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기환 기자는 먹잇감을 발견한 포식자처럼 움직였다.
그는 박성철 팀장과의 통화에서, 상대를 안심시키기 위해 최대한 부드럽고 존경심 가득한 목소리를 사용했다. 그는 자신이 '김민준 대표의 성공 신화를 취재하는 중'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안녕하십니까, 박성철 팀장님. 한국경제일보의 최기환 기자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메일로 주고 받기에는 제가 여쭤볼 내용이 많이 있어서요. 페르소나 캐피탈의 김민준 대표님에 대해 취재 중인데, 팀장님께서 예전에 같이 근무하신 팀장님이 업계의 훌륭한 선배로서, 예전 후배의 성공을 어떻게 보시는지 고견을 여쭙고 싶어서요."
'업계의 훌륭한 선배', '고견'이라는 말에 박성철은 완전히 무장해제되었다. 그는 의기양양하게 헛기침을 한 뒤, 자신이 아니었으면 김민준은 없었을 것이라는 뉘앙스를 풍기며 입을 열었다.
"아, 김민준 씨? 예, 예. 저희 팀 계약직이었죠. 제가 직접 뽑지는 않았지만, 뭐… 제가 데리고 있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때는 눈에 띄는 친구는 아니었어요. 조용하고, 시키는 일은 그냥저냥 했는데… 가끔 좀 엉뚱한 데가 있었지. 그래도 성실하긴 했습니다. 사람이 역시 떡잎만 봐서는 모른다니까요. 이렇게까지 성공할 줄은 아무도 몰랐죠."
최기환의 귀는 '계약직', '눈에 띄지 않음', '그냥저냥'이라는 핵심 단어들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사실 확인을 하는 척, 가장 날카로운 질문들을 던졌다.
"아, 그러셨군요. 계약직이셨군요. 그럼 혹시 팀에 계실 때 담당했던 주 업무가 IT 기획 쪽이셨을까요? 아니면 투자 분석이나 알고리즘 개발 같은 업무도 겸하셨는지…."
"알고리즘이요? 하하, 무슨. 그런 건 우리 팀 업무가 아닙니다. 그냥 신규 사업 기획안 같은 거 리서치하고, 제안서 PPT 만드는 뭐… 그런 잡무들이었죠. 투자 쪽하고는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최기환은 모든 것을 얻었다. 그는 박성철에게 몇 번이고 감사 인사를 전하고 전화를 끊었다. 박성철은 자신이 가볍게 말한 그 정보가 김민준의 숨통을 끊을 칼날이 되리라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최기환은 자신의 취재 수첩에 첫 번째 문장을 적었다.
'김민준, 전문투자 경력 전무. 전 직장에서 계약직으로 근무.'
통화를 마친 박성철은 거실 소파에 몸을 파묻으며 거대한 만족감에 휩싸였다. '한국경제일보'의 베테랑 기자가 자신을 '업계의 훌륭한 선배'라 칭하며 전화를 걸어왔다. 그는 자신이 마치 성공 신화의 숨겨진 조력자라도 된 듯한 기분에 취했다. 그는 며칠 전 김민준에게서 온, 밥을 사겠다는 아첨 가득한 메시지를 떠올렸다. 그의 머릿속에서 모든 퍼즐이 맞춰졌다.
'이야, 이거 봐라. 내가 누군지 알고 한국경제일보에서도 다 연락이 오네. 민준이 저 녀석, 내가 댓글 달아주고 하니까 바로 꼬리 내리고 밥 사겠다고 연락 온 것 봐. 역시 아직 사회생활하려면 나 같은 선배가 필요한 거야. 옛날 동료들 다 모아놓고 내가 민준이 키운 얘기 좀 풀어야겠다.'
그는 김민준이 자신을 두려워하거나 입막음을 하려 한다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는 그저 자신의 중요성이 입증되었다는 사실에 도취해, 이 상황을 과시하고 싶어 안달이 났을 뿐이었다. 그는 자신이 이 모든 판의 주인공이라고 착각하며, 김민준에게 의기양양한 메시지를 보냈다.
'민준 씨, 기자한테도 전화 오고, 아주 스타가 다 됐네! 내가 좋게좋게 잘 말해줬어. 그나저나 우리 금요일 저녁 확정하자. 옛날 동료들 다들 보고 싶다고 난리야. 장소는 자네가 한번 시원하게 쏴! 청담동 같은 데로 말이야!'
