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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짓다, 5] 자장가

by 검은개 Mar 26. 2025

그녀는 잠이 왔다. 작은 봄볕 드는 작은 도서관의 작은 소파에 한쪽 팔을 베개 삼아 모로 누웠다. 문 닫을 시간이 되고 사람들은 하나둘 도서관을 떠나고 그녀는 깨어나질 않았다. 그녀를 지켜보던 도서관을 지키는 소녀는 조용히 어지르진 시집을 정리했다. 그녀가 혹시나 깨지 않을까 숨소리를 숨기고 시집을 가지런히 세웠고 초침이 째깍째깍 칸칸이 도서관을 채웠다. 소녀는 그녀 옆에 나무 의자를 놓고 앉아 시집을 펼쳤다. 나직이 시를 노래하며 그녀를 바라봤다. 울지 마렴 아가야, 울지 마렴 아가야. 깊은 잠에서 깨기 싫은 듯 소리 없이 입꼬리가 올라가기도 했고 미간에 살짝 주름이 잡히기도 했고 눈꼬리가 눈물 떨어지듯 처지기도 했다. 그새 달이 몇 번이나 떨어지고 작은 마을 곳곳에 불이 나고 비를 찾아 몇몇은 떠나고 썰물을 막으려다 몇몇은 죽었다. 그녀가 눈치채지 못할 속도로 느리게 아주 느리게 공벌레처럼 몸을 웅크려 무릎이 이마에 닿을 지경이 되자, 작은 봄볕이 사라지고 차가운 흰 빛이 사방으로 펴지고 그녀의 목뼈가 환히 보였다. 파르르 떨리는 파장이 손끝에 전해졌고 소녀는 그녀의 등 뒤에 누워 말릴 대로 말린 그녀의 등에 심장을 대었다. 소녀의 심장이 그녀에게 전해지고 그녀의 심장이 소녀에게 전해지고. 울지 마렴 아가야, 울지 마렴 아가야. 작은 아침 햇살에 눈 비비며 겨울잠에서 깬 개구리처럼 다리를 길게 뻗고 심장에 남은 생소한 온기를 두 손으로 얼떨결에 안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그녀의 머리맡 나무 의자 위에 시집 한 권이 펼쳐져 있었다. 작은 봄볕이 작은 도서관 바닥에서 찰랑거리고 바람에 향내가 은은하게 퍼지고 그녀는, 시집을 두 손으로 들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소파에서 일어나 밖으로 걸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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