들을 유심히 살피며 각 과목들의 성격이나 내용을 빠짐없이 파악했고, 선택과목을 선정할 때도 많은 도움을 받았다. 특히 선배들을 통해 듣는 선택과목 이야기는 생생한 현장감이 있었고, 후배들은 모두가 만족해했다. '내년에도 후회 없는 선택을 위해 이런 행사를 꼭 해야 한다.'는 후기도 줄을 이었다.


부정적이었던 선생님들 여론도 급 반전되었다.

'아이들에게 맡겨 놓았더니 잘하네'

'아이들이 교과 이름만 보고 무턱대고 선택했다가 후회하는 경우를 많이 봤는데 앞으로는 그런 일 없겠네.'

'아이들이 질문도 많이 하고 각 부스별로 사람도 바글바글하고 박람회다운 박람회를 봐서 참 좋네.'         

식으로 호평이 줄을 이었다.


처음 시작하거나 없던 일을 새로 만드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렵다. 일단 많은 반대부터 부딪쳐야 하고, 해야 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준비하는 사람은 준비하는 사람대로 지친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렇게 치열하게 준비하고 고민하고 힘들어한 만큼 결과물은 완성되어서 나오게 된다. 이번 행사를 준비한 아이들도 박람회를 준비하면서 많은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끝으로 이번 박람회를 부정적 시선으로만 봤던 나 자신을 반성하면서, 이번 행사를 준비하는데 애쓰셨던 학교의 많은 분들께 이 글을 통해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정말 죄송합니다 ㅠ 이렇게 대박날 줄 몰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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