김민준은 박성철의 메시지를 자신의 오피스텔에서 확인했다. '기자한테도 전화 오고'. 그의 눈앞이 캄캄해졌다. 최기환이 이미 과거와 접촉했다는 명백한 증거였다. 그리고 금요일 저녁, 청담동에서의 식사. 그것은 축하 파티가 아니라, 자신의 과거를 아는 증인들 앞에서 벌어질 공개 심문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김 비서가 결재를 올린 월간 지출 보고서는 그의 재정 상태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사무실 월세, 직원들 급여, 법인 차량 리스 비용, 그리고 무엇보다 지난달 백 사장에게 송금한 2억 3천4백만 원의 '배당금'까지. 그의 폰지 사기는 이제 매달 수억 원의 새로운 피를 수혈받지 않으면 즉시 멈춰버릴 지경이었다.
극도의 스트레스 속에서, 그는 도피처를 찾듯 아주 오래전에 잊었던 기억의 편린을 떠올렸다.
몇 년 전, 대한민국이 코인 광풍에 휩싸였을 때, 그는 생애 가장 큰 도박을 감행했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모아두었던 비상금 500만 원 전부를, 당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가장 뜨겁게 언급되던 단 하나의 밈 코인, 'K-도지코인'에 몰빵했던 것이다. 그러나 투자 직후 암호화폐 시장은 붕괴했고, 그의 500만 원은 순식간에 5만 원으로 쪼그라들었다. 그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저주하며 앱을 삭제했고, 그 뼈아픈 실패의 기억을 뇌리에서 지워버렸다.
그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먼지 쌓인 기억을 더듬어 거래소 앱을 다시 설치하고 로그인했다. 그는 5만 원 남짓한 잔고를 확인하며 자신의 어리석음을 다시 한번 비웃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계좌에 찍힌 숫자는 5만 원이 아니었다.
'K-도지코인(KDC) | 평가액: 1억 3,450만 원 | 수익률: +2590.00%'
최근 한 유명 연예인이 자신의 SNS에 이 코인의 캐릭터를 귀엽다고 언급한 것이 불씨가 되어, 투기 자본이 몰리며 기적처럼 폭등한 것이다.
순간, 그의 머릿속에 한 줄기 빛이 비치는 듯했다. 1억 3천만 원.
이 돈은 그의 돈이 아니었던 투자금과 달리, 온전히 그의 것이었다. 깨끗한 돈. 그는 이 돈으로 모든 것을 끝내고 떠나는 상상을 했다. 당장 오늘 밤 비행기 표를 끊고, 아무도 그를 모르는 동남아의 어느 해변가에서, 모든 것을 잊고 살아가는 모습. 백 사장도, 최기환 기자도, 박성철 팀장도 없는 곳. 그 상상은 너무나 달콤해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미 너무 멀리 와 있었다. 1억 3천은 그의 거대한 사기극에 비하면 푼돈이었다. 수십억의 빚을 갚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리고 그의 마음속에서, 인터뷰를 성공적으로 마친 뒤 싹텄던 오만함과 광기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지금 도망치면 그는 영원히 '반지하 출신의 실패한 사기꾼'으로 남는다. 그는 패배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이건 출구가 아니야.' 그는 생각했다.
'이것은 신의 계시다. 하늘이 나를 돕고 있다는 증거다.'
그는 이 기적 같은 수익률이 자신의 '실력'으로 포장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주식 시장을 넘어, 변동성이 훨씬 큰 암호화폐 시장까지 예측해낸 '예언가'의 모습. 이것은 그의 마지막이자 가장 거대한 사기극, 해외 기업에 '페르소나 캐피탈'을 매각한다는 허위 공시를 위한 최고의 무기가 될 수 있었다. 그는 이 돈을 자신의 탈출 자금이 아닌, 더 큰 고래들을 낚기 위한 미끼로 사용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자신의 암호화폐 계좌 화면을 캡처했다. 그리고 노트북에 '프로젝트: 프로메테우스'라는 이름의 새 폴더를 만들었다. 그는 캡처 파일을 그 폴더에 저장했다.
그는 신이 준 구원의 동아줄을, 스스로 목에 거는 교수형 밧줄로 만들고 있었다.
[16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