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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잇다, 3] 이별 1, 이성복

by 검은개

당신이 슬퍼하시기에 이별인 줄 알았습니다 그렇지 않았던들 새가 울고 꽃이 피었겠습니까 당신의 슬픔은 이별의 거울입니다 내가 당신을 들여다보면 당신은 나를 들여다봅니다 내가 당신인지 당신이 나인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이별의 거울 속에 우리는 서로를 바꾸었습니다 당신이 나를 떠나면 떠나는 것은 당신이 아니라 나입니다 그리고 내게는 당신이 남습니다 당신이 슬퍼하시기에 이별인 줄 알았습니다 그렇지 않았던들 우리가 하나 되었겠습니까



대학교 3학년 때 이성복의 「이별 1」이 시험 문제로 나왔어요. 시를 분석하고 학습 활동 만드는 것이 문제였죠. 읽고 또 읽었습니다. 시간은 정해져 있고 어서 시어의 의미를 파악하고 시적 상황과 화자의 태도를 분석해야 했죠. 조급했습니다. ‘거울’에서 이상의 「거울」이 떠오르고 ‘분열된 자아’까지 다다랐을 때, 시계를 보았죠.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어 자아 분열에 대해 적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이후 「이별 1」은 저에게 부끄러움으로 남아 있습니다. 또 부끄럽게도 시집이나 소설을 읽지 않던 시절이었죠. 문학적 소양이 전혀 없는 대학생이 국어를 가르치겠다고 강의실에 앉아 있던, 그때를 생각하니 두 뺨이 화끈거리네요.


그 시절,


사랑, 끝나면 나도 끝이라 믿었던 적. 끈질기게 붙어 끊임없이 괴롭히던 적. 사랑의 끝이 이별이라 믿고 이별을 거부하고 너덜너덜 옷자락을 부여잡으며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하고자 머리를 쥐어뜯었던 적. 그렇게 당신은 떠나고 홀로 남은 나는, 홀로 남지도 못하고 술독에 빠져 살았던 적. 그때는 이것이 사랑이라 믿었던 적.


처음에는 이별 노래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신이 떠나는 것은 결국 내가 나를 떠나는 것이고, 내 안에는 당신이 남아 우리가 하나 되는 이별 노래요. 그런데 보면 볼수록 이별보다는 사랑의 감정이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이별을 사랑으로 치환해 보기로 했지요.

사랑을 하면 나는 당신을 들여다보고 당신은 나를 들여다보고, 내가 나인지 당신인지 가름 되지 않고, 우리는 서로를 바꾸어 살아갑니다. 사랑의 거울로 내가 나를 들여다보는 것은 당신을 들여다보는 행위이고, 당신이 되어가고 있는 나를 확인하는 일일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당신이 나를 떠나면 떠나는 것은 당신이 아니라 나입니다

그리고 내게는 당신이 남습니다

‘당신이 나를 떠나면’에서 어느 미래에 당신이 나를 떠나게 된다면, 내게는 당신이 남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당신의 슬픔으로 이별을 미리 실감한 나는 이별(사랑)의 거울로 서로를 들여다보고 서로를 바꾸고, 결국 이별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 서로를 바라보는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당신(나)의 슬픔은 새가 울고 꽃이 피는 것처럼 마를 리가 없을 테니, ‘나’와 ‘당신’은 이별(사랑)의 거울 앞에 서서 서로의 슬픔을 껴안아야 하겠지요. 하나가 되겠지요.


악동 뮤지션은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바다처럼 깊은 사랑이 다 마를 때까지 기다리는 게 이별”이라고. 깊은 바다가 마를 리가 없잖아요. 이별까지 사랑할 수 있을까요?


이별,

어찌 살아가란 말인가요. 이별이 사랑으로 남길 바라시나요. 어쩜 그런 잔인한 말을 하시나요. 난 당신이 되기 싫습니다. 이별을 사랑으로 치환하기 싫습니다. 내가 떠난 내 안에 당신이 자라나 나를 갉아먹고 있습니다. 무섭습니다. 두렵습니다. 차라리 나는 나를 버리겠습니다. 그리고 나의 슬픔을 척박한 땅에 뿌리고 다가올 밤을 기다리겠습니다. 당신에게 마지막 안부를 묻고 새 아침을 장렬히 맞겠습니다.


당신은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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